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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수위, 국가인권위 독립을 보장해달라"

고등판무관, 이경숙 인수위원장에 서한 전달... 논란 확산 조짐

등록|2008.01.18 18:10 수정|2008.01.18 18:15

▲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원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유성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이하 인수위)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전환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가운데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인수위에 서한을 보내 '개편안 재검토'를 당부했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훼손 우려에 대한 논란에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적까지 가세한 형국이라 인수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루이스 아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18일 이경숙 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에 두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계획을 재고해달라"고 제안했다.

아버 판무관은 "인수위의 의도는 국가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내에서 위원회의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파리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파리원칙은 지난 1993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것으로, "국가 인권기구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구성과 권한의 범위를 헌법 또는 법률에 의해 구체적으로 부여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수위, 논란 확대되자 진화 고심

아버 판무관은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계획을 재검토해서 위원회가 국내외에서 평가받고 있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인권위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포럼의 중요한 회원기구이자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 기구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이 나설 만큼 국가인권위의 대통령 직속 전환 논란이 확대되자 인수위는 진화에 고심하고 있다.

박재완 정부혁신·규제개혁TF 팀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장과 상임위원 인선 방식은 그대로 둔다"며 국가인권위 인선을 통한 외부의 압력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의 상임·비상임위원 11인(위원장 포함)은 국회(4인), 대통령(4인), 대법원장(3인)이 선출·지명하도록 되어있다. 

박 팀장은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데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며 "헌법재판소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처럼 독립기구로 둘 법적 근거가 없어서 대통령 직속(행정부)으로 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지난 16일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3부(입법·사법·행정)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위원회(국가인권위, 방송위원회)의 지위는 헌법의 권력 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두 기관을 대통령 소속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박형준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위원은 다음날(17일) 추가 브리핑에서 "직제가 대통령 직속으로 바뀐다 해도 대통령의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며 "기능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지 않는 우려... 인권위 "인수위가 헌법정신 잘못 이해"

▲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자료사진). ⓒ 강이종행

하지만 인수위의 잇따른 해명에도 국가인권위의 소속 변화에 대한 우려는 식지 않고 있다.

당사자인 국가인권위는 16일 개편안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17일 긴급 전원위원회를 열어 "헌법의 권력분리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인수위의 의견은 헌법 정신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는 헌법이 정한 인권 보장 의무와 국회의 입법 절차에 따라서 설립된 무소속 독립 국가기관"이라며 "만일 대통령 소속기구로 전환된다면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며 국민의 인권이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을 통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두면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 입장을 취했고, 인권운동사랑방은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약화시켜 대통령의 손아귀에 쥐고 흔드려는 의도"라고 비난에 가세했다.

인권활동가 박래군씨는 "집권 세력의 인권 의식이 20년~30년은 후퇴한 것 같다"며 "정책마다 '선진화'를 주장하는 새 정부가 인권에 대해서는 세계적 수준에 맞춰가지 못하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소신 보여온 국가인권위, 행정부 종속된다면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는 3부와 거리를 두면서 정부의 정책에 다수의 반대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이라크 파병안,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자,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을 두고 참여정부와 다른 의견을 냈다.

하지만 행정부로 종속되면 다른 부처와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있는' 발언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특히 '사형제 폐지 불가' '불법 집단행동 엄단' 등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을 개인 및 단체의 민원이 늘어날 전망인 가운데, 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바뀌면 과거처럼 발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사외이사'를 두는 것과 같은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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