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유권자에게 '계륵'이 돼버린 통합신당

[주장] 인물과 비전으로 본 대통합민주신당

등록|2008.01.23 09:51 수정|2008.01.23 10:47

▲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17일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 새로 임명된 강금실, 김상희, 홍재형 6명의 최고위원과 함께 들어오고 있다. ⓒ 유성호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계륵'이다. 계륵을 앞에 두고 오랫동안 좌고우면 해보았자 본인의 속만 타는 법. 버릴 지 과감히 삼킬지,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내세우는 각종 정책과 그 방향, 이를 추진하는 태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의 본질을 깨닫고 가슴을 치는 데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이 때 국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기댈 수 있는 정당이 존재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적어도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 예상되므로 그 정당은 군소 정당이 될 것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계륵을 삼킬지 버릴지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은 2년 후 신당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작지만 강한 정당'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세가 약한 군소정당이 국민에게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비전과 인물에 있어서 매우 큰 우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이 그러한가?

5년새, 늙고 진부한 채 무능해진 386

우선 인물을 살펴보자.

지금 대통합민주신당 주도세력은 '손학규+386'으로 표현된다. 손학규 대표에 대한 전력에 대하여는 그동안 워낙 많은 말들이 있었으므로 386에 대하여만 이야기해보자.

질문은 간단하다. 현재 386이 미래를 상징하는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주고 있는가?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러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참여정부의 주도세력은 '노무현+386'으로 상징된다(일각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실세는 386이 아니라 '386을 포위한 관료'라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어쨌건 국민들의 시각에서 실세는 386이다). 또한 참여정부에 대하여 국민들이 갖는 반감의 근원지는 '노무현의 입'과 '386의 무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능한 집권세력은 곧 기득권층으로 각인된다. 결국, 참여정부 5년이 지난 지금 386은 '미래'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입만 살아있는 무능한 기득권층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20여년전인 80년대 중반의 일이다. 친구가 인천 주안에 있는 공단에 노동자로 위장취업을 한 후 노동쟁의를 일으킬때 노사담당 간부와 언쟁을 했다고 한다. 당시 그 간부 왈 "나, 4·19혁명을 일으킨 민주세력이야! 그러니 너희들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그런데, 이 발언을 계기로 사태는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다고 한다. 한 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반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의 386들은 이제 20여년 전 아름다웠던 청년시절의 추억은 그냥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사석에서나 조금씩 꺼내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그 추억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다가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 '노무현+386'에서 '손학규+386'으로 변한 당 주도세력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꿈꾸던 한나라당과 대연정이 386을 매개로 신당에서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386이 진보의 대명사에서 오히려 반동의 대명사로 전환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386이 전면에 나선 신당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제3의길? 민노당에게도 버거울텐데

설사, 인물들의 과거전력에 흠결이 있더라도 그 인물들이 과거를 솔직히 뉘우치고 그 결과로서 국민들의 요구에 딱 들어맞는 미래비전을 제시하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신당이 제시하는 비전과 가치로 표현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옛날 버릇 못 고치고 계속 '새로운 진보'니 '제3의길'이니 하며 내용없는 말장난으로 일관하고 있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길'이라는 이론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하여는 현재에도 백가쟁명이 이루어지지만, 그것보다는 신당이 '제3의길'이 뭔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다는게 더 문제이다. 단순화하자면 '제3의길'은 2차대전 이후 정착된 유럽식 복지국가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자 나온 이론으로서 정통 복지국가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중간쯤에 위치하여 양쪽의 장점(사회적 평등과 시장의 효율성)을 모두 취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위치를 보면 미국 보다 훨씬 오른쪽에 위치하여 OECD 국가내에서는 어디에도 분류되기 어려운 그냥 '정글' 상태에 있다. OECD 자료('Social Expenditure Database')에 의하면,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제3의길'의 정치적 고향인 영국의 1/3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의길'을 주장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인 의지를 보이려면 복지의 과감한 확대를 당의 기본 노선으로 해야 하고 민노당의 부유세에 버금가는 화끈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3의길'이 대충 중간노선이 되려면 우리나라는 이미 영국 수준의 복지체계를 갖추었어야 한다. '제3의길'은 아무데서나 중간노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민노당 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매우 진보적인 대안이다.

실용 외친다면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해야지

▲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신임대표가 1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대표 이,취임식에 오충일 전 대표와 함께 들어오고 있다. ⓒ 유성호

'새로운 진보'에 대하여는 이념적 진보보다는 민생문제를 해결할 실용적 진보를 지향하겠다는 것으로 일단 좋게 풀이해보자. 실용의 힘은 디테일과 현실가능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디테일하고 현실가능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거나 적어도 그러한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을 비판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인수위에서 임시투자세액공제의 일몰시한을 연장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신당은 일언반구도 없었다. 임시투자세액공제로 연간 약2조원의 세수가 결함되는데 이 돈의 거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대기업이 돈이 모자라 투자를 안하는 것도 아니고 수십조의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안 하는 판에 세금을 깎아서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헛발질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잠시 후 신학기가 다가오면 대학등록금 문제로 정국이 한번 큰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의 조사에 의하면, 등록금후불제(대학 재학시에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사회진출 후 소득발생시점부터 상환하는 제도)를 전 학생을 대상으로 100% 실시할 경우 5년간 약12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가 투자촉진 효과가 없는 대기업 주머니 불리기 정책에 불과함을 증명하고, 이를 폐지하여 늘어난 세수로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없애자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디테일에 강한 실용적 진보의 자세가 아닐까?

‘한미FTA = 개방 = 새로운 진보’라는 등식 설정도 신당의 인식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미FTA 비준 반대가 곧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의 본산지인 북유럽 국가는 유럽국가 중에서도 개방도가 가장 높다. 이들이 이렇게 자신있게 개방을 할 수 있는 것은 탄탄한 사회안전망과 평생학습시스템 덕분이다. 즉, 개방으로 인하여 시장에서 불평등을 발생시킬 요인은 커지겠지만, 적극적인 복지시스템으로 그 마이너스 효과를 상쇄시키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초래할 양극화 심화의 결과는 뻔한데 이를 상쇄할 만한 대책은 보이지 않기에 지금 진보진영이 졸속 비준에 대하여 그토록 반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당이 진보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면 한미FTA 조속 비준에 방점을 찍을 것이 아니라 대책마련에 방점을 찍었어야 한다.

로봇태권V를 기다린다

인물로 보나 비전으로 보나 신당이 2년 후 국민이 기댈만한 새로운 진보정당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싹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는 것인가?

지금 각 정당에서 비전과 가치를 앞세운 새로운 정당에 대한 움직임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천하의 '로봇태권V'라 해도 팔과 다리 몸통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때에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뿔뿔이 흩어진 새로운 정당에 대한 움직임이 비전과 가치를 매개로 합체되어 당당한 '로봇태권V'로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