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서 온 편지 "책 좀 보내줘요"
교도소와 친구, 책, 그리고 이런저런 상념들
"저는 현재 목포교도소에서 제가 저지른 범법행위를 반성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며 수감생활 중입니다. 형기 5년 동안 새사람이 되고자 평소 공부를 하며 각종 교양서적을 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명 서적들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한성희 작가님이 쓴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가뭄 속에 단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 제게 좋은 선물로 생각하고 소포로 보내주신다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며칠 전, 낯선 수감자 한 분이 회사 앞으로 보내 온 편지 내용의 일부입니다. 편지지 2장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수감자의 고뇌와 자유롭지 못한 삶으로 부대껴야 하는 역경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낯선 수감자의 편지, 친구를 떠올리게 하다
저는 교도소의 수감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20대 시절 교도소에서 얼마간 징역을 살았던 친구에 대한 기억과 교도소를 배경으로 쓰인 몇몇 책들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수감자의 고통을 짐작할 뿐입니다.
13~4년 전쯤일 겁니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을 하다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를 면회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슴 속에 불의에 대한 적개심이 타오르던 친구를 보는 제 마음은 미안함뿐이었습니다. 구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시대를 살며 비슷비슷한 고민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포부를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기에 그 미안함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짧은 대화를 나누던 그 때, 친구와 저는 서로 다른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유로운 몸으로 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 묶인 처지였던 친구는 여전히 사회와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친구의 삶과 상처를 대신 어루만져줄 수 없었던 저의 마음은 참 아팠었습니다.
면회를 마친 그날 이후, 제가 친구를 위해 했던 일은 가끔씩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영치금을 마련할 때 동참하거나 이런저런 책들을 교도소로 넣어주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힘든 수감생활을 꿋꿋하게 이겨내라고 책이라도 많이 보내줄 걸 후회가 됩니다.
형기를 마친 친구는 지금껏 노동운동 현장에 있습니다. 조그만 회사지만 사장으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자본싸움에 발버둥을 치고 있는 저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미안한데, 명절 같은 때면 늘 먼저 제게 안부를 물어 와 저를 더욱 미안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잘 지내느냐고 안부전화를 넣어볼 생각입니다.
20년 20일 복역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편지를 보내 온 수감자의 힘겨움을 알 수는 없어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야생초 편지> 같은 책들은 저에게 수감생활의 실상을 짐작하게끔 합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988년 가석방되기까지 무려 20년 20일을 복역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이 글을 처음 접하던 때 저는 '아무리 감옥이지만 어떻게 사람을 37도 열덩어리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한여름 잠자리에서 누군가의 살갗이 닿았을 때 짜증나 본 경험이 있겠지만, 별 것 아닌 이 일이 교도소에서는 증오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충격이었습니다.
13년 2개월 복역한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85년부터 1998년까지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던 황대권이 쓴 <야생초 편지>에도 교도소 안의 힘겹고 건조한 생활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간첩단은 국가기관의 조작극이라고 출옥한 후에 판명나기는 했지만, 그 때는 황대권이 서른 살부터 마흔네 살까지의 청춘을 감옥에 고스란히 바친 뒤였습니다. 그 분노를 야생초들로 달랬을 모습이 제 눈앞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교도소에서 뜻밖에 날아든 한 통의 편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잊고 지내던 친구를 떠올리게 했고, 책장 속 한 귀퉁이에 처박혀있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와 책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사색의 소중함도 일깨웠습니다.
편지는 책을 쓴 작가는 물론이고 책을 출판한 회사에게도 큰 감동과 분에 겨운 격려를 함께 전해줬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자마자 이 분이 요청한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과 저희 회사에서 출판한 다른 책도 함께 보내 드렸습니다. 독자가 있어야 작가가 있고 또 출판사도 존재할 수 있으니 돈이 드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쁘게 책을 선물한 것이지요.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이 편지에 적은 대로 "어려운 처지의 수용자들이 읽고 교정교화에 큰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신영복의 글귀를 전합니다. 인고의 시간이더라도 사색의 갈무리를 잘 하시길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老)가 원숙이, 소(少)가 청신함이 되고 안 되고는 그 연월(年月)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며칠 전, 낯선 수감자 한 분이 회사 앞으로 보내 온 편지 내용의 일부입니다. 편지지 2장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수감자의 고뇌와 자유롭지 못한 삶으로 부대껴야 하는 역경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교도소의 수감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20대 시절 교도소에서 얼마간 징역을 살았던 친구에 대한 기억과 교도소를 배경으로 쓰인 몇몇 책들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수감자의 고통을 짐작할 뿐입니다.
13~4년 전쯤일 겁니다.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운동을 하다 붙잡혀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를 면회했던 적이 있습니다. 가슴 속에 불의에 대한 적개심이 타오르던 친구를 보는 제 마음은 미안함뿐이었습니다. 구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시대를 살며 비슷비슷한 고민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포부를 함께 나누었던 친구였기에 그 미안함은 더욱 컸습니다.
하지만 짧은 대화를 나누던 그 때, 친구와 저는 서로 다른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유로운 몸으로 저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을 때, 묶인 처지였던 친구는 여전히 사회와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친구의 삶과 상처를 대신 어루만져줄 수 없었던 저의 마음은 참 아팠었습니다.
면회를 마친 그날 이후, 제가 친구를 위해 했던 일은 가끔씩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영치금을 마련할 때 동참하거나 이런저런 책들을 교도소로 넣어주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힘든 수감생활을 꿋꿋하게 이겨내라고 책이라도 많이 보내줄 걸 후회가 됩니다.
형기를 마친 친구는 지금껏 노동운동 현장에 있습니다. 조그만 회사지만 사장으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자본싸움에 발버둥을 치고 있는 저와는 너무도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미안한데, 명절 같은 때면 늘 먼저 제게 안부를 물어 와 저를 더욱 미안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잘 지내느냐고 안부전화를 넣어볼 생각입니다.
▲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에는 옥중 수감자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 최육상
편지를 보내 온 수감자의 힘겨움을 알 수는 없어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야생초 편지> 같은 책들은 저에게 수감생활의 실상을 짐작하게끔 합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988년 가석방되기까지 무려 20년 20일을 복역하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썼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이 글을 처음 접하던 때 저는 '아무리 감옥이지만 어떻게 사람을 37도 열덩어리로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한여름 잠자리에서 누군가의 살갗이 닿았을 때 짜증나 본 경험이 있겠지만, 별 것 아닌 이 일이 교도소에서는 증오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던 충격이었습니다.
13년 2개월 복역한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85년부터 1998년까지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던 황대권이 쓴 <야생초 편지>에도 교도소 안의 힘겹고 건조한 생활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간첩단은 국가기관의 조작극이라고 출옥한 후에 판명나기는 했지만, 그 때는 황대권이 서른 살부터 마흔네 살까지의 청춘을 감옥에 고스란히 바친 뒤였습니다. 그 분노를 야생초들로 달랬을 모습이 제 눈앞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교도소에서 뜻밖에 날아든 한 통의 편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잊고 지내던 친구를 떠올리게 했고, 책장 속 한 귀퉁이에 처박혀있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와 책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사색의 소중함도 일깨웠습니다.
편지는 책을 쓴 작가는 물론이고 책을 출판한 회사에게도 큰 감동과 분에 겨운 격려를 함께 전해줬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자마자 이 분이 요청한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과 저희 회사에서 출판한 다른 책도 함께 보내 드렸습니다. 독자가 있어야 작가가 있고 또 출판사도 존재할 수 있으니 돈이 드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쁘게 책을 선물한 것이지요.
얼굴 한 번 뵌 적이 없는 분이지만, 그 분이 편지에 적은 대로 "어려운 처지의 수용자들이 읽고 교정교화에 큰 도움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끝으로 신영복의 글귀를 전합니다. 인고의 시간이더라도 사색의 갈무리를 잘 하시길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나무와 달라서 나이를 더한다고 해서 그저 굵어지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젊음이 신선함을 항상 보증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노(老)가 원숙이, 소(少)가 청신함이 되고 안 되고는 그 연월(年月)을 안받침하고 있는 체험과 사색의 갈무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 낯선 수감자가 편지로 요청한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에 더해 고선지 관련 책들도 함께 선물로 보냈습니다. 잘 읽으신다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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