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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의 한시가 마음을 사로잡네

[슬라이드] 솔내 숲 나무들이 들려주는 옛 한시

등록|2008.01.31 09:07 수정|2008.01.31 09:07
한시

ⓒ 이인옥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만난 한시들, 그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한 줄 한 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읽어가는 한시들은 내 심장을 사정없이 뛰게 만든다. 빼어난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고 주옥같은 한시, 문경새재를 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널따란 신작로처럼 쭉 뻗은 길을 따라 문경새재를 넘다보면, 아주 특이한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구구절절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시들을 껴안고 서 있는 나무들, 그 모습을 보고 누구든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리라.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시선을 빼앗긴 것이 어디 한 둘 이랴마는 유심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다면 길가 곳곳에 새겨진 주옥같은 한시들이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넘는 고갯길, 천천히 여유를 갖고 걷다보면 멋진 시를 읊던 조상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솔내 숲에서 만난 나무들, 그들이 안고 있는 시들을 하나하나 읊어 보련다.

조령에 올라
       
바다, 구름 강복의 고을을  /모두 보고 나니/ 하늘에서 또 영남의 /산들을 지나게 하였네
새 날아다니는 길/ 삼천키를 따라 오르니/ 이곳이 바로/ 비 내리는 제일관 이라네.
     정희량(1469년~1502년)

나무에 새겨진 시나무에 새겨진 한시를 안고 있는 소나무 ⓒ 이인옥


                             바위 응달에 쌓인 눈                              

한 겨울에 온 골짜기 얼음으로 덮였더니/봄을 맞아 계곡의 물 흐르기 시작했네
자연의 경치 시절 따라 달라짐이여/ 사람의 마음 늙어가면서 더 끌려드네.
    서거정(1496년~1502년)

문경 사또 남진과 이별하다

녹음은 천 경 만 경으로 펼쳐졌고/ 꾀꼬리는 꾀꼴꾀꼴 울음을 우네.
주인은 오늘밤 술에 흠뻑 취했고/ 나그네는 내일이면 길 떠나간다네.
  이명한(1595년~1645년)

조령에서 소회를 쓰다

깃발 앞세우고/ 험난한 길 지나왔거니/십년 세월 영욕을/ 내 겪었었다네
한 여름엔 용추에서 / 물 한 모금 마셨고/ 눈길에 다시/ 조령 관문에 발 디뎠다네.
    조태억(1675년~1728년)

만학의 단풍이란 시가 적힌 나무 ⓒ 이인옥


만학의 단풍

붉은 벼랑들은 연단술을 끝내고서
남은 색깔로 뿌려 경치 좋게 했지
내, 신선세계를 찾아가려 하니
이곳엔 신선이 없지도 않을테지.
       홍귀달(1438년~1504년)

이보게 노래 한 곡조

이보게 노래 한 곡조 장진주로 부르세나
앞 집에 술이 익고 마을이 도화로다
진실로 봄바람 다 지나면 놀 형편이 없어라
        권섭(1671년~1759년)

관음원에서

주흘산 머리에 구름은
넓고 아득한데
관음원 안에는 비 주룩주룩
내리고 있네
고갯길이 거듭 가려진 것
애석하긴 하지만
님 그리는 이내 마음을
막지는 못하리라
  이황(1501년~1570년)

새재에서 묵다

살랑살랑 솔바람 불어오고/ 졸졸졸 냇물소리 들려오네
나그네 회포는 끝이 없는데/ 산 위에 뜬 달은 밝기도 해라
덧없는 세월에 맡긴 몸인데/ 늘그막 병치레 끊이질 않네
고향에 왔다가 서울로 가는길/ 높은 벼슬 헛된 이름 부끄럽구나
  류성룡(1542년~ 1607년)

새재에서 시 두편

새재는 굽이굽이 고갯길이요/ 용추는 깊고 깊은 연못이라네
구름은 산허리를 두르고/ 아침 해 산머리에 빛나네
어여쁜 새는 나무에서 울고/ 미끈한 물고기 연못에서 뛰네
저들이야 모두 제 뜻대로 살건만/ 나는야 갈길 멀어 석양 길로 접어든다.
  신익전(1605년~1660년)

새재로 가는 길

산 꿩은 꾹꾹꾹 시냇물은 졸졸졸/ 봄비 맞으며 필마로 돌아오네
낮선사람 만나서도 반가운 것은/ 그 말씨 정녕코 내 고향 사람일세

조령에서

벼랑을 끼던 길/ 논두렁을 만나도/ 높은 산 험한 고개/ 다시 솟았다
남북으로 나눈 땅에 / 관문을 거듭하고/ 세력이 천지간에/ 한 기세로 웅장하다
   허적(1610~1680)

예로부터 이 산줄기

예로부터 이 산줄기/ 형세 드높았거니/ 왕정에 여가 많아도/ 오름에 게을렀네
탄금대 아래에는/ 시냇물 흐르고/ 주흘산 자락에는/ 가을 경치 한창일세.
  오도일(1645년~1703년)

가을바람 쓸쓸하여

가을바람 쓸쓸하여 초목이 다 시드는데
뜰 가득 노란 국화 어찌하여 피었는고
진실로 만절한향이 가실 때가 없어라
권섭(1671년~1759년)

벼랑의 백설

벼랑 응달엔/항상 눈 있거니/봄 계속에/ 물 흐르지 못하네
사람의 일을 / 어찌 예서 말하랴/ 하늘의 이치/ 참으로 알수 없어라
 윤상(1373년~1455년)

    새재

백두산은 남으로 삼천리를 달려와서/ 큰 고개 가로질러 칠십 고을 나눴네
예부터 제후들 할거할 곳 있었거니/ 지금까지 그 요새 흔적이 있다네
짓 푸른 봉우리 거듭거듭 솟아있고/ 눈부신 단풍은 나무마다 아름답다
공명을 세우기엔 내 이미 늙었거니/ 가던 길 멈추고 개인 하늘 볼 밖에
  김만중(1637년~1692년)

문경새재 아리랑커다란 돌에 새겨진 문경새재 아리랑 ⓒ 이인옥


문경새재 아리랑

문경새재 홍두깨 아리랑 아리랑/ 홍두깨 큰아기 아리랑 아리랑/
물박달 방망이로 아리랑 고개로/ 방망이 손질에 아리랑 고개로
나무 다 나간다 아라리요 넘어간다/ 팔자 좋아 놀아난다 아라리요 넘어간다
갈 제 눈물 난다 아라리요 넘어간다.

큰 바위에 새겨진 문경새재 아리랑이다. 이곳을 지나다 보면 구슬픈 문경새재 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책 바위 이야기책 바위 이야기가 자세히 안내된 표지판 ⓒ 이인옥


문경새재 「책바위」이야기

옛날 인근에 살던 어느 큰 부자가 사직이 없어 걱정인지라 하늘에 치성을 올려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었으나 자라면서 점점 몸이 허약해저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몸을 고치고자 수소문 끝에 유명하다는 문경의 도사에게 물으니 “당신 집터를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담을 직접 헐어 그 돌을 문경새재 책 바위 뒤에 쌓아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린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일렀다.

이후 아들은 돌담을 헐고 삼년에 걸쳐 돌을 책 바위까지 나르니 허약하던 몸이 어느새 튼튼해졌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결국 장원급제까지 하였다. 이후 이곳을 넘나들던 과거 객들이 “책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를 한다” 는 전설이 젼해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건강과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영험스러운 곳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특히 입시철이면 소원성취를 비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새재길 옆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시인이나 묵객이 즐겨찾는 경승지로 잘 알려진 용추의 경관을 읊은 시 두 편은 이렇다.

큰 바위 힘이 넘치고 구름은 도도히 흐르는데/ 산속의 물 내달아 흰 무지개 이루었네
성난 듯 낭떠러지 입구 따라 떨어져 웅덩이 되더니/ 그 아래엔 먼 옛적부터 이무기 숨어있네
푸르고 푸른 노목들 하늘의 해를 가리었는데/ 나그네는 유월에도 얼음이며 눈을 밟는다네.
깊은 웅덩이 곁에는 국도가 서울로 달리고 있어/ 날마다 수레며 말발굽이 끊이지 않는다네
즐거웠던 일 그 몇 번이며 괴로웠던 일 또 몇 번이었던가?/ 하늘 땅 웃고 어루만지며 예와 오늘 곁눈질 하네
큰 글자 무르녹은 듯 바위에 쓰여져 있으니/ 다음날 밤에는 응당 바람 비 내리리라. 
                                              지은이 - 퇴계 이황

용이 꿈틀거리어 소용돌이를 헤치니/ 잠긴 하늘에 밝은 해가 새롭다
갠 날 우뢰 소리에 흰 무지개 뻗치니/ 황홀하구나, 누가 그 신비를 알리
                                              면곡 어변갑

계곡문경새재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 이인옥


문경의 용담폭포

처다 보니 새재 길 아득히 멀고/ 굽어보니 구불구불 열 두 구비라
여기 이곳 용담폭포 참으로 볼만한데/ 폭포소리 물보라 앞 다투어 일어나네.

  권오복(1467년~1498년)

새재의 용담을 지나며

우렁찬 폭포 소리 물 속에 잦아들고/ 에워싼 나무들로 그윽하고 깊어라
용아, 너는 예로부터 어떻게 닦았기에/ 지금 여기 누워서도 놀라지 않느냐?

홍언충(1473년~1508년)

          새재에서 묵다

험한 길 벗어나니 해가 이우는데/ 산자락 주점은 길조차 가물가물
산새는 바람피해 숲으로 찾아들고/ 아이는 눈 밟으며 나무지고 돌아간다
야윈 말은 구유에서 마른 풀 씹고/ 피곤한 몸종은 차가운 옷 다린다
잠 못 드는 긴 밤 적막도 깊은데/ 싸늘한 달빛만 사립짝에 얼비치네
지은이 - 본관 덕수, 호 율곡

새재를 넘어 시골집에 묵다

새재는 남북과 동서를 나누는데/ 그 길은 아득한 청산으로 들어가네
이 좋은 봄날에도 / 고향으로 못 가는데/ 소쩍새만 울며불며/ 새벽 바람 맞는구나
  김시습(1435년~1493년)

문경새재를 넘으며 많은 시와 만났고 그들로 인하여 큰 감동을 받았다. 한 구절 또 한 구절 읽으며 받던 감동은 겨울 추위를 녹이고도 남는다. 새들도 쉬어 간다는 문경새재, 겨울 숲속에서 만난 시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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