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물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영도다리 보다 더 명물은 '영도 점집'인데...
▲ 부산의 "명물"누가 뭐라고 해도 영도다리이지만, 영도 다리보다 더 유명했던 명물은 ? ⓒ 송유미
▲ 사라질 운명의 "영도 점집"영도다리만큼 유명했죠 ? ⓒ 송유미
영도다리 밑을 기웃거리자니, 아주 어릴 적 이웃 아줌마들이 울보라고 날 놀리며 하던 말이 불현듯 생각난다. "너는 영도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서 울보인 모양이다"라고 해서, 나는 정말 영도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일까? 생각하다 보니 울음을 뚝 끊치곤 했던 것이다. 나중에 한참 커서야, 이 말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6·25 당시 영도 다리 밑에는 많은 전쟁 고아들이 피난 내려오다가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서 울며 헤매는 모습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우스개 말이 상당간 전래되어 내려왔지만, 요즘 엄마들도 유달리 잘 우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 본다. 이 우스개 말 속에는 통곡하고 울어도 시원치 않을, 우리 민족의 상잔의 비극을 은유하고 있다 하겠다.
▲ 100층이 넘는, 부산 '제 2 롯데 월드' 조감도구 부산시청자리 ⓒ 송유미
세태를 나타내는 풍문은 곱씹을수록 의미심장하다. "부산 사람들, 목소리 아무리 커도 부산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수년전, 부산시민 단체와 부산 제2 롯데 월드 (465m, 107층)의 시공건설 회사 측과 영도다리를 놓고 줄당기는 싸움을 해 왔다.
영도 다리는 1931년 일제 때 착공되어 1934년 개통된 도개식 다리다. 하루에 두 번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졌던 다리. 시민 단체의 노력으로, 사라질 뻔한 영도 다리가 곧 옛날처럼 하늘을 향해 다리를 들어 올리게 된다고 한다. 세계 10대 마천루 프로젝트에 포함될, '롯데 월드' 건설 중인 자리는, 옛부산 시청'이 있었다.
▲ 영도대교6. 25 피난 시절, 피난민의 이산가족 상봉 장소 ⓒ 송유미
▲ 영도 다리 앞에서 만나자...피난민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 송유미
곧 사라질 영도다리 밑 영도 점집 지나다가 보자기에 싸여 있는 대머리 부처 보았다 어디서 다리까지 다쳤을까, 골절상 입은 채아픔을 꾹 참고 쓰레기더미에 던져져 있었다. 녹등을 단 오징어채낚기선은 막 울릉도로 떠나는 중인지, 깜박깜박 붉은 등을 반짝이며 저녁바다를 가르고 있다. 간간이 검은 파도가 점집 계단까지 밀려오고 새점 콩점 실점 써붙인 민짜 유리창 안에는 늙은 여자가 콩점을 치고 있다 까만콩 흰콩을 요술부리듯 지구본처럼 굴리다가 까맣게 멈춘 콩 하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혀를 쯧쯧 차는 점집 여자, 이제사 영도다리의 운명을 알아 맞히기라도 한 것일까 콧등에 걸린 돋보기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영도다리를 한참동안 들여다 본다 갖가지 과일과 색색의 초들이 꽂힌 제단앞에는 색의를 입은 늙은 무녀 몇몇 화투패라도 벌인양 왁자왁자한데, 떠나는 배 들어오는 배 환히 보이는 다다미방에는 라면박스에 담겨진 늙수그레한 부처 하나 초조한 얼굴로 깡소주를 마시며, 눈먼 여복을 올려다 보고 있다
- 자작시 '영도 점집 지나며'
▲ TV 드라마와 영화 속의 무대가 되었던'영도 점집' 없는, '영도다리'는 쓸쓸하겠다... ⓒ 송유미
▲ 영도다리와 함께 살아온 영도 점집 할매 ⓒ 송유미
▲ 부산 영도 갈매기모두들 사라져도 바다에 파도는 떠나지 않겠지... ⓒ 송유미
옛 추억만 새롭구나 몰아치는 바람결에
발길이 가로막혀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울었네 소리쳤네 몸부림 쳤네 차디찬 부산 항구
조각달이 기우는데 누굴찾아 헤매이나
어디로 가야하나 영도다리 난간 잡고 나는 울었네 - 윤일로 <추억의 영도다리> 중
▲ 영도다리 난간에 남긴 가슴 시린 메세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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