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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영산 아래 겨울을 기다리는 절

눈내리는 공림사를 찾다

등록|2008.01.26 12:00 수정|2008.01.26 12:00
충북 괴산 지도를 보니 공림사란 곳이 지도에 많이 표기되어 있어 들러 보지 못한 곳이라 찾아가 보았다. 산사로 진입하는 길은 다 전국 어디라도 좋은 게 대부분이다. 일주문을 지나고 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데 절 뒤로 산이 눈에 들어온다.

낙영산인데 전설에 의하면 절 뒤쪽 미륵봉에는 황금밀탑이 있었다고 한다. 당나라 고종 때 낙양의 무덕 마을 공중에 황금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사라지지 않다가 며칠 뒤 공중의 밀탑은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소문을 들은 고종은 밀탑의 뒤를 쫓게 하였는데, 탑은 현재의 미륵봉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바위를 깨어보니 밀탑은 없고 미륵장륙삼존불이 있었다. 그 뒤부터 이곳의 산 이름을 밀탑의 그림자가 떨어진 곳이라 하여 ‘낙영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전해지는 전설이라 다소 차이가 보인다. 당나라 때 이 산의 그림자가 중국에 비치니 술사가 이곳에 미륵불상을 그려 낙영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 생각 되나 그만큼 오랜 역사를 말해 주는 듯하다. 절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큰 두 탑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건물도 많고 넓어 보이나 허전함이 밀려오는 것은 왜일까?

천년고찰 공림사의 역사

공림사는 신라 48대왕 경문왕 때 자정선사가 암자를 짓고 성심수도하던 중 법력이 있다는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해, 경문왕이 선사의 인물됨을 알고 국사의 칭호와 자정선사가 주석하는 절에 공림사의 이름을 지어 공림사(空林寺)라 쓴 현판을 내렸다고 전한다.

조선 정종 원년(1399년)에 함허가 폐사된 이 절에 법당과 요사채 등의 모든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다. 원래는 법주사보다 더 흥했지만 임진왜란(1592)으로 여러 건물이 불탔으나, 대웅전만은 보존되었다.

인조 때 다시 중창하였고, 1688년에는 사적비를 세웠다. 그 뒤 6·25전쟁으로 8동의 건물 중 영하문과 사적비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1966년 법당과 요사채를 재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과 영하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 요사채, 선원 등이 있다.

설명문공림사의 내력과 역사를 알려준다. ⓒ 김환대


전경가장 먼저 전경이다. ⓒ 김환대


들어서면 두 탑이 마주보고 있고 그 규모가 어마 어마하게 크다. 범종각의 목어도 이색적이라 눈에 띈다.

공림사 탑공림사에는 근래 지어진 탑이 2기 있다. ⓒ 김환대


목어목어이다. ⓒ 김환대


대웅전은 약간 비켜 지어진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절 구조가 일부 다시 개편된 것으로 그리 보이는 듯 하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으며,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문창살의 꽃 무늬가 이상적이다. 1776년에 주조된 범종이 있다고 하나 정보 부족으로 미처 보지 못했다.

대웅전배치가 좀 어색하다. ⓒ 김환대


창살무늬창살 무늬가 아름답다 ⓒ 김환대


창살무늬창살들이 다 이렇게 다양하다. ⓒ 김환대


지정문화재이나 안내문은 전혀 없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된 사적비가 하나 있다. 앞면에는 공림사의 유래와 연혁을 비롯해 비의 건립 경위 등을 적었는데, 강희 27년 3월에 썼으며, 나머지 3면에는 시주자 · 승려 · 주지·각수(刻手)의 명단을 기록하였다. 비문은 완전하여 조선 중기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다만, 안내문을 설치해 공림사의 내력과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에게 문화재임을 알렸으면 한다.

공림사 사적비공림사의 내력을 알 수 있으나 어떠한 안내문 하나 내용도 있지 않다. ⓒ 김환대


요사채 뒤편에는 우연히 본 방형의 큰 석조가 있는데 아직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밑 부분에 감인선원 앞에도 용도가 다소 미상인 석주 1기가 있는데 오래되어 보인다.

석조큰 물통이다. ⓒ 김환대


용도 미상 석재감인선원 옆에 있는 석재 ⓒ 김환대


삼성각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려다 보면 예사롭지 않은 부도들이 보인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된 공림사 부도이다. 2기의 부도로 동쪽과 서쪽 방향에 세웠다. 원래의 자리는 알 수 없으나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의 부도로 추정되며 부도 2기 모두 팔각원당형으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부도부도 3기가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부도가 있다. ⓒ 김환대


서쪽 부도는 받침 부분이 파손되고 지붕돌 일부가 없어졌으나 비교적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동쪽 부도는 네모난 지대석 위에 팔각으로 된 하대석과 중대석 괴임을 놓고, 다시 중대석을 얹고 그 위로 상대석을 놓았다. 그리고 둥근 몸돌을 놓고 그 위에 낙수면이 급한 지붕돌을 놓았으며, 지붕돌 위에 보주를 올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도 석종형의 주인공을 알 수 없는 부도가 있다.

부도석종형으로 홀로 있다. ⓒ 김환대


또한 주변 인근에는 천연기념물 제266호로 지정된 망개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일본의 남쪽지방과 중국의 중부지방에서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식물이다. 시간 관계로 보지 못하고 돌아와 아쉬움이 남으나 모처럼 여유롭게 둘러본 절이라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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