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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에서 동양학으로 '개종'하다

[수기] 한 아마추어 과학자의 한의사 되기

등록|2008.01.19 07:56 수정|2008.01.19 12:17
子夏問曰(자하가 공자에게 여쭙기를)

  巧笑倩兮며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돋보이며
  美目盼兮여          아름다운 눈에 동자가 선명함이여!
  素以爲絢兮니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는 것은
  何謂也잇고?        무슨 말입니까?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繪事後素니라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하고 난 뒤에 하는 것이라

  曰 禮後乎             (자하가) 말하길 그렇다면 예(禮)는 나중이겠군요?
  子曰 起予者商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하(商)가 나를 일깨워주는구나!
  始可與言詩已矣     비로소 함께 시를 논할 만하다

이 글은 <논어(論語)>에서 주로 '예악(禮樂)'에 관한 부분을 담고 있는 '팔일(八佾)' 편의 일부입니다. 장면은 자하(子夏)가 시 한편을 읽고, 시구의 일부('素以爲絢兮')를 오해하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는 것이냐?"를 여쭙게 됩니다.

공자께서는 '繪事後素'(흰비단과 같은 바탕이 마련된 연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답하시면서 바탕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에 자하는 '그렇다면 사람됨이 먼저가 되고 예(禮)라는 형식은 나중이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고백하여 공자께 극진한 칭찬을 듣게 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繪事後素(회사후소)!

올바른 바탕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바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동양학을 하려는 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외람되지만 제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오랜기간 서양과학을 전전(공학에서 전산학으로 그리고 다시 카오스 수학으로)하였습니다. 뭣하나 제대로 끝낸 것이 없는 보잘것 없는 행보였지만 지금도 후회없는 '나름의 진리를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그 과정의 끝에서 다시 동양의학을 선택하면서, 나름으로 책을 보고 공부하는 것에는 이력이 난지라, 그저 '열심 한가지'만 가지면 쉽게 한의학을 익혀내고 여유가 있다면 '한의학의 과학화'에 기여해보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마음으로 저의 한의학 공부는 시작되었습니다.

헌데 (편입을 한 관계로) 본과1학년부터 시작된 학과공부들은 첫 시간부터 저를 당혹케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한의학 첫시간에, 본초학 교수님은 '방풍(防風)'의 예를 들어보이셨습니다.

"이 식물은 바닷가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내며 살아가는데 그래서 인체에 들어와서도 풍(風)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순간 저는 어안이 벙벙한 채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는 동양자연철학의 대표적 사유과정 중 하나인 유비추리(類比推理)와 동기감응(同氣感應)을 적용한 추론법으로서 이런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인체에 직접 투여하여 추론을 검증하는 과정 등이 필수적으로 추가됨은 물론입니다.

물속에 빠져 살아남으려면 물이 되어야 하는데...

암튼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이나 서양과학의 잣대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의 머리는 동양의학 강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마치 망망대해, 높은 파도에 심하게 요동치는 배안에서나 느끼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시간을 아껴 공부해보겠다고 학교 옆에 얻어둔 자취방에서 공부하다 말고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나?'하고 자조 섞인 웃음으로 누워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고체계에 승복할 수 없었기에, 수없이 재시에 삼시를 치러야 했던 악몽과도 같은 본과 일년을 끝내고, '이 길을 계속하여, 감기 환자 하나라도 제대로 고쳐낼 가능성을 본다면 돌아올 것이고, 그런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결심으로 휴학계를 냈습니다.

쉬는 1년 동안, '소위 말하는 한의학의 대가라는 자들의 재현성을 검증해 보리라'는 오만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병을 앓고 있는 가까운 식구들로부터(일부 서양의학이 포기한 만성병을 앓는) 잘 아는 주변 이웃들을 모셔가서 (나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보호자로 위장하여) 진맥과 처방받는 과정을 옆에서 일일이 지켜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들이 준 처방 약첩을 풀어 어떤 약재가 들어갔는지를 일일이 적어도 보고, 잘 모르는 희귀 약재들은 본초학 조교들에게 판별을 부탁하기도 하였으며, 방제학 교수님께는 '이게 어떤 때 쓰는 처방이고 몸에 들어와서는 무슨 원리로 병을 고쳐내는가?'를 묻기도 하고, 때로 약에 대한 반응이 병을 악화시킬 때에는 환자를 대동하고 함께 처방을 준 한의사에게 찾아가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근 10개월에 걸친 나름의 검증작업에서 얻은 결론은, 소위 말하는 한의학의 대가들에게는 결코 신비한 비방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 더불어 철저하게 세뇌된 서양과학의 시각이, 태생이 전혀 다른 동양의 사고체계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을 뿐, 철저히 동양식으로 사고하고, 제대로 한의학을 공부한다면, '분명 병을 옳게 다루어 낼 수 있는 실존의학으로서의 실체는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繪事後素'(회사후소)!

바탕이 이미 서양과학으로 잔뜩 칠해진 위에 한의학이라는 전혀 다른 채색을 하려니 관념에 부조화가 생긴 것임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방인?

오늘의 우리는 아시아의 한가운데, 동양의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쏟아지는 지식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거의 서양 학문 체계입니다.

과학적 소양만이 물결치는 바닷속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조상들이 귀히 생각하고 사고하여 왔던 방식이 아닌, 서양문물이 전해준 사고에 젖어들어 살게 된 것입니다. 괴상한 이방인들이 된 것이지요.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바탕이 이미 서양과학으로 진하게 덧칠되어 버렸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의학(韓醫學)에 입문하려는 자, 동양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하는 자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비우는 작업', 즉 올바른 흰색 도화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저와 같이, 오랜 서양과학의 편력으로 그 바탕이 온통 덧칠된 경우라면 오히려 그 비우는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아직도 한의학 서적을 보면서, 옛날 그 서양과학을 공부하던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해 끙끙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양학을 있는 전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나누고 자르고 분석하여 보려는 버릇. 한참이나 끙끙 대다,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보면, 또 다시 못된 버릇이 발동하였구나 하는 회한에 미소짓곤 합니다.

이 못된 버릇이 언제나 고쳐질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못된 버릇과의 싸움은 일생 계속되리라 생각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겨가는 순간 순간, 동양의학의 소양, 생명을 전체로 볼 수 있는 소양이 커져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繪事後素(회사후소)! 오늘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문구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서양과학이 우리사회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모든 것이 과학의 잣대가 아니면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현시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팽배한 과학적 조류가 지나치게 눈앞에 나타나는 것에만 주목하는 공시적(Synchronic)인 면을 강조하는 것에는 대단히 큰 우려를 느낍니다.

과학은 공시적 진리성과 더불어 시대를 뛰어넘는 진리성, 즉 통시성(Diachronie)을 가져야 진정 인류에게 유익한 것이 되기에, 과학을 익히던 한 아마추어 과학자가 동양자연철학의 통시적 깊이에 새롭게 눈떠 한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을 수기 형식으로 서술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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