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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국세청-금감원도 나서라

[取중眞담] '외과 수술' 하려면 X-레이 사진이라도 미리 봐야지

등록|2008.01.26 14:53 수정|2008.01.26 14:53

▲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14일 오전 이건희 회장의 서울 이태원동 집무실인 승지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자 승지원 입구에 한데 몰린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남소연

삼성 비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출범한 지 보름이 넘었다.

보름 동안 특검팀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과 태평로 삼성본관, 용인 에버랜드 '미술품 창고', 삼성화재 본사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또 배호원 삼성증권 사장 등 핵심 임원 9명을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특검팀이 숨 가쁘게 달리는 동안 몇몇 사람들은 타박을 놓았다. 지난 15일 삼성본관 압수수색 때는 "왜 하필 삼성전자의 실적발표일에 압수수색을 단행했냐"며 사람들의 볼멘소리를 들었고, 지난 25일 삼성화재 본사 압수수색 때도 "왜 하필 삼성화재 창립 56주년 기념일에…"라며 특검팀과 삼성그룹은 '악연'이라 칭하기도 했다.

김성호 전 법무장관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왜 하필…"을 넘어서 "기업 수사는 외과 수술처럼 잘 해야 한다"고 수사 방법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울경제>는 지난 14일 사설을 통해 이 말을 친절하게 해석해주었다.

" '외과수술적 수사'는 바로 필요한 부분만 집중 및 선택적으로 수사해 증거를 확보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경제가 어렵다. 삼성이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삼성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특검 수사가 경영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고 당부도 잊지 않았다.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 못하겠다 변명하는 국세청과 금감원

▲ 삼성특검 수사관들이 25일 저녁 서울 중구 삼성화재 본사에서 압수한 물품을 관광버스 화물칸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 권우성


환부만을 정밀하게 도려낼 외과 수술을 하려면 X-레이 사진이라도 미리 봐서 환부 위치가 어디인지,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봐야 한다. 그래야 수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를 낮출 수 있다.

지금 특검팀은 메스만 쥐고 있는 의사나 다름 없다. 삼성그룹의 악성 종기가 어디쯤 있을 거라는 귀띔만 들은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정밀하게 외과 수술을 하려면 적어도 X-레이 사진이라도 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쥐고 있는 이들은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비자금 조성 및 관리,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들은 직 · 간접적으로 이들의 고유 업무와 연결돼 있다. 또 검찰 특별수사 · 감찰본부나 특검팀과 달리 고유 권한을 이용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영장 없이도 조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의혹을 밝히는데 계속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8일 경제개혁연대 등이 삼성 비자금과 관련해 탈세 제보서를 제출했을 때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이라 세무조사를 실시하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금감원은 삼성화재가 고객의 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 "특검에서 수사를 하고 있는 만큼 당장 금융감독 당국이 별도의 검사를 실시하기 어렵다"며 발을 뺐다.

작년에도 이들은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국세청에 차명의심계좌를 보유한 삼성 전현직 임원 1천여명의 과세자료를 요청했을 때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금감원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제기한 삼성 중공업 · 상용차의 분식회계 의혹 조사도 거부했거나 거의 진행하지 않고 있다. 또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은행과 신한굿모닝증권의 차명계좌를 공개했을 때도 한 달이 지나서야 검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국세청이나 금감원에도 삼성그룹의 로비활동이 있었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을 스스로 시인하는 행태라는 비판까지 얻고 있다.

'삼성' 걱정된다면, 국세청과 금감원에 요구하라

▲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남소연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가 작년 삼성증권 본사와 경기도 과천 삼성SDS e데이터센터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차명의심계좌의 명의인은 130여명. 김 변호사 명의의 차명계좌가 모두 7개인 점을 감안할 때, 최소 500여개에서 최대 1천여개나 된다. 게다가 지금 추적 중인 계좌의 입출금 내역까지 따라 붙으면 수사 진척이 느릴 수 밖에 없다.

김 변호사도 작년 12월 "검찰이 입출금까지 포함해 수만 개나 되는 계좌들을 다 추적할 수 없다"며 "영장 청구 없이 주식 보유 변동 현황 등을 점검할 수 있는 기관인 국세청, 금감원, 공정위 등이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검의 수사기한는 105일밖에 되지 않는다. 또 검사만 15명, 수사관 40명으로 구성된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에 비해 파견검사 3명을 포함해 수사인원이 30명 밖에 되지 않는다. 제기된 의혹들을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힘든 환경이다.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방위적 압수수색도 불사해야 한다.

"기업수사, 외과수술하듯 하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특검에 볼멘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정말 세계 유수의 기업 '삼성'이 걱정된다면, 그리고 삼성의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국세청과 금감원에게 자체 조사를 요구하면 될 일이다.

고작 1.88%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가 정말 수조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불법적으로 지분을 변동시켜 경영권을 계승하려 했는지 정밀하게 '수술'하기 위해선 그들의 X-레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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