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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식 '일자리 창출'은 '시간제 근로' 확대?

삼성경제연,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라 고용의 질에 관심 가져야

등록|2008.01.24 18:19 수정|2008.01.24 18:19
고용률 관심, 낮은 실업률 들먹이는 것보다는 낫다

▲ SERI보고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긴급제언>, 2008.1.23 ⓒ 삼성경제연구소

대기업과 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이례적으로 현재의 낮은 고용률 문제를 지적하면서, 고용률 제고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률을 끌어올리자는 ‘긴급 제언’을 했다.(SERI보고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긴급제언”, 2008.1.23, www.seri.org)

보고서는 ‘기로에 놓인 한국의 고용’이라는 자극적인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2007년 한국의 고용률(15세에서 64세까지 생산가능인구 기준)은 63.9%로 3년 연속 0.1% 상승하는 데 그쳤으며 최근 6년간 63%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태”가 계속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고용률은 OECD 30개국 회원국 중 21위로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낮은 고용률은 “비경제활동 인구가 많다는 것으로서,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킨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5년 안에 고용률을 68% 수준으로 올려 OECD기준 15위권에 진입하자는 고용전략 목표를 제시한다. 이를 위해 일자리를 매년 50만개(참여정부시절에는 28만개 수준이었고, 이명박 당선인은 60만개를 공약했다)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생산가능 인구의 자연 증가분인 약 25만 명을 흡수하고, 이에 덧붙여 25만 명의 비경제활동인구를 경제 일선으로 나오게 하여 고용률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같은 고용률의 증가는 현재 4.6%에 불과한 성장잠재력을 끌어 올리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동안 실업률이 매우 낮아져서 고용여건이 향상되고 있다는 주장보다는 고용률을 높이자는 주장이 훨씬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성장이 고용을 높이지 못한다?

다음으로 보고서는 경제 성장과 고용의 상관관계를 짚는다. 지난 10여년간 경제 성장이 취업에 미친 효과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을 취업계수(취업자/실질GDP 10억 원) 하락을 근거로 지적한다. 1990~1997년까지만 해도 취업계수가 47.7이었지만 2002년 34.5, 2007년에는 29.5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1% 경제성장이 5.7~6.9만개 정도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게 되며, 이명박 경제팀의 수정 목표치대로 6% 경제성장을 해봐야 50만개 일자리에 턱 없이 부족한 34~41만개 일자리밖에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경제 성장이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낮은 것이 과연 보편적인 현상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보고서는 경제 성장률이 유사한 국가 사이에서도 고용 성과가 상이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스페인, 네덜란드, 아일랜드의 경우 경제 성장률은 한국보다 낮거나 유사한 수준임에도 고용률이 훨씬 높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노동시장 유연성’에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한국은 아직 노동시장 경직성이 크기 때문에 고용률이 낮고 다른 나라는 유연성이 높아 고용률도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거니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고용률을 높인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발생하는 원인도 노동시장 경직성에서 찾고 있고, 하다못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유도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실상 그동안 성장과 고용간의 연관성이 약해진 이유는, ① 수출과 내수의 산업 선순환 단절로 인해 수출증가율은 두 자리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고용에 영향을 주는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것 ② 대기업 고용비중의 지속적 감소와 제조업 고용비중 감소 ③ 서비스업의 영세성과 낮은 생산성으로 인한 노동의 진입과 퇴출의 반복 등 다면적인 원인이 있고 이들은 주로 신자유주의 정책과 연관된 항목들이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대기업 중심으로 고용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자금 여력과 고용 여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약 100만 명의 인력을 순 감축한 사실은 보고서에서 전혀 지적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른 결과로서 현재 취업계수가 29.5로 하락한 것인데, 이러한 하락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여 현재 성장의 낮은 고용기여도를 전환시킬 구조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당연히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고용조정 유연화가 고용률과 관계 없다면...

그 결과 보고서는 고용률 제고를 위한 방안을 ‘노동시장 유연화’로 집중한다. 이는 최근 전경련이나 대기업이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규제 철폐’와 함께 ‘노동 유연화’를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삼성의 보고서는 이를 세련된 정책 디자인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에는 크게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수량적 유연화가 있고, 업무 전환과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능적 유연화가 있다. 그 중간에  임금유연화와 근로시간 유연화도 있을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수량적 유연화는 이미 한계상황에 이를 만큼 극단화되었다는 것이 노동계의 평가이다. 870만 비정규직도 한계상황에 이르러서 현재는 구조적으로 고정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도 수량적 유연성을 더 가속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며 이를 반영하듯 보고서는 수량적 유연화를 의미하는 ‘고용조정 유연화’를 더 이상 주장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정규직 해고제한이 강해도 고용률이 높은 국가들이 있듯이 고용조정 유연화와 고용률간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본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덴마크와 네덜란드가 정규직 해고제한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70%대의 높은 고용률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다.

만약 보고서가 “고용조정 유연화와 고용률”이 관계가 없다고 분석했다면, 반대로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고용률을 반드시 낮추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극점까지 온 고용조정 유연화를 재고하고 고용안정화로 전환할 것을 문제제기했어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문제제기는 찾을 수 없다.

▲ 지난해 7월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용보장, 차별철폐,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며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킴스클럽 매장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임금 유연화, 근로시간 유연화가 고용률을 제고하는가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가 임계선에 이르자 보고서가 주장하고 있는 노동 유연화 방향은 임금과 근로시간 유연화로 이동되고 있다.

우선 임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연공서열 임금체계가 기업에게 인건비 부담을 주고 정규직 신규채용을 자제하도록 하며 중고령자의 조기 퇴직을 선호하도록 하는 등 고용률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고서는 “직무의 시장 가치에 따라 급여를 받는 직무급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직무급제는 숙련도와 능력 중심으로 급여를 받는 ‘직능급’과는 다른 것으로, 특정 업무 분야의 ‘시장적 가치’에 따라 직무별 급여 수준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미 약화되고 있는 연공서열 임금체계의 부작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보고서가 주장하는 직무급제도는 실상 주요 대기업 내부의 소수 고임금자에게만 해당될 가능성이 높은 정책 대안이라서 이것과 고용률 제고를 연계시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우선 특정 시기 특정 직무 분야의 시장성과 경쟁력이 높다하더라도 기업의 가치 창출이 기업내 업무체계의 상호 연관성과 협력구조 없이 순수하게 특정 직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처럼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50% 수준인 현실에서 기업 수준을 넘어 동일 직무에 대한 가치가 시장에서 형성되겠는가, 그리고 대기업,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여 동일 직무에 대해 동일임금이 적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결정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직무급제는 대기업 내에서 시장 가치가 있는 소수 직무군의 소수 고임금자와 그 외 다수 중저임금자를 구조화시켜 대기업의 고용 비용감소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전체 동일 직무 노동자의 임금격차 해소를 통한 노동 이동 유연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격차가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존하는 심각한 임금 격차이다.

근로시간 유연성을 높이자는 삼성 보고서의 요지는 ‘다양한 시간제 근로를 활성화’하자는 이야기이다. 물론 시간제 근로가 육아 부담이 있는 여성 노동자 등에게 적용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우선 시간제 근로를 원하지 않는 일반 노동자에게 기업주가 시간제 근로를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시간제 근로의 경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도적 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시간제 근로는 육아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다수 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저임금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노동시장인 것이다.

삼성은 고용의 질로 관심을 옮겨야

위와 같이 보건데, 삼성 보고서가 고용률 증진을 위해 제안한 임금 유연화와 근로시간 유연화는 대체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 내부의 문제, 그것도 사용주의 경영 이해관계와 관련이 깊은 것처럼 보인다. 보고서에 추가된 고용지원 서비스 활성화나, 직업훈련 및 평생학습 필요성 그리고 고용보험 적용대상 확대 등은 내용이 없이 사족처럼 첨부된 것이니 새로울 것이 없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아직 삼성경제연구소는 고용의 질 문제에 대해 이렇다 할 정책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항상 첨단을 달린다고 자랑해온 삼성은 고용문제의 첨단이 ‘노동시장 유연화’가 아니라 ‘고용의 질 제고’에 있으며 이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 질 제고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입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스트플랫폼(http://epl.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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