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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을 돌아보고 우암 송시열 선생에게 배운다

국립청주박물관 청명관 기획 특별전시을 다녀와서

등록|2008.02.02 13:07 수정|2008.02.02 13:07
1월 30일 끝이 난 국립청주박물관 청명관의 우암 송시열 선생 기획 특별전시를 둘러보고 온 후 우암 선생에 대해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배운 듯 하다.

전경청명관 전경 ⓒ 김환대


유품 속에 배어나는 우암 선생의 발자취

우암 송시열 선생은 조선 후기 성리학의 일가를 이룬 대학자로 대의명분을 강조한 사상가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우암 선생의 발자취와 학문세계를 총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청명관 전시관 입구에는 호패 만들기를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관람 후에 활동지를 작성해 온 초등학생들에게 참여 기회를 주고 있었다.

호패호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환대



전시관에 들어서면 바로 우암 선생의 연표와 7군데 생거지와 6군데 적거지를 지역별로 나누어 놓았는데 7군데 생거지는 서울, 수원, 예주, 청원, 대전, 강경, 옥천이고 6군데 적거지는 장기, 거제, 정읍, 제주, 강릉, 덕원이다.

연대표와 생거지, 적거지 설명선생의 일대기와 전국의 생거지 및 적거지를 안내하고 있다. ⓒ 김환대



전시된 많은 유품들에서 평생 동안 바르고 곧게 강직한 삶을 산 선생의 발자취가 흠뻑 배어나는 듯 하다.

은진송씨 족보와 송시열의 사주를 본 기록, 부친인 송갑조의 일대기가 있는데, 송시열이 직접 쓴 것이다. 봉이라 하여 송시열 선생의 과거 시험 답안지와 서천 생원시험 답안지, 생원시험 합격증서 시권과 백패 등이 있으며, 효종이 송시열에게 보낸 문서와 1659년(효종10) 내린 비밀 편지 밀찰, 송시열이 스승과 제자들에 관해 기록한 책, 1675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도 있다.

1671년 송시열이 맏 손자 며느리인 박씨에게 써 준 글과 시집간 딸에게 한글로 손수 지어준 계녀서도 있는데 아버지로서의 자상함이 느껴진다.

손자 며느리에게 써 준 글장손부에게 직접 써 준 글이다. ⓒ 김환대


중간에는 송시열이 사용한 천체 관측기구가 있다. 평생 사용했던 나무책상과 나무 베개에서는 당시 삶에서의 검소함이 느껴진다. 송시열 선생은 마지막 시간을 일기로 남기기도 하였다. 영정과 화상찬(영정에 그려진 인물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글)도 보인다. 개인 문집 가운데는 가장 많은 양의 102권짜리 송자대전(宋子大全)에서도 송시열 선생의 학문과 사상의 깊이가 엿보인다.

유품유품 중 일부 ⓒ 김환대



영정영정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 김환대



눈길을 모운 대로사비 큰 글자는 1779년 정조가 직접 쓴 송시열 신도비의 큰 글씨로 당시 송시열에 대한 존칭이었던 대로의 이름을 따서 대로사란 은액을 내리고 치제하여 정조가 직접 짓고 쓴 비문을 내렸다.

이번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품 전시를 둘러보며 선생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그동안 미처 몰랐던 학문세계를 배웠다. 선생의 삶과 철학이 담긴 유품은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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