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지도를 보니 공림사란 곳이 지도에 많이 표기되어 있어 들러 보지 못한 곳이라 찾아가 보았다. 산사로 진입하는 길은 다 전국 어디라도 좋은 게 대부분이다. 일주문을 지나고 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절 뒤로 산이 눈에 들어온다.
낙영산인데 전설에 의하면 절 뒤쪽 미륵봉에는 황금밀탑이 있었다고 한다. 당나라 고종 때 낙양의 무덕 마을 공중에 황금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다가 며칠 뒤 공중의 밀탑은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문을 들은 고종은 밀탑의 뒤를 쫓게 하였는데, 탑은 현재의 미륵봉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바위를 깨어보니 밀탑은 없고 미륵장륙삼존불이 있었다. 그 뒤부터 이곳의 산 이름을 밀탑의 그림자가 떨어진 곳이라 하여 ‘낙영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해지는 전설이라 다소 차이가 보인다. 당나라 때 이 산의 그림자가 중국에 비치니 술사가 이곳에 미륵불상을 그려 낙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 생각 되나 그만큼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절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큰 두 탑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건물도 많고 넓어 보이나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천년고찰 공림사의 역사
공림사는 신라 48대왕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성심수도하던 중 법력이 있다는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해, 경문왕이 선사의 인물됨을 알고 국사의 칭호와 자정선사가 주석하는 절에 공림사의 이름을 지어 공림사(空林寺)라 쓴 현판을 내렸다고 전한다.
조선 정종 원년(1399년)에 함허가 폐사된 이 절에 법당과 요사채 등의 모든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다. 원래는 법주사보다 더 흥했지만 임진왜란(1592)으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보존되었다.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고, 1688년에는 사적비를 세웠다. 그 뒤 6·25전쟁으로 8동의 건물 중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1966년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과 영하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요사채, 선원 등이 있다.
들어서면 두 탑이 마주보고 있고 그 규모가 어마 어마하게 크다. 범종각의 목어도 이색적이라 눈에 띈다.
대웅전은 약간 비켜 지어진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절 구조가 일부 다시 개편된 것으로 그리 보이는 듯 하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문창살의 꽃 무늬가 이상적이다. 1776년에 주조된 범종이 있다고 하나 정보 부족으로 미처 보지 못했다.
지정문화재이나 안내문은 전혀 없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된 사적비가 하나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혁을 비롯해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강희 27년 3월에 썼으며, 나머지 3면에는 시주자 · 승려 · 주지·각수(刻手)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다만, 안내문을 설치해 공림사의 내력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에게 문화재임을 알렸으면 한다.
요사채 뒤편에는 우연히 본 방형의 큰 석조가 있는데 아직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밑 부분에 감인선원 앞에도 용도가 다소 미상인 석주 1기가 있는데 오래되어 보인다.
삼성각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려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부도들이 보인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된 공림사 부도이다. 2기의 부도로 동쪽과 서쪽 방향에 세웠다. 원래의 자리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의 부도로 추정되며 부도 2기 모두 팔각원당형으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서쪽 부도는 받침 부분이 파손되고 지붕돌 일부가 없어졌으나 비교적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동쪽 부도는 네모난 지대석 위에 팔각으로 된 하대석과 중대석 괴임을 놓고, 다시 중대석을 얹고 그 위로 상대석을 놓았다. 그리고 둥근 몸돌을 놓고 그 위에 낙수면이 급한 지붕돌을 놓았으며, 지붕돌 위에 보주를 올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석종형의 주인공을 알 수 없는 부도가 있다.
또한 주변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266호로 지정된 망개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일본의 남쪽지방과 중국의 중부지방에서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하고 돌아와 아쉬움이 남으나 모처럼 여유롭게 둘러본 절이라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낙영산인데 전설에 의하면 절 뒤쪽 미륵봉에는 황금밀탑이 있었다고 한다. 당나라 고종 때 낙양의 무덕 마을 공중에 황금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다가 며칠 뒤 공중의 밀탑은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문을 들은 고종은 밀탑의 뒤를 쫓게 하였는데, 탑은 현재의 미륵봉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바위를 깨어보니 밀탑은 없고 미륵장륙삼존불이 있었다. 그 뒤부터 이곳의 산 이름을 밀탑의 그림자가 떨어진 곳이라 하여 ‘낙영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해지는 전설이라 다소 차이가 보인다. 당나라 때 이 산의 그림자가 중국에 비치니 술사가 이곳에 미륵불상을 그려 낙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 생각 되나 그만큼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절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큰 두 탑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건물도 많고 넓어 보이나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천년고찰 공림사의 역사
공림사는 신라 48대왕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성심수도하던 중 법력이 있다는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해, 경문왕이 선사의 인물됨을 알고 국사의 칭호와 자정선사가 주석하는 절에 공림사의 이름을 지어 공림사(空林寺)라 쓴 현판을 내렸다고 전한다.
조선 정종 원년(1399년)에 함허가 폐사된 이 절에 법당과 요사채 등의 모든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다. 원래는 법주사보다 더 흥했지만 임진왜란(1592)으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보존되었다.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고, 1688년에는 사적비를 세웠다. 그 뒤 6·25전쟁으로 8동의 건물 중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1966년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과 영하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요사채, 선원 등이 있다.
▲ 설명문공림사의 내력과 역사를 알려준다. ⓒ 김환대
▲ 전경가장 먼저 전경이다. ⓒ 김환대
들어서면 두 탑이 마주보고 있고 그 규모가 어마 어마하게 크다. 범종각의 목어도 이색적이라 눈에 띈다.
▲ 공림사 탑공림사에는 근래 지어진 탑이 2기 있다. ⓒ 김환대
▲ 목어목어이다. ⓒ 김환대
대웅전은 약간 비켜 지어진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절 구조가 일부 다시 개편된 것으로 그리 보이는 듯 하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문창살의 꽃 무늬가 이상적이다. 1776년에 주조된 범종이 있다고 하나 정보 부족으로 미처 보지 못했다.
▲ 대웅전배치가 좀 어색하다. ⓒ 김환대
▲ 창살무늬창살 무늬가 아름답다 ⓒ 김환대
▲ 창살무늬창살들이 다 이렇게 다양하다. ⓒ 김환대
지정문화재이나 안내문은 전혀 없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된 사적비가 하나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혁을 비롯해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강희 27년 3월에 썼으며, 나머지 3면에는 시주자 · 승려 · 주지·각수(刻手)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다만, 안내문을 설치해 공림사의 내력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에게 문화재임을 알렸으면 한다.
▲ 공림사 사적비공림사의 내력을 알 수 있으나 어떠한 안내문 하나 내용도 있지 않다. ⓒ 김환대
요사채 뒤편에는 우연히 본 방형의 큰 석조가 있는데 아직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밑 부분에 감인선원 앞에도 용도가 다소 미상인 석주 1기가 있는데 오래되어 보인다.
▲ 석조큰 물통이다. ⓒ 김환대
▲ 용도 미상 석재감인선원 옆에 있는 석재 ⓒ 김환대
삼성각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려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부도들이 보인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된 공림사 부도이다. 2기의 부도로 동쪽과 서쪽 방향에 세웠다. 원래의 자리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의 부도로 추정되며 부도 2기 모두 팔각원당형으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 부도부도 3기가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부도가 있다. ⓒ 김환대
서쪽 부도는 받침 부분이 파손되고 지붕돌 일부가 없어졌으나 비교적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동쪽 부도는 네모난 지대석 위에 팔각으로 된 하대석과 중대석 괴임을 놓고, 다시 중대석을 얹고 그 위로 상대석을 놓았다. 그리고 둥근 몸돌을 놓고 그 위에 낙수면이 급한 지붕돌을 놓았으며, 지붕돌 위에 보주를 올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석종형의 주인공을 알 수 없는 부도가 있다.
▲ 부도석종형으로 홀로 있다. ⓒ 김환대
또한 주변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266호로 지정된 망개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일본의 남쪽지방과 중국의 중부지방에서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하고 돌아와 아쉬움이 남으나 모처럼 여유롭게 둘러본 절이라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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