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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삶은 옥수수 '거참, 먹기 미안하네'

옥수수, 두 번째 만남에서야 비로소 너의 고마움을 알았다

등록|2008.01.19 09:39 수정|2008.01.19 09:39

삶은 옥수수 드실래요?비료나 농약 하나 주지 않고 키운 옥수수. 군침 돈다. ⓒ 강기희



영하의 날씨가 이어진 탓인가, 일주일 전에 내린 눈이 녹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 읍내로 이어지는 길은 아직 빙판이고 길 나서는 차량도 사람도 뜸하다. 추위 때문인지 개도 여간해서 짖지 않는 밤. 이 밤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가끔씩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 뿐이다.

산촌의 긴 겨울밤을 달래주는 건 '삶은 옥수수'

어젯밤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물과 씨름을 했다. 틀어 놓았던 물도 약했던지 호스가 얼어 붙었다. 손이 쩍쩍 들러붙은 추위를 견디며 한 시간에 걸쳐 호스 안에 얼어있는 얼음을 빼냈다. 아침에 해도 될 일을 굳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간에 한 것은 걱정 없이 잠을 편히, 그리고 오래 자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산촌이라 아침은 더디 오지만, 더디게 온 아침이라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날은 춥고 그 시간 눈이 발목까지 쌓인 바깥에서 할 일은 더욱 없다. 자발적 게으름이니 누구의 성정을 탓할 수도 없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그것도 재미없다 싶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영하 20도 정도 되는 날씨엔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임을 지나가는 바람이 알려주었다면 할 말들이 없겠다. 난방도 되지 않는 작업실에 아침부터 미친 듯 앉을 일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판을 두드려 본들 세상을 향한 욕지거리 밖에 쓰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에 그 시간엔 절대로 컴퓨터를 켜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가능하면 밤늦게 잠을 청하고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는 것이다. 새벽까지 글쓰다 겨우 잠들려고 하면 잠에서 깬 아버지 때문에 괴롭다는 소설가가 있다. 그는 새벽 시간 아버지가 장작을 탕탕 쩍쩍, 패는 통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시골에 사는 그의 푸념 만큼은 적어도 요즘의 내겐 이웃집 할머니가 풀어놓는 옛날 이야기와 같다. 

이 정도 되면 팔자 좋은 사람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두부 한 모를 사면서도 손을 부들부들 떨어야 하는 서민들의 가난을 설명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팔자 좋다는 말은 금방 거두어들인다. 난방유 한 드럼통에 21만원. 이 정도를 가지고 도시 생활자처럼 반바지 차림으로 살려면 보름도 못 견딘다는 사실이 슬플 뿐이다. 삶이 그러하니 참을 수 있는 한 그 한계점에 이르고 싶은 비장함이 은근히 생기기도 한다.

밤은 깊어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 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글감을 쫓아 가지만 긴 겨울밤은 자주 허기가 진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겨울밤, 산촌에서 피자를 주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갈비찜을 만들어 먹을 재주도 못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찾는 것이 지난 여름 냉동실에 쟁여 놓은 옥수수이다.

옥수수 삶는 중.옥수수는 삶아도 맛있지만 찌는 것이 더 맛있다. ⓒ 강기희



냉장고가 없던 시절 보관하던 방법으로 만든 옥수수.수확한 옥수수를 삶아 햇볕에 말려 보관한 뒤 삶으면 그 맛이 깊고 그윽하다. 고향의 맛이라고 생각하면 딱 어울리는 맛을 내는 옥수수. 냉장고가 생긴 이후 시골에서도 귀한 옥수수가 되었다. ⓒ 강기희


겨울을 위해 준비해 놓은 옥수수는 요긴한 간식거리이다. 강냉이라고 부르는 옥수수는 삶아도 먹고, 쩌서도 먹고, 볶아도 먹고, 멧돌에 갈아 밥을 지어 먹기도 한다. 가난의 상징인 옥수수가 요즘은 다이어트 음식이라 하여 도시인들에게 인기라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옛날 같으면 추운 겨울 밤 가족이 둘러 앉아 콩도 볶아 먹고 화롯불에 감자를 굽기도 하지만 요즘의 세상이라는 게 그런 재미도 없어진 지 오래라, 가스불에 옥수수 몇 통을 삶으며 긴 겨울을 보낸다. 어둠이 내리자마자 잠자리에 든 일흔여섯의 어머니는 가끔씩 일어나 화장실을 오가며 옥수수를 삶고 있는 아들에게 "배고프기 전에 얼른 자지, 여태 안 자고 뭐하냐"고 하신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옥수수, 먹으려니 미안해지네

그 말에 시간을 보면 아직 자정도 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렇게 두어 번 화장실을 더 다녀온 후 잠자리를 털고 하루를 시작한다. 아들은 늦게 잔다는 어머니의 그런 지청구가 귀찮아 어머니가 깨어나기 전 잠자리에 들고, 어머니는 아들이 청한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큰 소리로 걷지 않는다.

옥수수가 삶아질 때 훈기와 냄새만으로 춥기만 한 겨울밤이 푸근해지고, 어릴적 삶은 옥수수를 서로 먹으려고 주먹질을 하던 형제들까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는 드물게 과외공부를 했던 작은 형은 제 성질 결국 버리지 못하더니 지금은 고물장수를 하고 있고, 두 아들 힘겹게 키우는 여동생은 비정규직으로 애면글면 살고 있으니 나이들어 어쩌다 만나는 자리가 있어도 형제들은 어릴 때처럼 밝게 웃지도 못한다.

지나가는 소리라도 "요즘 어떠냐?" 하고 물으면 "늘 그렇지 뭐"하는 답만 돌아오는 세상이 더럽기도 하다가, "사는 게 다 그렇지" 하고는 체념해 버리는 삶이 평균적 일상이라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만다.

옥수수가 노랗게 익어가는 시간이 되면 하나를 꺼내 젓가락을 꿰어 먹는데 출출한 탓도 있지만 그 맛이 기가 막히다. 하룻밤 두어 통이면 허기를 면할 수 있으니 남는 것이 더 많다. 주인을 닮아 옥수수를 좋아하는 개를 위해 두어 통을 더 삶았으니 한밤 중 몰래 먹는 혼자만의 포식은 아닌 것이다. 먹다 남은 옥수수는 내일 아침 충성스런 개의 아침 식사로 쓰이고, 그래도 남으면 낮동안 주인의 간식으로 해결되니 남는다고 미련 둘 일은 아니다.

그런 옥수수였지만 오늘 밤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맛있게 먹기는 하지만 옥수수에게 뭔가 미안한 생각이 든 것이었다. 냉동실에 있는 옥수수는 지난 해 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틀림없는 '강기희 표' 옥수수였지만 이상하게도 공짜로 먹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옥수수를 위해 한 것이 없었다. 지난 해 봄 호미를 들고 옥수수를 심은 이후 옥수수대를 베어낼 때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수수 싹.옥수수 씨를 심고 열흘 정도 지나면 싹이 솟아난다. 저 혼자 크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다. ⓒ 강기희


옥수수 꽃.옥수수는 자체 수정을 통해 옥수수라는 열매를 만든다. 곷은 개꼬리라고 부른다. ⓒ 강기희



남들은 비료다 농약이다 잘도 주더만 나는 옥수수를 위해 물 한모금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희들끼리 쑥쑥 자랐고 어느 덧 나보다 키도 커졌다. 옥수수는 사랑을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수정을 했고 주인이 보든 안 보든 튼실한 옥수수 통을 만들어 냈다. 한 알의 옥수수가 두 통의 옥수수를 만들어 내는 그 힘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수백 배의 소출을 만들어낸 것은 내가 아니라 적당한 바람과 땅을 촉촉하게 적셔준 수분일 것이다. 옥수수 밭 고랑에 난 풀이라도 뽑아 주었다면 그나마 덜 미안했을 테지만 나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옥수수는 잘 자라 긴 겨울 밤 주인의 간곡한 허기를 채워주고 있었다.

농약 비료 다 마다하고 키운 옥수수, 내가 먹을 것인데 뭐 어때

이렇게 미안한 일이 어디 있을까. 태평농법이 아니라 방치농법에 가까운 아들의 농사법을 보고 어머니는 밭을 망친다며 지난 여름 내내 잔소리를 했다. 일하는 만큼만 먹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어머니의 그런 잔소리는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농약은 애당초 칠 생각이 없었으며 비료는 살 돈이 없다는 핑계를 달아 순간을 모면했지만, 밭에 뿌린 씨앗들에게 미안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에이, 강냉이는 비료 밥으로 키우는 거래요. 두어 번만 치면 팔뚝만 하게 커지는 게 강냉이거든요."

옥수수 밭에 비료를 주지 않는 고집을 꺾어보려고 누군가 말했지만 나는 끝내 비료를 주지 않았다. 내가 먹을 것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집 옥수수는 다른 집에서 키운 옥수수보다 통이 작았다. 그렇지만 겨울 밤에 삶아 먹는 옥수수 맛만큼은 지상에 존재하는 옥수수 중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면서도 맛있는 옥수수. 옥수수에게 필요한 영양분이라는 게 비료라면 올해도 주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상품으로 만들 일이 아니고 보면 내가 먹을 것을 알아서 만드는 것이 좋다. 나만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옥수수 농사는 그렇게 지었다. 그 옥수수로 쌀을 만들어 밥을 해 먹었을 때도 맛은 좋았다.

지난 해 여름 옥수수 값이 비쌌다. 칠레로 보낸 옥수수 종자가 제때 들어오지 않은 것이 비싼 이유였다. 덕분에 수입 옥수수가 판을 친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심고 거둔 옥수수를 원없이 먹고 있다. 옥수수 마니아들이 들으면 경을 칠 소리이기도 하다.

긴 겨울밤, 직접 생산한 옥수수로 출출함을 채우면서 미안함이 드는 것은 씨를 심을 때와 수확할 때 단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밭에 자주 들러 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옥수수통이 잘 영그라고 말해주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그러한 관심도 주지 않고 맛있게 먹으려니 그게 이 밤도 영 미안한 것이다.

옥수수를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사람치고는 옥수수 대접이 형편없다. 그렇지만 어쩌랴 천성이 그런 것을. 강추위가 몰아닥친 오늘 밤, 몇 통의 옥수수만으로도 촌사람은 행복하다가도 이렇게 미안하다. 이쯤되면 어린 시절 강냉이 밥을 먹고 자란 탓이려니 하고 이해해주는 일 밖에 없을 것 같다.

군 옥수수.삶은 것을 구웠다. 삶은 것보다 군 옥수수 맛이 더 좋다. 정신없이 먹다가 사진 찰칵.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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