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곤줄박이 재롱과 함께 막걸리 한 잔의 즐거운 산행

설원의 김포 문수산... 겨울 산행의 참맛을 느끼다

등록|2008.01.28 15:50 수정|2008.01.29 11:35

문수산 정상해발 376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한강하구와 가까이 북녘을 조망할 수 있다. ⓒ 전갑남

"당신, 오늘 어디 산으로 가기로 했어요?"
"문수산 가자고 하네."
"문수산 가면 또 막걸리 먹겠네. 산에서 취하면 안 되는 거 알죠?"
"딱 한 잔 할 건데 뭐, 땅콩이나 좀 챙겨주지!"

아내가 간식으로 음료와 삶은 계란을 준비한다. 집에서 거둔 땅콩도 한 움큼 배낭에 넣어준다.
볼에 닿은 차가운 겨울바람에 막걸리 한 잔!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린지라 문수산의 아름다운 설경도 기대가 된다. 문수산성의 호젓한 산길을 걷는 것도 낭만 그 자체가 아닌가!

"코스를 달리해볼까?"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한 일행들을 만나 반갑다. 시간만 나면 산을 타는 친구들이다. 자칭 산 사나이들이라나? 강화에 있는 산은 자기 동네 고샅길처럼 등산로를 훤히 꿰고 있다. 친구들은 두어 시간 산행은 양이 차지 않는다. 나지막한 산도 길게 코스를 잡아 서너 시간은 타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걷는 모습부터가 씩씩하고 당차다. 기를 써보지만 나는 한사코 뒤처진다. 체력과 운동부족이 절실히 느껴진다. 문수산 들머리인 소나무 숲길에서 문수산성까지 단숨에 오른다. 따라가기 바쁜 나는 숨이 턱에 닿는다.
 산성에 걸터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발아래 펼쳐진 산하가 그림 같다. 눈이 즐거우니 힘든 것은 저리가라 한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겨울바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문수산에 본 강화해협.강화대교를 경계로 김포시와 강화군이 갈라진다. ⓒ 전갑남

문수산성산성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 전갑남


앞장서 산행을 이끈 산악대장이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며 말한다.

"형님, 서부능선을 탈 건데 괜찮죠?"
"그쪽은 눈이 녹지 않았을 걸. 계곡 길도 험하고!"
"한강하구 너머 북녘을 바라보고 걷는 길이 운치가 있잖아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


우리 일행은 늘 다니던 코스를 벗어나 새로운 산행코스를 잡았다. 눈길이라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첫 발자국을 남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수산 팔각정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우리는 정상으로 곧장 오르지 않았다. 계곡으로 내려가 문수사(文殊寺)로 향했다.

산행길사람 발자국이 없는 산길을 걸어 산행을 즐겼다. ⓒ 전갑남


그런데 웬걸! 우리가 택한 산길에 사람 발자국이 나있지 않다. 눈 온 지가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 사람 발길이 없다. 새하얀 눈이 발목까지 빠진다. 갑자기 겁이 덜컹 난다.

"우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냐? 길도 미끄러울 것 같구!"
"아이젠 차면 괜찮아요."


한 번 들어선 길을 돌아가기는 어려운 법. 모두 아이젠을 꺼내 신었다. 발자국은 나지 않았지만 다행이 길은 찾을 수 있다. 눈길에 첫발자국을 내고 지나는 기분이 새롭다. 우리가 발자국을 내면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새 길이라도 개척하는 듯싶다. 푹푹 빠지는 눈길이 즐겁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 느낌 또한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한참을 걸으니 산짐승 발자국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짐승이 낸 발자국이 우리가 가는 길로 나있다. 녀석들도 아무 데나 다니지는 않은 모양이다. 발걸음을 떼는데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계곡 가장 낮은 곳에 다다르자 먼저 도착한 일행이 호들갑이다.

"야, 고드름 폭포이다! 눈이 녹아 빚은 자연의 예술품이 따로 없네!"

고드름 폭포문수산 계곡에서 만난 고드름이 색다른 풍광을 자아냈다. ⓒ 전갑남


계곡을 가로막은 바위에 눈이 녹아 흐르면서 폭포수와 같은 고드름을 연출하였다. 움푹 들어간 굴 속에도 멋진 고드름이 보인다. 얼어붙은 푸른 이끼 사이를 헤집고 나온 물방울이 빚은 고드름이 유리알처럼 맑다. 동굴 속의 종유석을 보는 것 같은 신비함이 느껴진다.

문수사에 도착하였다. 곤로전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겨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는 가는 길을 재촉했다.

조강(祖江)한강하구를 조강이라 부른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진다. 강 너머가 북녘이다. ⓒ 전갑남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자 산등성이가 코앞이다. 눈앞에는 한강하구의 푸른 물결이 펼쳐진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강 너머가 북녘 땅이다. 겨울 산인데도 남과 북의 산 색깔이 다른 이유가 뭘까?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강물과 북녘의 뿌연 운무가 마음 깊숙이 파문을 일으킨다.

신통방통한 곤줄박이의 재롱

드디어 해발 376m의 문수산 정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푸른 강물과 북녘 땅을 응시하고 있다. 입에서 하얀 김을 내뿜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 한강하구를 조강(祖江)이라 한다지? 북녘이 코앞이네!"

이곳저곳 카메라에 담을 게 많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일행이 옷깃을 잡아끈다.

"이제 막걸리나 한 잔하자구!"

문수산에는 정상아래 막걸리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산행으로 갈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든다. 막걸리 한 잔을 걸치는 것은 문수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원한 막걸리가 기막히게 넘어간다. 산악대장이 챙겨온 김밥과 보온병에 담아온 뜨끈한 김칫국 안주가 그 맛을 더해준다. 내가 안주로 땅콩을 꺼내자 아저씨가 껍질을 벗기며 말을 꺼낸다.

"곤줄박이 녀석들, 오늘 신나겠네!"
"곤줄박이가 있어요?"
"녀석들, 땅콩이라면 사람한테 마음까지 주잖아요."


나무 위의 곤줄박이나무 위에서 맴돌며 등산객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 전갑남

재롱부리는 곤줄박이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땅콩을 잽싸게 집어갔다. 작은 새가 참 예뼜다. ⓒ 전갑남


어디서 날아왔는지 곤줄박이 대여섯 마리가 우리 주위를 맴돈다. 땅콩을 까서 손바닥에 올려놓자 금세 잽싸게 땅콩을 가로채 도망친다. 우리 일행이 장난기를 발동한다. 머리에 쓴 털모자 위로 땅콩 몇 알을 올려놓는다. 자신을 헤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곤줄박이가 연신 땅콩을 입에 물고 내뺀다.

"곤줄박이가 얼마나 신통방통한 줄 아세요? 입에 문 것을 바로 먹지 않아요. 숨겨두고 아껴먹는 습성이 있지요. 곤줄박이는 저축상 깜이다니까!" 

저축상을 줘야한다? 그러고 보니 물어가고 또 물어간다. 자기들만의 비밀스런 자리에 먹이를 갖다 놓고 금세 또 오는 모양이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재롱을 피우는 작은 새의 모습이 참 귀엽다. 미끄러운 힘든 산행이었지만, 모두 행복한 얼굴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일행이 한마디 한다.

"설경에 취하고, 푸른 강물에 취하고! 막걸리에 한 잔에 흥이 나서 좋고. 곤줄박이 재롱까지! 오늘 기분 최고네! 춘 삼월에 또 올까?"

문수산의 겨울

ⓒ 전갑남

덧붙이는 글 지난 토요일(26)에 다녀 왔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