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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이완구 충남도 지사에게 답한다

등록|2008.01.23 15:59 수정|2008.01.23 17:07
일 전에 썼던 '태안주민자살사건, 한나라당과 이완구 지사에게도 책임물어야'라는 칼럼이 조그만 사단을 불러왔다. 바로 오늘(23일) 아침 이완구 지사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이 지사는 그간 진행된 중앙정부와 시장·군수들과의 행정처리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왔고 협조를 부탁했다.

사실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도지사 입장에서 도민들의 자살을 방조하고 조장했다는 지적은 억울한 일일 수 있다. 누구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장 최일선에서 뛰어왔고, 가장 속타는 인사가 바로 도지사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태안인근 주민들을 위한 이 지사의 진정성이나 노력을 폄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의 말대로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는 것도 언론이나 제3자의 몫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남도나 도지사, 그리고 그 자체장을 배출한 정당의 책임이 가벼워진다거나 비판대상에서 성역으로 머물순 없다. 진정성은 인정한다고 해도 문제해결 방식이 주민의 관점이 아니라 공무원들의 관점으로 접근하다가 주민들이 자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해 포괄적 책임을 지고 있는 도지사나 행정관료들이 비판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문제해결 방법에 관한 한, 눈과 귀를 열어놓고 의견을 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그런 면에서 이 지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자 한다.

이 지사의 말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지원된 긴급자금이 지원되지 못한 까닭은 이렇다. 해양수산부에서 300억원의 긴급지원금을 내려보내면서 주민들로부터 긴급생계자금이 후일 배상될 피해보상액에 포함된 것으로 인정하는 일종의 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했는데 그 계약서를 들이 밀고 어떻게 주민들에게 긴급자금을 지원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내용을 시장·군수들에게도 통보했더니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한 일이라며 거부했다는 것이 이완구 지사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사고 유조선사의 보험사와 국제기름유출피해방지기구에서 보상할 금액이 총 3천억원인데 여기에 만일 정부나 국민성금같은 것들이 지급되면 그만큼 제하고 피해보상하겠다는 것이 유조선사 보험사와 국제기구의 공식입장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해양수산부는 긴급생활자금으로 지원된 금액과 충남도 예비비, 그리고 국민성금도 모두 주민들이 받게 될 최종 피해보상금액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받고 긴급자금을 지원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고, 충남도와 해당 시군에서는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긴급자금을 방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또 이 지사는 내가 칼럼에서 제시한 (피해보상액이 아니라) 긴급생활자금을 1가구당 1일 (10만원으로 책정된다면) 10만원씩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2만 가구에 해당하는 가구에 어떻게 일률적으로 지급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피해가 심해 생활에 지장있는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항변이다. 그러면서 내가 도지사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거라는 충고도 덧붙였다.

물론 나는 해양수산부가 주민들로부터 일종의 계약서를 작성받고 긴급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 어떤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해양수산부는 그 이유를 해명하고 밝힐 의무가 있다. 그리고 특정지역이 재해지역으로 선포되면 정부가 재정지원과 세제감면이나 유보 등 피해복구를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총체적인 지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것이 재해지역선포를 규정한 법의 입법취지라 하겠다. 그런데 패해보상액도 아니고 위기에 처한 국민에게 긴급하게 지원하는 생활자금을 나중에 피해보상액에 함께 산정해야 한다는, 피도 눈물도 없는 행정집행이 과연 재해지역선포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해양수산부는 답할 의무가 있다.

다음으로 매일 일정금액을 긴급 지원하는 가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 지사의 설명은 합리적인가를 따져보자. 내가 긴급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생활자금은 2만 가구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는 말이 아님은 행정전문가들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그 중에 누가 봐도 이번 재해로 생활이 막막해진 어민 등 직접피해자들과 이번 사고로 인해 태안지역 관광객 급감으로 피해를 당하는 자영업자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여 파악하고 지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서 긴급자금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나머지 주민들도 행정력이 미치는 대로 파악하여 지원하는 것이 순차적이며 합리적인 일처리 순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 되는 것을 공무원들이 피해가구파악이 불가능하다거나 모든 공무원들이 그 일에 달라붙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은 정당한 항변도, 근거있는 이유도 아니다. 주민생계가 위협받는 비상시기에 공무원들을 비상하게 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행정이치임에도 불가능하다는 말로만 상황을 떼우고 넘어갈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행정처리하는데 당장 생활자금이 없어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 긴박한 서민들의 입장에 서지 않고 중앙정부와 충남도,그리고 해당 시장·군수들과의 이견조율이란 행정절차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공직자들의 안이한 태도가 이번 주민자살사건의 핵심적 문제다. 국민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져야할 해양수산부와 충남도, 그리고 해당시군 등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는 사이 정작 행정의 주인이어야 할 현지 주민이 소외되고 배제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처참함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공직자들이 일을 안하고 있다는 지적이 아니다. 비상상황이면 비상상황에 걸맞게, 그러면서도 현지 주민들의 생활문제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방법을 찾아내라는 것이고 그에 대한 아이디어가 빈곤하다면 국민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자세라도 가지라는 말이다.

또 한나라당 소속 도지사이기에 한나라당과 이 지사에게 국민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그리고 정당이 중심이 되는 정당정치, 즉 책임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과 이 지사의 일처리방식을 문제삼는 칼럼에 대해 일일히 해명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 시간에 차라리 주민을 위한 위민행정에 더 골몰했으면 어떨까 싶다.

이완구 지사와 나와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다. 그래서 내가 이 지사에 대해 특별히 악감정을 갖거나, 혹은 호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단지 주민들이 자살해나가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듯이 태안인근 주민들의 상경시위와 같이 급속하고 거칠게 확산될 경우, 정부와 충남도, 그리고 해당 시군은 때를 놓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말의 요지는 그리 되기 전에 공직자들이 현장주민을 우선시하는 행정을 펴라는 얘기다. 도지사나 시장군수들이 선거에 출마할 때 모두 현장을 중시하겠다고 말해오지 않았던가 말이다.  바로 그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고 그리될 때 가래로도 못막을 일을 초기에 호미로 막을 수 있기에 이렇게 고언과 충언을 하는 것이다.

사실 비상한 상황을 대응할 때에는 통상의 방식이 아니라 비상한 방식으로 일처리하는 도백들의 공적이 쌓일 때 각종 권한이 행자부에 귀속되어 절름발이 자치제도에 불과한 우리 지방자치제도가 더욱 완결된 자치제도로 발전할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는 것이다.

충남도와 이완구 지사의 후속 처리를 지켜보고자 한다. 아울러 해양수산부도 왜 주민들에게 계약서를 받고 자금을 지출하라고 공문을 내려보냈는지 속시원히 해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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