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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느새 '감자눈썹'에 머물고

[북한강 이야기277] 입춘대길

등록|2008.02.03 16:28 수정|2008.02.04 11:08
달력 첫 장을 뜯어내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입춘(立春)입니다. ‘봄이 온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올 겨울엔 눈 많이 내리고 날씨도 별나게 추웠기에 봄소식이 더욱 기다려지는가 봅니다. 이제부턴 귓바퀴를 탱탱하게 에이던 칼바람도, 김장독 터뜨리던 강추위도, 지하수 물줄기를 가로막던 얼음덩이도 더는 어떻게 못살게 굴지 않겠지, ‘쳇’ 기지개를 켜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광 밑을 내려가 씨감자를 열어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폭폭 파인 씨감자의 눈 속으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자주색 파란 싹들이 봄을 밀어 올리며 겨울을 쫓아내느라 뜨거운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 감자 눈썹에 자주색 입술이 나와 노랗게 변해갑니다. 봄이 멀지 않은 듯.. ⓒ 윤희경


입춘은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첫 번째 절기입니다.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기 시작하고,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입춘 전날은 '해넘이'라 부르고 밤엔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풍습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봄이 온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가랴 싶습니다. 입춘첩을 써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문설주 등에 붙이면 따사로운 봄 햇살과 복이 집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온다 합니다. 많이 쓰이는 글귀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됨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는 뜻이지요.

▲ 벌레잡이 제비꽃이 피어나 실내 먼지들을 잡아먹으며 봄볕을 실내로 불어옵니다. 앙증맞지요. 조금 있으면 하루살이와 날파리도 냠냥 짭짭 한답니다. ⓒ 윤희경


나는 특히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랍니다를 참 좋아합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겨우내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봄맞이 대청소를 하고 나면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여우 얼굴에도 노란 봄볓이 내려와 따사롭기 그지 없습니다. 여우야, 부르면 되돌아보며 오줌을 찔끔 쌀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 윤희경


봄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문을 화들짝 열어젖히고 화악산을 올려다보니 겨우내 쌓인 장설이 녹긴 아직 멀었고, 앞 개울물은 꽝꽝 얼어붙어 봄빛이 깃들기엔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할까 봅니다. 그러나 겨우내 길러낸 제비꽃, 물채송화, 동백꽃, 여우 얼굴엔 벌써 봄빛이 가득합니다.

▲ 물채송화에 한창 봄물이 올라 싱싱합니다. 봄이 깊어가면 앵무새 깃처럼 보드랍게 퍼져나갑니다. ⓒ 윤희경



나이가 먹어갈수록 참 바쁘게 세상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다 보니 계절은 물론 봄도 마음도 다 잊어버리고 산다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뿐이겠습니까, 봄도 오기 전에 미리 다 봄을 파먹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요. 입춘을 맞아 추위를 뚫고 저릿저릿 저려오는 봄기를 마셔봅니다.

▲ 까치들이 집을 보수중입니다. 봄이 온다고 아까부터 까각까각 짖어댑니다. 까치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정답습니다. ⓒ 윤희경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오늘따라 까치 소리가 더욱 정겹고 가까이 들려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봄처럼 부지런한 꿈을 꾸고, 봄처럼 새로워지라고 자꾸만 ‘까가 각 깍깍’ 봄 까치가 짖어댑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 농촌공사 전원생활 포털사이즈, 네오넷코리아 북집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농촌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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