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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시장의 독점, 그 위험한 발상

등록|2008.01.31 10:23 수정|2008.01.31 10:23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 보장에 관한 법률’, 즉 신문법을 폐지하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신문·방송 겸영을 찬성하는 지지자들은 미국(또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어, 미디어 융합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지난 12월18일 20개 대도시에 한해 빅4 방송사를 제외한 통과시켜 언론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존재했던 겸영 금지 조치를 32년 만에 사실상 폐지하자 매우 긍정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미국 정부가 언론의 소유 구조에 대한 규제를 꾸준히 완화시켜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워싱턴의 로비스트들을 이용해 정부와 의회에 강력한 로비를 펼친 거대 언론사들이 뒤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언론사들은 지금도 정부를 상대로 더 많은 규제를 풀어달라는 로비를 벌이는 중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언론 소유구조에 대한 규제 완화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FCC는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 법’을 제정, 통과시켜 한 언론사가 미국 전역에 4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제를 완화했다.

그 결과 미국의 클리어 채널 커뮤니케이션(Clear Channel Communication)사는 무려 1천200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라디오방송 재벌로 성장하게 됐다. 또한 6개의 거대 미디어 그룹이 미국의 언론시장을 장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디즈니 미디어 그룹은, 10개의 TV 방송국과 50개의 라디오 방송국, 그리고 ABC 방송국을 비롯해 ESPN, A&E, 히스토리 채널, 디스커버리 매거진, 미라맥스(Miramax) 영화사, 그리고 출판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또 바이어컴(Viacom)은 39개의 TV 방송국, 184개의 라디오 방송국, 니콜오디언(Nickelodeon), MTV, 파라마운트(Paramount) 영화사, 그리고 CBS 방송국을 소유하는 미디어 재벌이 됐다.

결국, 언론의 소유구조에 대한 규제가 풀리면서 미국에서는 자본력이 막강한 6개의 거대 미디어 그룹이 미국 전체 언론시장을 장악하게 됐고, 이들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정보의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를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언론의 소유구조에 대한 규제를 풀게 되면, 소수 거대 언론사들의 언론시장 지배력은 점점 커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약한 중소 언론사들의 시장 지배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소수의 거대 언론재벌이 언론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심각한 여론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 언론은 1980년대와 달리 정치권력의 통제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또 다른 권력인 자본의 권력에는 점점 더 종속되는 실정이다. 만약 신문·방송 겸영이 허용된다면 언론의 자본에 의한 종속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본에 의한 언론의 종속 현상은 언론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언론 소유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시녀로 전락할 수 있는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수 언론 집단의 언론시장 독점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몇몇 거대 언론사에 의해 생산된 정보는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면면을 담아내기에는 태생적으로 제한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많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채널, 신문사가 존재하더라도 그 채널의 소유주가 몇몇 언론사에 편중됐다면, 거대 미디어 그룹에 속한 언론매체들은 논조가 비슷한 정보와 내용을 전달하게 되고, 시청자나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들은 똑같은 내용의 뉴스와 방송 프로그램을 자사가 소유하고 있는 전국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반복해서 내보낸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기본적으로 독과점 신문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지만 자본력이 강한 몇몇 거대 언론사들의 언론시장 독점 현상을 가져와 가뜩이나 심각한 여론 독과점 현상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거대 언론사들이 문어발식 소유를 통해 언론을 사유화하고, 정보의 왜곡을 통한 여론의 왜곡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기사는 경향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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