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스테르담>겉표지 ⓒ media2.0
이 자리에는 몰리와 관계 깊은 또 한 명의 남자가 있는데 그는 촉망받는 정치인 가머니다. 한 여자를 둔 네 명의 남자가 한 자리에 모인 셈인데 당연하게도 그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갈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여성이 죽었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클라이브와 버넌은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우정을 생각하며 그 자리를 떠난다.
그 사이 클라이브는 범죄 현장을 보다가 작곡가로서 영감을 얻어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사건에 뛰어들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뮤즈를 만난 셈이다. 그는 버넌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버넌도 클라이브에게 가머니의 사진을 고백한다. 서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로의 출셋길을 ‘축하’하기는커녕 독설을 퍼붓는다. 그럼에도 이 둘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었을까?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은 그의 소설답지 않고 빠르게 진행된다. 급박하다고 해야 할까? 소설이 스피드하게 진행되는 탓에 그런 것도 있지만 주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절벽 위에서 눈을 감고 걷는 것처럼 아찔하기에 그런 탓도 크다. 그들의 선택이 이후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가. 그야말로 스릴러 뺨친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언 매큐언이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깊은 곳을 파고드는 그 모습은 변함없다. 버넌과 클라이브는 비양심적인 일을 하면서 서로를 비난한다. 자신의 것에는 온갖 의미를 부여하면서 친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지독한 독설을 퍼붓는다. 저주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지저분한 것이다.
그 저주 때문일까? 그들의 일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과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그것은 특히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더 심하다. 그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암스테르담에 갔고 그것에서 만난다. 명목상으로는 화해다. 하지만 화해를 건네는 말과 손짓 뒤에 숨겨진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악으로 뭉친 나르시시즘을 엿볼 수 있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마는데 그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우면서도 자극적이지만 건네는 말은 진지하고 묵직하다. 동시에 스릴러 못지않은 흡인력까지 지니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매력이 한껏 발산됐다고 할 수 있는 <암스테르담>,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들이 어느 작품보다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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