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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스타' 안정환이 가는 길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로 귀환하는 안정환

등록|2008.01.21 14:24 수정|2008.01.22 00:09
2006 독일월드컵 종료 뒤 6개월간 무적(無籍)선수로 팀을 찾아 헤매던 '반지의 제왕' 안정환은 지난해 1월 수원 삼성에 1년 계약 조건으로 입단했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그는 "신인으로 돌아간 기분"이라며 7년만의 K리그 복귀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안정환의 K리그 귀환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수원은 그의 등번호로 공격의 중심인 '10'번을 부여했다. 상당수의 팬이 클럽하우스를 찾아 첫 훈련을 시작하는 그를 향해 환호하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현장을 찾았던 수원 팬 조연미(29)씨는 "안정환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설렜는데 수원이라는 강팀과 합쳐져 큰 기대가 됐다"고 회상했다.

안정환이라는 이름의 무게 

안정환을 위한 카드섹션수원 삼성 서포터 그랑블루는 사상 최초로 특정 선수를 위한 카드섹션을 통해 안정환에 힘을 불어 넣었다. 이후 안정환은 홈페이지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 수원 삼성

안정환의 위력은 팬들에만 그치지 않았다. 24시간 뉴스전문 케이블이 이례적으로 클럽하우스에 중계차를 보내 훈련을 마친 그를 정규뉴스로 연결, 생방송 인터뷰를 했을 정도였다.     

입단 한 달 뒤 그는 '국산' 스포츠용품 업체 훼르자와 3년간 20억(용품 포함)이라는 후원계약을 맺었다. 당시 후원식장에서 만났던 훼르자 우영준 회장은 "(안정환이)첫 훈련 때 쓰고 나온 모자의 판매량이 평소의 서너 배가 됐다"고 그를 통한 홍보효과가 상당함을 설명한 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이고 앞으로 지도자가 될 때까지 후원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차범근 감독은 안정환을 대전 시티즌과의 정규리그 개막전에 선발로 내보냈다. 후반 12분 안효연과 교체되기는 했지만 한층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이며 폭우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2만 5천의 수원 팬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열흘 뒤 대전과의 컵대회에서 해트트릭을 보여주며 수원 팬들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차범근 감독의 전술에 쉽게 융화되지 못했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격수가 갖춰야 하는 득점을 하지 못하면서 우려도 쏟아졌다. 예전의 안정환이 아니라는 의문도 쏟아졌다.  

부진에 빠져도 그는 '스타'라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난해 9월 FC서울과의 2군 경기에서 극성 서포터의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참지 못해 관중석까지 난입, 1천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으며 프로축구연맹의 상벌규정을 강화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이런 안정환을 위해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에서는 신문광고를 냈다. 광고는 수원뿐 아니라 '대한민국 4천5백만'이 그의 뒤에 있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안정환이 가진 의미를 비단 수원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크게 확대한 것이다. 그랑블루는 이에 그치지 않고 'Ahn 10 ♥'이라는 카드섹션을 선보여 안정환을 감동하게 했다.

특정 선수가 광고나 카드섹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평소 축구에 관심을 갖지 않던 이들도 안정환의 부활을 기원하며 극성 서포터들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안정환

안정환 격려 광고 프로축구 2군 경기에서 한 과격 서포터에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들은 뒤 관중석까지 난입했던 안정환을 위해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와 팬클럽은 전면광고를 했다. ⓒ 스포츠서울 지면 발췌

안정환에 대한 기대는 이런 것이었다. 두 차례의 월드컵에서 극적인 골을 넣으며 희열과 기쁨을 안겼던 기억이 온 국민에게 생생하다. 팀이 없어 어려움이 처할 때도 그는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알아서 선택해 갔다.

수원과의 계약 종료 뒤 그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마침 K리그는 거품빼기 바람이 불었다. 구단 운영비의 7~80%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 몸값을 빼기 위한 각 구단들의 노력이 시작됐고 안정환도 이에 해당됐다. 1년 동안 보여 준 것이 별로 없으니 재계약을 하게 되면 연봉 삭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안정환에게 연봉 삭감은 자존심의 하락과 동일했다. 자연스럽게 해외 진출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 축구 에이전트는 "안정환의 진로는 유동적이었지만 일본 J리그에서 지속적으로 그를 원했던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에이전트도 "돈으로만 따지면 안정환이 갈 곳은 많다"며 해외 진출에 대한 무게를 더욱 높였다.

그러나 그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후 이동국(미들즈브러), 고종수(대전시티즌)와 함께 트로이카체제를 구축하며 K리그 르네상스를 열었던 당시의 소속팀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번 선택에서 안정환은 연봉을 구단에 위임했다. 다른 선수들과 동일하게 적용받아 자진삭감했다고 구단은 밝혔다. 돈 문제가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함께 4강 신화를 만들었던 공격수 황선홍 감독과 재회하게 됐다. 더불어 그의 이탈리아 진출 후 나락으로 떨어진 부산의 축구 열기를 살리는 촉매제로 작용하게 됐다. 부산팬들은 그동안 줄기차게 '대형스타'의 필요성을 외쳤기에 안정환의 귀환은 관중 몰이에 큰 효과로 나타날 전망이다.

부산 팬 구효정(31)씨는 "황선홍 감독의 선임만으로도 관중 증가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안정환의 입단으로 6만 석을 자랑하는 아시아드 경기장이 매 경기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젊어진 부산에서 그는 몇몇 최 선참 선수들과 함께 팀을 이끌어가는 위치에 서게 됐다. 그가 원하지 않아도 이제는 리더쉽을 발휘 할 때가 온 것이다. '판타지스타'로 불리는 그의 새로운 출발은 다시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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