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졸졸, 잘잘잘,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그 소리를 들리는 그대로 표현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 답답하고 갑갑할 뿐이다. 한참을 그렇게 걸으며 그 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조용, 조용히 흐르는 그 물소리를 흉내낼 수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엔 커다란 바위들이 눈사람인양 편안히 앉아 있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돌 틈 사이를 엎드려 그곳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산길에서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상이 바위 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 계곡의 맑은 물문경새재 계곡의 맑은 물 ⓒ 임재만
어느새 물소리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 계곡속을 이리 저리 헤집고 돌아다녔다. 조개 모양을 한 얼음꽃도 있고, 발자국 모양을 한 것도 있다. 그 모양이 너무 많고 다양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감탄이 절로 난다. 오로지 빛과 물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 물방울 형상의 얼음꽃물방을 머금은 계곡의 얼음꽃 ⓒ 임재만
그 맑은 물은 바위틈을 돌고 돌아 그 안에 피어 있는 얼음꽃을 말끔히 씻기우고 거침없이 또 내려간다. 맑은 물로 깨끗이 단장한 얼음꽃은 전보다 더 반짝이는 모습으로 그림같이 다가온다. 그 모습은 너무 신비하여 보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형상을 달리하며 보석처럼 빛난다.
▲ 얼음폭포계곡에 핀 얼음 폭포 ⓒ 임재만
추운 겨울에 얼음지치기로 하루를 보냈던 시절, 배가 고프면 처마 밑에 달려 있는 고드름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적이 있다. 그 때는 고드름을 보고 예쁘고 신기하다 생각하기보다는 허기를 달래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오늘 물소리를 따라 계곡에 들어와 앉아 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전에는 산에 들어서면 오로지 산 정상을 향해 가느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 욕심을 비우고 귀를 열어 마음을 새롭게 하니 천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매서운 바람이 산등성이를 넘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 바람은 돌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그들의 가는 길을 또다시 멈추게 할 것이다. 그들은 잠시 머물지라도 게으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설사 동장군이 또 찾아와 가던길을 막더라도 다시 계곡의 얼음꽃으로 피어나 잠시 머물다 갈 것이다.
▲ 계곡에 핀 얼음꽃문경새재의 계곡에 핀 얼음꽃 ⓒ 임재만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지만 대양으로 향하는 그들은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이치를 하나하나 깨달으며 지혜롭고 여유롭게 계속 흘러갈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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