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먼저 내린 '친노 선장' 유시민
[유창선 칼럼] 유시민의 탈당과 '친노' 해체 선언을 보고
▲ 유시민 의원이 16일 국회정론관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탈당을 공식선언한 뒤, "대한민국에는 유연한 진보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이 필요하다"며 신당창당 추진의사를 밝혔다. 유시민 의원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 의원은 이 말을 "욕하려고 하는 소리"라고 불편해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지난 5년간 유 의원과 노 대통령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였다. 그 스스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보면 아버지나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친노' 중의 '친노'였다.
당을 떠나는 것, 당을 만드는 것, 모두가 개인의 정치적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아무리 '친노'의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이어도 그러한 권리조차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의 새로운 행보를 지켜보기가 개운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유시민 탈당,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
무엇보다 유시민 의원에게서는 책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지난 5년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갖고 있는 당사자다. 정동영 전 의장이나 손학규 대표가 갖고 있는 책임의 무게와는 또 다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덕으로 여러 정치적 수혜를 입기도 했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노 대통령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와 노 대통령은 공동운명체였다.
일등공신에게는 수혜만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독선에 빠져 민심을 등지고 잘못하고 있을 때, 유시민 의원이 나서서 이를 말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에게 걸려있는 책임의 무게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유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대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가 심판받아야 했던 이유에 대해 동의하든 안하든, 그것이 현실이라면 유 의원은 다른 누구에 앞서 지난 5년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당을 떠나는 유시민 의원에게서는 그러한 모습을 읽을 수 없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발전 가능성이 없다는, 자신이 떠나는 곳에 대한 험담은 남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없었다.
유시민 의원은 대선 직후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총회에서 "나를 포함해 당과 정부를 이끌어온 책임있는 사람 20~30명이 불출마하거나 한나라당 강세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해 박수를 받았다. "당이 원하지 않으면 대구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살신성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앞장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의 탈당은 당을 위해 살신성인하겠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당선가능성이 희박한 대구에서 출마하기로 했으니 자기희생의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지금 이 마당에 대구 출마가 무슨 대수이겠는가. 대구 아니라 비호남지역의 어느 곳에 출마해도 신당 간판으로는 당선이 어렵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특별한 희생의 결단이 되겠는가.
창당 구상에 앞서 보여주어야 할 것
▲ 유시민 의원이 16일 국회정론관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탈당을 공식선언한 뒤, "대한민국에는 유연한 진보노선을 가진 '좋은 정당'이 필요하다"며 신당창당 추진의사를 밝혔다. 유시민 의원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한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이종호
중단없는 전진을 하겠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야 할까. 그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좋은 정당'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유연한 진보'와 손학규의 '새로운 진보'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우선 모르겠다.
'좋지못한 정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은 유 의원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경선에 나섰던 정당이 아니었던가. 대선을 전후로 뒤바뀌어버린 입장의 배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개미군단을 모아 '좋은 정당'인 개혁당을 만들었다가 없앴던 그가, 이제와서 다시 '좋은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는 이유를 또한 모르겠다.
유시민 의원의 대구 출마나 신당 구상에 대한 여러 정치적 해석은, 그의 속생각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일단 삼가하기로 하자.
그러나 지금 그가 보여야 할 것은 쉬지않고 정당을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은 말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지경이 되었어도 나는 정치를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모습으로 비쳐진다면, 너무 가벼운 변신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먼저 지나간 한 시대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난 뒤에야, 그 다음의 포부와 설계를 말하는 것이 순서이다.
유시민, 그의 빠른 변신이 숨차다
친노 진영 해체 선언을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꺼내는 그의 모습도 당혹스럽다. 유시민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친노진영이라는 것은 없다고 본다.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결사체로서의 친노진영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진단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유시민 의원의 탈당으로 친노진영은 해체의 단계로 들어갔다. 세력으로서의 '친노'는 이제 정치무대에서 퇴장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그의 말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않다.
물론 그가 '친노신당' 선언이라도 했다면 나는 현실을 외면한 발상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그가 이렇게 빠른 변신의 모습을 보여주니 오히려 당혹스럽다.
유시민 의원에게 있어서 친노진영의 의미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을까. 친노를 하다가 안되니까 다른 친노 동지들은 놓아두고 탈당해서 다시 새로운 간판으로 새로운 당을 만들고…. 그런 것일까.
그가 차라리 4월 총선에서 어리석게도 '노무현 정신'의 깃발을 들고 산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동의는 할 수 없을지언정, 장수다운 기개를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어리석은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항해하던 배가 위태로울 때 선장은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린 뒤에야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리는 법이다. 그와 함께 '친노'로 불리웠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침몰위기에 처해있는 대통합민주신당호를 타고 4월 총선으로 가고 있다.
배가 위험한 줄은 알지만, 무턱대고 바다로 뛰어들 수 없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은 이해찬 전 총리과 함께 그 배에서 먼저 내렸다. 어제의 '친노 진영'이 오늘은 각자가 살 길을 찾아나서는 모습이다.
그의 변신이 너무 빠르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새로운 논리가 쉽게 정리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쫓아가기가 숨차다.
'정치적 아버지'인 노무현 대통령은 저 모양이 되어 퇴임하는데, 유시민 의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면, 그때 국민정서법은 어떤 판단을 내릴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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