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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아, 죽어도 괜찮아

내가 <뉴하트> 작가라면 난 은성과 이별하겠다

등록|2008.01.18 14:42 수정|2008.01.18 14:42
국문학과에 다녔기 때문인지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친구들을 많이 봤었다. 그 중 드라마 작가가 된 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드라마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면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을 듣다 결국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아 정말 못 해 먹겠네. 이거.”

‘특히 11회에서 뺨을 맞기만 했는데 코피를 쏟고 마지막에 수술실에서 작은 부딪침에 코피가 터지는 은성에 주목하며 “은성이 코피가 자주 나는 것으로 보아 의심할 수 있는 병은 백혈병으로 보인다”며 “결국 은성은 백혈병으로 결말에 죽고, 자신의 장기를 모두 기증한다. 그 심장이 뉴하트(New Heart)다”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태왕사신기>에 이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의학 드라마 <뉴하트> 11회가 방영된 다음날 나온 모 인터넷 신문 기사의 일부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설명도, 그렇다고 작가와 인터뷰를 한 후 올린 기자의 생각도 아니다. 그저 11회 방영 후 ‘왜 은성은 혜석의 사랑을 거부했나?’에 대해 누리꾼이 추측한 글을 올린 것뿐이다.

다시 말해 확정된 결말은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이 기사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뜨겁다. 잠깐 맛보기로 한 번 반응들을 보시라.

‘은성이죽이면 뉴하트 공홈(공식 홈페이지) 테러낼꺼다.’
‘은성아 죽지마 ㅜㅜ 어떻게 코뼈 뿌러진거 가지고 사람이 죽니 !! 죽지마.’
‘은성이 꼭 살아야되거덩~? 죽으면 진짜 뒤질랜드ㅎ 죽이지만 말아라..제발~ 안그럼 뒤질랜드~‘
‘영리해진 시청자들 작가님들 엥간이 해가지고는 안되것소 잉~’


대부분 은성이가 죽으면 안 된다, 심지어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까지 한다. 아무리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드라마는 허구인데, 그런 허구 속 인물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게 우습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사실 나부터 웃을 수가 없다. 왜? 30년 가까이 살면서 남자 캐릭터에 이렇게 빠져보기는 처음이니까! 남자인 나도 늘 밝게 웃고 즐겁게 웃는 은성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애간장이 다 녹는데,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남성들도 그를 좋아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 정말 사랑스럽고 소중한 캐릭터를 정말 죽음으로 드라마 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싫다. 정말 싫다. 그런데 만약 내가 작가 입장이라면 은성이를 죽음으로 극에서 퇴장시키는 것이 정말 싫기만 할까?

은성이는 정말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일까?

아니, 싫다기보다 그게 정말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는 아닐까. 언젠가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 왜 다들 그렇게 주인공이 죽는지 아냐고? 답은 이랬다.


“정말 사랑했던 순간에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거든. 그런데 사랑을 하고 결국 결혼을 하게 되잖아. 그러면 이건 또 아니거든.”

어린 나이에게 들었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어쩌면 사랑받는 드라마의 캐릭터들도 그와 비슷한 거 아닐까. 지금이 이은성이라는 캐릭터에게는 최고의 순간이다. 그 누구도 쉽게 그를 미워할 수 없다.

민영규 교수자신의 출세를 위해 늘 노력하는 인물, 이 인물이 은성에게 손을 뻗칠 가능성은 없을까? 언젠가 은성이 손을 잡는 일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iMBC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가 나이를 먹어서도 과연 그럴까? 은성은 극 중에서 국내 최고 대학교로 보이는 광희대학교 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그와 비슷한 레벨의 명문대 출신도 아닌 지방 삼류 의대 출신이다. 그런 그가 흉부외과에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덧 그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레지던트 동기 남혜석이 예전에 했던 말에 답이 있다.

“간호사들도 똑똑한 남자 간호사 하나 뽑았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말해 아무도 광희대 출신이 아닌 지방 의대 출신인 그를 진짜 광희대 의사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 지독한 학벌 사회 속에서도 흉부외과 과장인 최강국은 환자를 사랑하는 은성의 마음을 인정해주고 의사로 키우려 한다.

그리고 그 작은 기회를 이용해 은성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다. 문제는 이 ‘발버둥’이 지금까지야 그야말로 더없이 순수하게 진행되어왔지만 점차 나이를 먹고 결혼을 고민하게 되고 앞날을 고민하게 되면서까지 이어질 수 있겠냐는 점이다.

은성의 '발버둥'은 언제까지 순수할 수 있을까

신문에 종종 고졸 출신의 대기업 부장이 나왔다, 뭐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명문대 출신은 물론이요, 하다못해 4년제 대학 출신도 즐비한 대기업에서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고졸 출신이 대기업 간부 자리에 앉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뉴스가 된다.

흔히 하는 말들 있지 않은가.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명문대 출신이 대기업 간부가 되면 화제가 되지 않지만 고졸 출신이 대기업 간부가 되면 화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은성이 어떻게 최고의 두뇌들만 모였다는 명문대 그 중에서도 의대를 지망한 이들과의 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늘 활짝 웃는 붙임성, 곰 인형 바느질 연습을 통해 인간미 없는 민영규 교수에게 까지 칭찬받은 손재주? 그것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무엇보다 마치 최강국의 젊은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은성이다.

그렇기에 얼마 전 바른 소리를 했다가 병원 내 또 하나의 실력자인 내과 김정길 교수에게 팽 당한 의사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김태준 교수은성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미가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지 않을까? ⓒ iMBC

최강국 교수가 백년 만년 그를 지켜줄 것도 아니고, 최강국 교수도 강직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결국 은성이 오래도록 병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에게 스스로 자신을 필요한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그 기본은 실력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실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극 중 광희대 병원은 ‘신의 손’이라 불리는 최강국 교수도 좌천시킨 병원이다. 그것은 곧 실력만으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 게다가 최강국 교수처럼 광희대 병원 출신도 아닌 은성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그는 환자가 아닌 교수를 위한 의사 편에 서기로 결심하는 것 같은 숱한 유혹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 정말 소중한 남자 은성이라면 어떤 유혹에도 절대 흔들릴 일 없을 것이라고 보는가? 정말 그럴까? 글쎄. 그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유혹, 은성은 견딜 수 있을까

A. J 크로닌이 쓴 <성채>라는 책을 보면 은성이와 비슷한 의사가 나온다. 그런 그도 결국 동료 의사들과의 검은 동업 관계와 돈이라는 유혹에 빠진다(결말은 스스로 읽어보시기를). 아무리 숭고한 이상을 갖고 있고, 흔들림 없는 의지를 가진 자라 해도 유혹에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것도 여러 가지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유혹이 찾아 온다면 그것이 양심에 다소 걸린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 높다.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 은성 역시 시간이 지나고 흐르면 흐를수록 그런 유혹에 더 약해질지 모른다.

그랬기에 만약 내가 <뉴하트> 작가라면 은성을 죽음으로 극 속에서 사라지게 하고 싶은 욕망을 더 느낄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정말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비겁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택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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