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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노 대통령 회견, 모처럼 시원하다

인수위 정부조직개편안 거부권 행사 시사한 노무현 대통령을 보며

등록|2008.01.29 10:50 수정|2008.01.29 15:14

▲ 강한 주장을 하고있는 노 대통령 ⓒ 청와대 홈페이지


“지금 여론은 분위기가 있지요? 그러나 여론이라는 것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없어졌던 조직이 하나씩 둘씩 살아나고, 줄였던 정무직이 하나씩 둘씩 슬그머니 살아나고, 위원회가 하나씩 둘씩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 여론들도 달라질 것입니다.”(28일 인수위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기자회견 중 노 대통령의 말)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국민의 뜻을 거역했다. 국민들에게 인기 없는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명박 인수위에 칼날을 세우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은 28일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내용과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거듭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당선된 이명박 인수위의 정책방향에 대해 강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있었던 ‘거역’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국민 뜻 이미 한 번 거스른 대통령

“역사에서 백성은 항상 옳은 결론으로 걸어갔지만 수백년이 걸린다. 역사 속에서의 민심과 어떤 시기에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국민을 제왕으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는 직언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대통령을 신하로 생각하고 지금 과감한 거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8월 <KBS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주장하며 했던 말이다. 대연정은 지역 구도로 인해 대립된 정당의 구도가 민주적 책임정치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판단 아래 나온 주장이다. 즉 선거구제 개편을 통해 지역구도를 타파해 보자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제안은 위에서 그가 말한 대로 국민의 뜻을 정확하게 거역하는 행위였다. 가치와 철학이 다른 한나라당 주도의 연정에 권력까지 통째로 내놓는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던져진 50%에 육박하는 국민들의 지지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회 개혁을 위한 것이었지 한나라당과의 연계정치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연정 제안 말고도 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국민들의 뜻을 많이 거슬렀다. 기득권층의 견제에 의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집권 초기의 변화 의지를 너무 빨리 거둬들였고, 개혁 동력을 상실한 채 거꾸로 가는 정책들이 많이 양산 되었다. 노동자, 서민의 정부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오히려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실마리를 풀어내지 못했다.

지난 16대 대선에서 국민들이 노무현에게 던졌던 표는 한국사회의 진정한 개혁과 변화의 열망이 담긴 희망의 한 표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국민들의 표를 보듬어 안지 못했다. 국민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참여정부는 극심한 민심이탈을 경험했다.

이번 '거역'은 잘못된 모습 바로잡는 올바른 행위

28일 기자회견 모습은 그동안의 잘못된 '거역'들과는 달랐다. 이번 모습은 국민의 뜻을 거슬렀던 행위를 바로 잡은 올바른 ‘거역’이었다. 대통령의 소신과 철학에 반하는 정당과의 연정을 통해 원칙 없는 타협의 정치를 주장했던 이율배반적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기자회견 중 “참여정부의 철학을 형편없이 깎아 내리는, 참여정부의 철학을 깎아내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법안에까지 꼭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 합리적인 협력입니까?”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원칙과 소신을 지킬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

임기가 한 달도 채 안 남은 대통령이 강력하게 자신의 철학을 내세우며, 인수위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강하게 문제제기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또한 노무현을 지지했던 수많은 국민들에게도 이번 기자회견은 올바른 ‘거역’이었다. 졸속적으로 한미FTA를 추진하고, 부동산 광풍을 몰아치게 했던 국민배반적인 행동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정부가 큰 정부입니까? 공무원 수, 재정규모, 복지의 크기, 각기 세계에서 몇 번째나 큰 정부인지 말할 수 있습니까?”
“예산 기능이 경제 부처로 통합되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여성부가 왜 생겼고, 왜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었는지, 그 철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까?”
“인권위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하는 것이 맞는가요? 왜 국제인권기구가 대한민국 인권보호의 퇴보이며 독립성에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했을까요?”


OECD 평균 공공복지예산의 절반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국가임에도 작은 정부를 외치는 인수위에 대한 비판은 옳았다. 또한 사회적 정의를 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데 필수적인 부처와 위원회 축소에 강한 반대를 한 것도 옳은 지적이다. 이러한 발언은 노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던 지지자들을 배반하지 않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처럼의 시원한 말이었다.

대통령의 멋진 뒷모습을 기대한다

레임덕에 시달렸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방향에는 ‘NO'를 외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매우 긍정적이다. 지난 2002년 노무현에게 걸었던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마지막까지 잊지 않길 바란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지만 그를 지지한 국민들의 열망에 반하지 않는 소신정치를 하며 당당하게 퇴임하는 노 대통령의 뒷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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