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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고독이 형상화 된 <나이트혹스>

대중문화의 아이콘, 에드워드 하퍼의 <나이트혹스>

등록|2008.01.21 15:25 수정|2008.01.21 15:42

▲ 에드워드 하퍼가 그린 나이트혹스(Nighthawks) ⓒ 시카고 미술관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가 1942년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던 식당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시간은 새벽 2~3시쯤 되었을 것이고 24시간 영업하는 식당 안 손님은 커플로 보이는 남녀와 남자 한 명뿐이다. 마치 수족관처럼 식당은 형광등 빛으로 환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보이지 않는다. 식당 바깥의 거리도 텅 비어 있다. 전체적으로 활기차기보다 쓸쓸한 느낌이다.

미국 대도시 늦은 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다. 싸구려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는 청춘들은 어느 도시에나 있다. 그만큼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에드워드 하퍼는 이 작품을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이나 절망감을 표현했다.

<밤의 매>(Nighthawks)의 세 손님은 모두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커플과 남자 사이에 전혀 교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커플도 그다지 친밀해 보이지 않는다. 이 둘은 커플이 아니라 여기서 만난 사이일지도 모른다. 종업원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 손님에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환한 형광등은 이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고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하퍼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고 은둔적인 삶을 살았다. 그의 작품 속 대부분의 여인은 배우이자 화가였던 자신의 아내 죠세핀(Josephine)을 모델로 그렸다. <나이트혹스>의 여인도 역시 죠세핀이 모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하퍼 자신도 손님으로 등장한다. 하퍼는 고독한 현대인을 단지 관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감정이입한 것이다. 어쩐지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그의 고독했던 삶을 살며시 드러낸 것 같다.

이 그림의 제목인 <밤의 매>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올빼미같은 사람을 뜻한다.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에서 이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도시의 고독이라는 주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그림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다양한 매체로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아마 미국의 고딕(American Gothic)과 더불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일 것이다.

▲ 고트프리드 헬른바인이 나이트 혹스를 패러디하여 그린 "Boulevard of Broken Dreams" ⓒ 고트프리드 헬른바인


고트프리드 헬른바인(Gottfried Helnwein)은 하퍼의 그림을 패러디하여 <망가진 꿈의 거리>(Boulevard of Broken Dreams)을 그렸다. 손님과 종업원을 스타인 제임스 딘, 마를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험프리 보가트로 바꿨다. 모두 한때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요절하거나 비극적인 삶을 산 스타들이다. 헬른바인의 작품은 최고의 연예인이 느끼는 고독에 초점을 맞췄지만 하퍼의 주제의식과 분명히 통하는 면이 있다.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고독한 인간이었다.

하퍼는 영화광이었고 그의 많은 그림들은 영화 스틸사진과 비슷하다. 특히 이 그림은 30년대 느와르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미래의 르와르를 상상하며 블레이드러너를 만들었다고 한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는 이 그림은 카메라의 시점으로 그려져서 아주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영화적 현실이 담겨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하퍼의 다른 그림 속 인물들도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처럼 외롭고 절망적이다.

▲ 나이트혹스를 패러디한 CSI 포스터 ⓒ CBS


CSI가 하퍼의 그림을 패러디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두운 연구실에서 싸늘한 시체를 다뤄야하고 고독하게 증거와 범인을 찾아야 하는 CSI 멤버들은 하퍼가 그린 현대인의 고독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체를 가운데 두고 고독하게 바깥을 응시하는 CSI의 멤버들을 담은 포스터는 절묘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교감이 전혀 없는 이들은 고독하다 못해 화가난 듯한 표정이다. 마치 그걸 알아달라는 듯 몇몇 인물은 도발적으로 카메라를 쳐다본다.

▲ 나이트혹스를 패러디 한 만화 <심슨>의 도너츠 가게 ⓒ FOX


인기 만화시리즈 <심슨>도 <나이트혹스>를 패러디했다. 식당이 도너스 가게로 대체되었다. 도너스는 경찰이 잠복근무를 할 때 즐겨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손님 중 한 명은 경찰이다. 호머도 산더미처럼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도너스를 마구 먹는다. 호머의 고독한 심정을 잘 표현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70년대쇼>(That 70s Show)에서 에릭의 아빠, 엄마인 레드와 키티가 결혼기념일에 서로 다투고 난 후, 하퍼의 그림에서 나온 것 같은 식당에 있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글렌게리 글렌로즈>에서 고독한 두 인물이 들어가는 식당도 비슷하다. 그 외에 만화, 음반, 포스터 등으로도 패러디되어 더 많은 대중들의 인기를 누렸다.

<나이트혹스>가 대중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퍼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예술로 끌어올려서 그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단지 대도시인이 느끼는 고독만이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인간의 실존적 고민을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이다. 가장 친숙한 공간을 낯선 예술적 공간으로 형상화시켰다. 밋밋하고 평면적인 공간 속의 사람들이 갑자기 복잡한 과거와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퍼는 누구나 지나치는 지극히 미국적인 공간에 천착하여 독자적 예술로 형상화했다. 그가 포착한 20세기 중반의 현실은 21세기 현대인에게도 적용된다. <나이트혹스>는 21세기의 외로운 인간들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그림이다.

▲ 에드워드 하퍼 ⓒ 휘트니 미술관

에드워드 하퍼 (1882~1967)는 뉴욕주 나아크의 비교적 풍족한 상인가정에서 태어났다. 뉴욕예술디자인학교에서 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스승 로버트 헨리는 하퍼에게 세상을 뒤흔들 수단으로 예술을 이용하기를 가르쳤다. 몇 차례 유럽을 방문한 하퍼는 특히 현실주의와 인상파의 영향을 받았다. 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화풍은 이 시기부터 형성되었다.

그는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포스터 그리는 것으로 성공하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회화 그리기에 계속 매진하였다. 그는 유화뿐 아니라 에칭 판화와 수채화도 자주 그렸다.

그는 미국의 일상생활을 주로 그렸다. 주유소, 집, 식당, 시골풍경, 도시의 텅빈 공간, 건물 안의 사람들이 주된 주제였다. 그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한 단면을 잘 포착한 화가로 유명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류동협의 맛있는 대중문화"(ryudonghyup.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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