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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병장님, 차라리 절 때려 주십시오!"

구타 근절 후 신종 가혹행위 등장, "그동안 당했는데, 이제 하지 말라고?"

등록|2008.01.18 18:02 수정|2008.01.21 12:53

▲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1999년 12월 14일에 군에 입대했다. 천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와 새 천년을 훈련소에서 맞이했던 '비운의 군번'이다.

공교롭게도 천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엔 함박눈까지 내려 넉가래와 눈삽을 들고 '제설 작전'이라는걸 배워야 했고, 2000년 1월 1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에도 고된 훈련의 피로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격동의 새 천년'은 군대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 왔다. '부대 내 구타 근절'을 위한 대대적인 '소원수리'(후임병들이 부대 내 불만 사항을 익명으로 적어내는 것)를 통해 악명높은 조교 몇 명이 영창으로 끌려 갔고,  이후 PRI(사격술 예비훈련), 화생방, 각개전투 같은 힘든 훈련 중에도 조교의 구타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그렇게 훈련병들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하며 6주간의 훈련을 이수했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자대'로 배치를 받게 됐다. 앞으로 다가올 '비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공포의 '물 없이 건빵 및 새우 과자 먹기'

자대에서는 '구타 근절'을 위한 군대의 노력을 더욱 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중대장과 주임원사는 신병 면담을 통해 "2000년부터 구타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나를 안심시켰고, 실제로 '노란 견장'(갓 들어온 신병임을 표시하는 견장)을 달았던 2주 동안 단 한 번도 구타를 당하지도, 목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보직을 받고 부대 생활에 투입되면서부터 근절된 것은 '물리적인 구타'일뿐, 부대 내의 '폭력 행위'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선임병들은 구타를 하지 않는 대신, 온갖 가혹 행위들로 후임병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 박기', '깍지 끼고 엎드려뻗치기' 같은 전통적인(?) 가혹 행위부터 '기름 마시게 하기', '새벽까지 잠 안 재우기' 같은 신종 가혹 행위까지 범람했다.

▲ 물 없이 건조한 건빵을 먹는 것은 정말 '고문'이었다. ⓒ 김귀현

그 중에서도 악명 높았던 김 아무개 병장이 시킨 '건빵 한 봉지와 새우 과자 한 봉지를 물 없이 5분 동안 먹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건빵은 특유의 건조함 때문에 참을 수 없는 갈증을 유발시켰고, 새우 과자는 거친 표면 때문에 입안이 금방 헐어 버리고 만다.

힘든 훈련 중에도 선임병들의 가혹 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행군 시 무거운 물건을 후임병의 군장에 몰아넣는 것은 기본이고, 밤에는 후임병들에게 자신의 불침번까지 서게 했다. 녹초가 된 상황에서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 1시간 이상씩 보초를 서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어차피 나에게 선택권 같은건 없었지만, 이렇게 답답한 시간을 견뎌내느니 차라리 몇 대 맞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두 번 해본게 아니었다.

휴가를 나온 나는 답답한 마음에 군대를 다녀 온 선배들에게 선임병들의 부당한 가혹 행위에 대해 토로했다. 그러나 선배들은 "자신들이 맞으면서 군생활했던게 억울해, 후임병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라며 선임병들의 행동을 이해한다고 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지금은 제대하고 없는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해놓고, 왜 애먼 후임병들에게 화풀이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선임병이 되면 부당한 부대 내 '폭력'을 뿌리까지 뽑아 내겠다고 다짐했다. 

부대 내 폭력을 뿌리 뽑겠다는 다짐은 사라지고...

▲ 군대의 구타 사건을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 청어람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알아서 잘 간다'는 말처럼 영원히 나를 괴롭힐 것 같았던 선임병 들도 하나, 둘 전역을 했고 이제 내가 어느덧 '선임병'의 위치에 올랐다.

때마침, 상급 부대에서도 부당한 가혹 행위의 근절에 대한 지시사항이 내려 왔다. 이제 진정한 '민주 군대'를 만들 수 있는 무대가 나에게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시사항을 받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선임병 들의 가혹 행위를 견디는 시간 동안, 어느덧 나도 그 때의 선임병 들과 똑같은 '억울함'이 생겨 버린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신종 가혹 행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사용한 방법이 바로 '대청소'였다. 건강과 위생을 위해 부대를 깨끗하게 한다는 '순수한 명분' 아래, 지친 후임병 들의 꿀맛 같은 자유 시간을 뺏는 방법이었다.

'대청소 가혹 행위'의 가장 큰 장점(?)은 '소원수리'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임병들이 "선임병이 만날 청소만 시킵니다. 영창 보내 주세요"라고 적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대청소는 어쩌면 가장 치사한 가혹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른 뒤, 아무 이유 없이 후임병의 자유 시간을 빼았던 내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 땐 이미 전역을 한 이후였다.

중요한 것은 '강력한 통제' 아닌 '마음의 변화'

이렇듯 부대 내에서 구타 및 가혹 행위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억울함' 때문이다. 자신은 선임병 들 때문에 힘들게 후임병 시절을 보냈는데, 정작 자신의 후임병 들은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억울함을 애꿎은 후임병 들에게 풀어서는 안된다. 차라리 휴가 나가서 자신을 괴롭혔던 선임병을 직접 찾아가 따지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얼마 전 경기도의 한 경찰서 내 의병 내무반에서 있었던 이른 바 '진급 신고식 구타 사건' 역시 "우리가 진급할 때 맞았으니, 너도 맞아야 한다"는 선임병 들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지휘관이나 상급부대에서 아무리 강하게 통제한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의 경험처럼 아무리 강한 지침을 내린다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다른 '폭력'은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강력한 통제'와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한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 당사자들의 마음이다. 한솥밥을 먹고 함께 고생하는 전우들을 형동생처럼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해자도 피해자도 괴로운 '폭력의 악순환'은 분명 끊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처럼 쉽다면 부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이미 사라졌겠지만….

▲ 이렇게 행복한 내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 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의무경찰 구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응모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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