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 외로운 그들이 남아
충북 청원 안심사와 증평 남하리의 불상과 탑을 찾아
▲ 안심사 대웅전조용한 사찰이다. ⓒ 김환대
충북 청원군에서는 유명 사찰인 안심사를 찾았다. 안심스러운 절이라서인지 올라가는 길 내내 마음도 절로 편안해 진다고 할까? 편안한 마음으로 통일신라 혜공왕 11년(775)에 진표율사가 제자를 길렀다 해서 안심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작은 절이지만 아담스런 규모이다. 주 건물은 대웅전(보물 제664호)으로 확실하게 지은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1979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와의 기록으로 조선 인조 때의 건물로 추정된다. 정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이나 원래는 맞배지붕이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러 차례 수리를 통해 건물이 축소·변형되면서 지붕 형식도 바뀐 것으로 보인다.
▲ 영산전16나한과 나한도가 있다. ⓒ 김환대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세워진 건물로 조선시대 말기인 헌종 8년(1842)에 고쳤다. 원래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었지만 최근에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 세존사리탑세존 사리탑과 비 ⓒ 김환대
대웅전의 서쪽에는 세존 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과 비,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 없는 석조 여래좌상이 있다. 사리탑은 바닥돌 위에 매우 높직한 8각 받침돌에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로 길쭉하고 둥근 탑신을 올린 후 보주를 얹은 형태이다.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양식인 종 모양의 형식을 띠고 있다. 탑 옆의 세존사리비에 의하면, 이 산 중에서 탑을 발견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던 것을 1900년에 다시 이 절로 옮겨 왔다고 한다.
증평군의 잘생긴 이런 불상
▲ 남하리 석조보살입상다소 거구의 보살입상이다. ⓒ 김환대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에 있는 석조 미륵보살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을 찾았다. 입상으로 양 옆에는 작은 2구의 얼굴이 많이 보수된 불상과 함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49년 마을 뒷산에 성주사를 세운 윤월인 스님이 이 불상들을 모아 다시 세웠다가 6·25전쟁 후 마을의 주민들이 보호하고 있다. 발 아래 부분이 시멘트 땅에 묻혀 있으며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왼손을 가슴부분에 들어 연꽃 송이를 받치고 있는 보살상이다.
▲ 뒷모습남하리 석불들의 뒷 모습 ⓒ 김환대
얼굴에는 한가득 입가에 미소 짓는 표정이 마치 자비의 화신으로 온화한 느낌을 준다. 고려시대 중기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나타난다. 측면에서 보면 얇은 입상으로 느낌은 전혀 다르다.
▲ 주변 석재주변에 용도를 다소 알 수 없는 석재가 있다. ⓒ 김환대
주변에는 받침대로 추정되는데 석재가 있다. 마을에 전설로 이곳에 가까운 절에 보살이 있었는데 자신의 절이 미륵불 때문에 번창하지 못한다고 오해하여 이 불상들을 넘어트리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고 한다.
석탑과 마애불상군이 있는 곳
▲ 전경멀리나마 탑과 마애불상군이 보인다. ⓒ 김환대
석조 미륵보살 입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찾기가 다소 어려운 석탑과 마애불상군이 있다. 아마도 주변이 다 절터였던 것 같다.
▲ 남하리 삼층석탑남하리 삼층석탑은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있다. ⓒ 김환대
남하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은 바위의 윗 부분을 다듬고 받침돌을 놓아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1·3층 몸돌은 각각 한 돌로 되어있고, 2층 몸돌은 1층 지붕돌과 한 돌로 조성되어 있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층급받침을 높게 새긴 점이 특징적이다. 몸돌 중아 부분에 다 같이 네모난 홈을 파 놓았는데 후대에 아마 보수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주변 지형으로 보아 아마 화기를 누르는 비보탑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마애불상군넓은 암벽에 조각이 심하게 마멸된 마애불상군이 있다. ⓒ 김환대
탑 바로 옆에는 마애불상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7호)이 동향을 하고 넓은 암벽의 3면에 모두 5구의 불·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에 본존불과 좌우에 보살을 조각한 1면이 있고, 그 암반의 북면에 여래입상이 별도로 새겨졌다. 삼존불이 있는 바위의 남쪽 앞 정면 삼각형의 암반에 충북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마멸이 심하다. 전체적으로 모두 마멸이 심하나 조각 수법과 주변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증평군의 유적은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불교문화 유적이 이곳에도 남아 역사의 흐름을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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