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름 옆에 '시민기자'라고 표시한 두 번째 작품. ⓒ 정현순
30일, 드디어 기다리던 책이 도착했다. 이번이 두 번째 보내주는 책이라고 했다. 1월 중순경에 처음 보냈다는 그 책은 일주일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곳에서 다시 보내준 것이다.
두 번째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도 행여 분실될세라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들여다 보았다. 30일에도 3번째 우편함을 확인해보니 그제야 책이 꽂혀 있었다. 그날만큼 도착한 책이 반가울 때가 없었다. 내 이름 옆에 '시민기자'라고 표시한 두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책을 받자마자 내 글이 실린 페이지를 찾았다. 정현순 시민기자라고 정확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기분이 뿌듯했다. 결혼 후 주부 이외 다른 말을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사진 찍기를 즐기는 나는 사진을 찍어 정겨운 사진들을 한 일간지 디카 코너에 올리기도 한다. 그곳에서 열렸던 디카 공모전에도 입상한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일간지의 독자갤러리에 수차례 실리기도 했다.
1월 초순경 그곳 일간지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올린 사진이 독자갤러리에 실리게 되었다고. 그래서 난 “그럼 시민기자라고 해 주세요”했다. 처음에는 그러마 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와서 한다는 말이 어디 시민기자냐고 물으면서 “그냥 주부라고 하면 안 될까요?”하는 것이 아닌가. 난 “네,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시민기자라고 해주면 더 좋고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여 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사진이 실린다는 그날 신문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도 내 이름 옆에는 시민기자라고 실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기분 정말 괜찮았다. 내 입장에서는 시민기자도 직업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이외에 다른 곳에서도 시민기자라는 표현으로 나를 나타내고 있으니 시민기자의 자부심이 더욱 더 생기는 것 같았다. 누구나 다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도전하지 않는 시민기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했던 몇 가지 일 중에 한 가지가 시민기자가 된 것이다.
다음에도 어디에선가 “어떻게 써드릴까요?”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시민기자라고 해주세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 직업은 시민기자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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