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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내음 대신 기름 냄새 진동

[태안자원봉사 참가기] 사고 47일 만에, 어민 3명이나 자살한 후에 삼성은 대국민 사과 했다

등록|2008.01.21 18:27 수정|2008.01.22 07:48
사실은 그랬다. 솔직히 귀찮았다. 함께 도서관 일을 하는 엄마들도 태안을 한 번 가봐야겠다며 못쓰는 옷을 바리바리 싸서 태안에 보낼 때도 나는 무덤덤했다.

너무나 많은 사안들을 쫓아다니며, 성명서도 쓰고 집회도 참가하고, 농활은 이제 수시로 다니기 때문에 멀리 4시간이나 걸려 강원도에서 태안을 간다는 것,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기름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춘천에서 태안을 가려면 새벽 3시 차를 타야 한다.

밤을 새고 오른 버스

1시간을 자고 부은 얼굴로 새벽 2시 50분에 택시를 잡아탔다. 젊은 처자가 새벽에 옷을 한껏 껴입고 택시를 타자, 아저씨가 의아해서 "어딜 가냐"고 묻는다.

너무 늦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막상 귀찮아하는 내 마음을 들킬 것도 같아서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태안에 간다"고 했다. 그러자 택시기사 아저씨는 "잘 다녀오라"며 택시비 200원을 깎아 잔돈 7500원을 거슬러주었다.

그냥 '태안에 간다'고 했을 뿐인데, 아저씨는 잘 다녀오라며, 잘하고 오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니 나는 어벙벙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참가한 태안 자원봉사는 민주노동당 춘천시위원회에서 주관한 것으로 버스에 오르니 당원들 반, 춘천시민들이 반 정도 섞여 40여 명의 사람들이 차에 타고 있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까지 새벽 3시 정시를 맞추어 차에 올라타 있는 것을 보니 태안 가기를 귀찮아했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꼬리뼈가 배기도록 버스를 타고 정신없이 잠을 자다 보니 어느새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에 도착했다. 창 밖에는 흰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를 반기고, 인적이 드문 듯하지만 바다풍경이 언뜻 보기에 청량해 보였다. 적어도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름다운 태안 바닷가멀리서 보면 바다 풍경이 아름답지만, 지금 이곳은 기름냄새가 떠돈다. ⓒ 이선미

바다 내음 대신 기름 냄새
차에서 내려 김밥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곧바로 방제복, 장화, 고무장갑, 마스크, 모자를 챙기고 바닷가로 나갔다. 일들은 팀별로 각기 배분되었는데, 우리 팀은 바위를 닦았다. 다른 팀들은 모래를 파서 기름을 닦거나 쓰레기들 치우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준 헌옷들로 바위를 닦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 탓에 기름은 단단히 응고되어 바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검은 바위를 어느 세월에 닦으려나 생각이 들었지만, 오래 문지르자 제법 바위색깔이 나왔다.

초등학생들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바위 앞으로 달려들었지만, 손목도 아프고 손발이 차서 그런지 많이 지쳐 보였다. 그러나 잠시 쉬다가도 다시 '아까 그 바위'로 돌아가 끈기있게 바위를 닦았다.

기름을 닦는 초등학생들날씨가 춥지만 기름을 열심히 닦아주었다. ⓒ 이선미

닦아야 할 바위들은 많았다. 멀리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가까이 가면 둥글게 뭉쳐진 기름들이 손쉽게 보였다. 허리를 굽히고 앉아 바위를 들여다보자 거칠한 표면을 어디서부터 닦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바위를 문지르던 이들은 시간이 지나자 철퍼덕 엉덩이를 대고 바위 하나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바위를 닦던 한 후배는 1시간 만에 말을 건넨다.

"이건 무슨 도를 닦는 기분이야."

그도 그럴 것이 바위 하나를 두고 굳어있는 기름때를 닦는 일은 재빨리 끝내지지 않았다.

돌 하나 붙들고 1시간구석구석 진 기름들은 젓가락이나 칫솔로 꼼꼼하게 닦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다. ⓒ 이선미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바위들을 들여다보자 기름냄새가 올라온다. 칫솔, 철수세미, 젓가락 등이 없었다면 구석구석 바위를 닦는 일이 한층 더 힘들었을 것이다. 혼자 바위를 붙들고 도 닦는 일이 힘들어진 이들은 2인 1조가 되어 바위를 닦기도 했다. 초등학생 1학년 아이도 참가해 돌을 닦았는데, 큰 바위를 멋모르고 닦다가 힘이 부쳤는지 어느샌가 멀리 떨어져 작은 돌멩이들을 닦기 시작했다. 작은 얼굴에 마스크를 하고 눈만 빠끔히 내보이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돌멩이를 닦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면서도 기분이 먹먹했다. 

곳곳에 기름 흔적들까맣게 기름이 붙은 바위, 돌멩이들 ⓒ 이선미

자원봉사 이전에 문제의 원인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 중요 동일한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의문이 든다. 바위와 돌멩이, 모래를 닦으면 과연 바다가 살아날까?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 바위를 닦는 일이 도루묵이 되진 않을까? 이렇게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발벗고 일을 하는데 정부는 과연 피해보상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 사고를 떠넘기기에 바쁜 삼성은 또 어떠한가? 계속되는 태안 어민들의 분신, 자살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바위를 닦으면서도 왠지 이 일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일이 처리되는 모습들이 화가 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앉아서도 닦아보고허리를 구부리고 돌을 닦다가 다들 힘이 든지 철퍼덕 앉아 돌을 닦았다. ⓒ 이선미

자원봉사를 하는 것만큼, 국민들에게 사고의 본질을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 한번 다녀오는 자원봉사로 "나, 그래도 태안 다녀왔어"하고 위안을 삼기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고개를 돌려 볼 일이다.  

기름을 닦고 있는 고등학생집에서 가지고 온 젓가락, 칫솔 등을 이용해 기름을 닦았다. ⓒ 이선미

사고 47일 만에, 어민이 3명이나 자살한 후에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나 사과 이후 구체적인 책임 여부에 있어서는 여전히 말을 돌릴 뿐이다. 비자금 조성에는 열을 올리면서 국민들이 키워준 대기업 삼성은 끝내 어민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생계지원금을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주민들에게 지원금이 전달되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갑갑한 마음에 최근 녹색연합에서 만들어 뜨는 '삼성 텔미'를 다시 한번 들었다.  '삼성 텔미'에서 외치는 삼성의 사과는 받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다. 아마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삼성에 국민들이 한번 매서운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초일류기업 삼성은 초저질기업이라는 말이 새삼 공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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