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행세하기
그러나 나의 작가다워 보이게 하려는 언행이 먹혀들어간 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정보를 얻어 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나는 어느 날 S여대 연극반의 연극 공연에 가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여대생들이 연극 팸플릿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도 팸플릿을 사야 하나요?”
그러자 그녀들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어머! 작가님이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문욱이라고 합니다. 별로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어머, 영광이에요! 팸플릿은 그냥 드릴게요.”
나는 고등학생 때 이미 소년 신문을 통해서 동화작가로 데뷔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으며, 귀빈 대접을 받으며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연극이 끝나고도 바로 나가지 않고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나폴레옹 양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객석은 고요했습니다. 그때 연극반원 두 명이 다가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배우로 출연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작가분이세요?”
한 연극반원이 물었습니다.
“예. 그런데 어떻게 아시죠?”
“분위기가 그래서요. 작가분이 한 분 오셨다고 후배들에게 얘길 들었어요.”
“예.”
“저는 연극반장 황소연이에요. 얘는 3학년 친구 김진리구요.”
“예.”
“그런데 왜 안 나가시고 앉아 계셨어요?”
“예.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공허한 분위기를 느껴 보려구요.”
“어머, 그러셨어요. 그런데 연극은 어떠셨어요?”
“좋았습니다. 특히 연극반장님의 할아버지 연기가 인상에 남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이렇게 공허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니까 맛이 더 좋군요.”
“어머, 그러세요?”
“지금 이게 연극이고 내가 연극의 한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예. 저희도 그런 것 같아요.”
그녀들은 나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참, 작가님. 여기에 주소 좀 적어주세요. 다음 공연할 때 초대권 보내드릴게요.”
“예.”
나는 연극반장 황소연이 내민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주었습니다.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연극,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통로를 따라 걸어나갔습니다. 건물 현관에서 빠져나오자 계단 아래쪽 연못이 바라보였습니다. 나는 그 연못을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어머, 아직 안 가셨어요?”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연극반원 김진리였습니다.
“저 연못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빠지셔도 다리밖에 차지 않을 거예요. 물이 얕으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S여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걸어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작품을 주로 쓰세요?”
“소설의 공간에서 인간이 왜 사느냐를 묻지요.”
“그것은 영원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렇죠. 죽을 때까지도 해답을 내릴 수가 없겠지요.”
“이렇게 작가분이랑 같이 가니까 기분이 참 야릇해요.”
“어떻습니까? 어디 가까운 찻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할까요?”
나는 정말 작가가 되기라도 한 기분이었습니다.
“예. 30분 뒤에 쫑파티가 있으니까 그때까진 괜찮아요.”
우리는 한 전통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나는 김유정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상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록 짧았고 단편소설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편소설의 작품성이 그것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진리는 충분히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어머, 쫑파티 시간이 다 됐네요. 작가님, 우리 모임에 들렀다 가실래요?”
뜻밖의 초대였습니다. 나는 여대생들의 모임이란 데 참가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불쑥 생겼습니다.
“내가 가서 방해가 안 될까요?”
“방해는요. 저희가 영광이지요.”
나는 김진리와 함께 장소를 옮겼습니다.
“잘 오셨어요.”
연극반장 황소연이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S여대 연극반원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며 담소했습니다. 그날 본 연극에 관한 평도 했습니다. 그녀들은 진짜 작가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습니다. 나는 그녀들을 속이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철저히 얼굴에 철판을 깔았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소년 신문을 통하여 동화작가로 작품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은 아닌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들과 어울리다가 먼저 일어섰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포장마차에 가서 굴 안주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황소연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뒤로 달리 그녀에게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거짓이 탄로날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도 나이가 한 살이 위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죠. 그 뒤로 그녀들이 초대권을 보내줘서 한 번 더 연극을 보긴 합니다만, 내가 1982년에 S예술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 대학 도서관에서 황소연과 김진리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녀들은 공연 준비를 하는 데 자료를 구할 게 있어서 S예술대학 도서관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문학 공부를 좀더 하기 위하여 S예술대학에 입학했노라고 말했으며, 학보에 단편소설이 발표된 게 있었기 때문에 학보사에서 그 신문을 구해다가 그녀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녀들에게 나는 1981년에도 작가였고 1982년에도 여전히 작가였던 셈이죠.
그러나 나의 작가다워 보이게 하려는 언행이 먹혀들어간 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정보를 얻어 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나는 어느 날 S여대 연극반의 연극 공연에 가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여대생들이 연극 팸플릿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가도 팸플릿을 사야 하나요?”
그러자 그녀들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어머! 작가님이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문욱이라고 합니다. 별로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서…”
“어머, 영광이에요! 팸플릿은 그냥 드릴게요.”
나는 고등학생 때 이미 소년 신문을 통해서 동화작가로 데뷔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으며, 귀빈 대접을 받으며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연극이 끝나고도 바로 나가지 않고 객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나폴레옹 양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객석은 고요했습니다. 그때 연극반원 두 명이 다가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배우로 출연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작가분이세요?”
한 연극반원이 물었습니다.
“예. 그런데 어떻게 아시죠?”
“분위기가 그래서요. 작가분이 한 분 오셨다고 후배들에게 얘길 들었어요.”
“예.”
“저는 연극반장 황소연이에요. 얘는 3학년 친구 김진리구요.”
“예.”
“그런데 왜 안 나가시고 앉아 계셨어요?”
“예.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의 공허한 분위기를 느껴 보려구요.”
“어머, 그러셨어요. 그런데 연극은 어떠셨어요?”
“좋았습니다. 특히 연극반장님의 할아버지 연기가 인상에 남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이렇게 공허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니까 맛이 더 좋군요.”
“어머, 그러세요?”
“지금 이게 연극이고 내가 연극의 한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예. 저희도 그런 것 같아요.”
그녀들은 나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참, 작가님. 여기에 주소 좀 적어주세요. 다음 공연할 때 초대권 보내드릴게요.”
“예.”
나는 연극반장 황소연이 내민 메모지에 주소를 적어주었습니다.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연극,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통로를 따라 걸어나갔습니다. 건물 현관에서 빠져나오자 계단 아래쪽 연못이 바라보였습니다. 나는 그 연못을 바라보며 한동안 서 있었습니다.
“어머, 아직 안 가셨어요?”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연극반원 김진리였습니다.
“저 연못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빠지셔도 다리밖에 차지 않을 거예요. 물이 얕으니까요.”
“하하, 그렇군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S여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서 걸어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무슨 작품을 주로 쓰세요?”
“소설의 공간에서 인간이 왜 사느냐를 묻지요.”
“그것은 영원한 질문인 것 같아요.”
“그렇죠. 죽을 때까지도 해답을 내릴 수가 없겠지요.”
“이렇게 작가분이랑 같이 가니까 기분이 참 야릇해요.”
“어떻습니까? 어디 가까운 찻집에 가서 차라도 한잔 할까요?”
나는 정말 작가가 되기라도 한 기분이었습니다.
“예. 30분 뒤에 쫑파티가 있으니까 그때까진 괜찮아요.”
우리는 한 전통찻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나는 김유정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상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비록 짧았고 단편소설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단편소설의 작품성이 그것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진리는 충분히 공감하는 눈치였습니다.
“어머, 쫑파티 시간이 다 됐네요. 작가님, 우리 모임에 들렀다 가실래요?”
뜻밖의 초대였습니다. 나는 여대생들의 모임이란 데 참가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불쑥 생겼습니다.
“내가 가서 방해가 안 될까요?”
“방해는요. 저희가 영광이지요.”
나는 김진리와 함께 장소를 옮겼습니다.
“잘 오셨어요.”
연극반장 황소연이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S여대 연극반원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며 담소했습니다. 그날 본 연극에 관한 평도 했습니다. 그녀들은 진짜 작가를 만난 것처럼 즐거워했습니다. 나는 그녀들을 속이고 있어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철저히 얼굴에 철판을 깔았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소년 신문을 통하여 동화작가로 작품을 발표하였기 때문에 완전한 거짓은 아닌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들과 어울리다가 먼저 일어섰습니다. 그러고는 혼자 포장마차에 가서 굴 안주에 소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황소연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뒤로 달리 그녀에게 접근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의 거짓이 탄로날 것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도 나이가 한 살이 위였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죠. 그 뒤로 그녀들이 초대권을 보내줘서 한 번 더 연극을 보긴 합니다만, 내가 1982년에 S예술대학에 입학했을 때 그 대학 도서관에서 황소연과 김진리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녀들은 공연 준비를 하는 데 자료를 구할 게 있어서 S예술대학 도서관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문학 공부를 좀더 하기 위하여 S예술대학에 입학했노라고 말했으며, 학보에 단편소설이 발표된 게 있었기 때문에 학보사에서 그 신문을 구해다가 그녀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녀들에게 나는 1981년에도 작가였고 1982년에도 여전히 작가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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