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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을 알면 '인권'이 보인다

법조인으로 새출발하는 박성철 시민기자가 쓴 <헌법줄게 새법다오>

등록|2008.01.20 11:32 수정|2008.01.20 21:31

▲ <헌법줄게 새법다오>책표지. ⓒ 이매진

2004년 ‘대통령 탄핵사태’와 ‘행정수도 건설 중단’은 노무현 정부에겐 천당과 지옥을 오갈 만큼 극단적인 사건이었다.

헌법재판소(헌재)는 그 해 5월 탄핵심판을 기각했지만, 10월에는 ‘관습헌법상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며 신행정수도특별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의 힘을 새삼 확인해준 사건들이었다.

그뿐일까. 군필자 가산점제도, 시각장애인과 안마사 자격, 간통죄,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 등 우리 사회의 제도들이 헌재의 심판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갈수록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하지만 비전공자들에게 헌재의 결정은 너무 어렵고 접근하기가 너무 힘들다. 판례를 해설해 놓은 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새내기 법조인이 나섰다.

시민기자 출신 법조인, 어려운 헌법재판소 결정 실생활에서 녹아내다

박성철이 쓴 책 <헌법줄게 새법다오>(이매진 펴냄)는 추상적인 헌법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실생활에서 녹아냈다. 그가 문학평론을 썼던 경력 때문인지 어려운 법률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담백하게 담아낸다. 책 곳곳에도 시와 소설, 영화대사를 직접 인용하거나 문학작품을 사건에 빗대어 소개하는 부분이 자주 나오는데, 딱딱한 법률용어를 희석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 소개를 좀 더 하자면 박성철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이다. 2005년에는 이 달의 뉴스게릴라상을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그가 그 해 연재한  ‘헌법재판 오디세이’를 기억할 것이다. 이 책에는 당시의 기사들도 정리되어 들어가 있다.

책은 인권과 기본권, 양심, 신체, 처벌, 영화, 표현, 언론, 집회, 알 권리, 노동, 평등, 가족 등의 주제별로 구성됐다. 그래서 ‘18가지 테마로 엮은 헌법재판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간통죄, 양심적 병역거부, 준법서약제, 공무원의 노동3권과 같은 무거운 사안부터 불량만화 처벌사건, 안전벨트 의무착용, 18세미만 당구장 출입금지 등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사안까지 담았다. 

기본권, 양심, 표현, 평등, 가족 등 18가지 주제로 엮어

이 모든 주제를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당연히 기본권(인권)이다. 이 책은 헌재의 결정문을 소개하면서 어떤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되었는지 알려주고, 한발 나아가 스스로 인권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저자는 인권은 거창하고 숭고한 개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헌법재판소를 찾은 사람을 보고 “국가권력이 개인을 통제하고 벌을 주는 법률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딴지걸기라고 비난부터 해서는 곤란하다”고 변호한다.

또한 어느 출판사의 누드 화보집이 ‘음란·저속’하다는 이유로 출판등록을 취소한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는 훌륭한 ‘예술품’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사사로운 인간의 보잘 것 없는 표현까지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과잉금지 원칙이 헌법 정신 관통

저자는 헌법정신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과잉금지원칙을 강조한다. 즉,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이 적합해야 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며, 공익과 사익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되며,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난다면 위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잉금지원칙은 참새를 잡기 위해 대포를 쏘지 말아야 한다는 소박한 상식에서 출발했다. 모기를 보고 칼을 뺄 수는 없는 형편이고,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 … 과잉금지의 원칙을 적용해도 결론이 수학문제의 답처럼 획일적인 것은 아니고 재판과 개인의 헌법적 관점, 가치관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재판관이 달라지고 사회가 변하면서 판례가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헌재의 결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맹신하지는 않는다. 또한 단순히 위헌이냐 아니냐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결론을 뒷받침하는 배경 설명과 소수의견까지 밝히고 거기에 저자의 견해까지 덧붙인다.

저자는 교수 기간임용제(재임용제) 사건을 소개하면서 93년 재임용제도에 대해 6대3으로 합헌 의견을 냈던 헌재가 10년이 지난 2003년에는 재임용구제절차에 대한 규정미비 등의 이유로 2대 7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사실에 주목했다.

“과거의 소수가 오늘의 다수가 된 것이다. 오늘의 소수자가 영원한 소수자는 아니며 다수도 마찬가지다. 결국 토론과 설득을 통해 소수의견이 다수의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진보와 발전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서 헌재가 ‘국민의 법감정’이나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결정적 논거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우리 사회의 특수성은 대개 분단상황에서 비롯되는 게 많다. 여기서 발생하는 현실적 문제점은 때로 우리 입법이 보편적 국제기준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국민 법감정’, ‘분단상황’ 강조하면 보편적 국제기준과 멀어져

저자는 국회의원선거 1인 2표제를 바꾼 헌재의 결정을 “민주노동당이 의회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듯이 소수세력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저자는 헌법이 이념에 따라 좌우되는 것을 경계했다.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금지 조항이 입법의 정당성과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99년 위헌결정을 받은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 결정에 대해서 노동계와 경제계는 서로 다른 논평을 냈다. 언론 혹은 여러 단체도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헌법은 기본적으로 이념을 초월하는 텍스트다. 죽어있는 글자조합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보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이리저리 뒤틀리는 활자가 될 수는 없다.”  

저자 박성철은 다양화를 지향하는 정신이 법과 제도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인권과 남을 존중하는 정신을 생각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행정부, 사법부와 구별되며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탄핵심판 등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이다. 헌법재판관은 총 9명으로 경력 15년 이상의 법조인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그중 대법원장, 국회가 지명한 사람을 각 3명씩 임명하게 되어 있다.

헌법재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헌법소원과 위헌법률심판이 있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이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 청구하는 제도이다. 헌법소원은 권리구제의 최후 수단으로써만 가능하며,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하여야 한다.

위헌법률심판은 재판중인 사건을 적용하는 법률(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심이 있을 때 법관이 심판을 제청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컨대, 형법의 간통죄와 민법의 동성동본금혼조항, 호주제도는 관련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던 판사가 헌재에 위헌제청을 하였던 경우이다.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결정, 정당해산 결정, 헌법소원을 받아들이는 결정을 하려면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법이 헌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도 ‘위헌결정’ 대신 법 개정 때까지 효력을 유지시키는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릴 수 있다.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이 이런 경우인데, 헌재는 이 법이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므로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지만, 국회가 법을 개정할 때까지는 이 법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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