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유목인 깨우기
[어느 40대의 배낭 여행기 3] 쌌다가 풀렀다가... 무엇을 가져갈까
창고를 뒤져 배낭을 찾았다. 배낭은 맨 밑바닥에서 납작 짜브라진 채 다른 짐들에 눌려 핍박받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 꽃이 되지 못한 것을 시위라도 하듯 허옇게 더께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집어들자,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자신의 서러움을 사방에 알린다. 알았어, 그만해! 나는 그를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내밀며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등을 몇 차례 때려주었다.
십오 년 전 쯤, 체력이 인생의 가장 큰 경쟁력인줄 알던 나이에 몸 만들고 등산 다니고 하면서 멨던 배낭이다. 암벽, 빙벽 등반에 몇날 며칠씩 야영하던 때의 배낭이니 용량이 꽤 컸다. 지금에 와서 보니 커도 너무 크다. 60 리터라니. 안을 다 채우고 어깨에 메면 높이가 내 키보다 주먹 하나는 높다. 어휴, 이 나이에 이걸 어떻게 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곁에서 마누라가 자기가 들어가도 되겠다고 한다. "여보, 내가 들어갈테니 날 메고 여행하면 안 되우?" 한다. 이 여편네가! 눈을 부라렸더니 흥, 하고 돌아선다. 말이나 딴에 '그러지 뭐'를 기대했을텐데……. 무시하고 배낭으로 눈길을 돌려 뭘로 채우지 하고 고민한다. 분명 채울 것도 있고, 채워야 할 텐데. 메모한 준비물을 차례로 훑었다. 여벌 옷 2개, 반바지, 속옷, 양말, 샌들, 긴 옷, 세면도구, 비상약품, 선크림, 선글라스, 노트, 필기구, 책, 아, 카메라…….
어느새 부풀어 오른 배낭을 메고 일어서 보았다. 나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25킬로그램은 족히 넘는 것 같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짐을 덜어내기로 했다. 배낭 무게와 여행 경험은 반비례 한다더니 맞는 말인 모양이다. '뭘로 채우지?' 하던 것이 '벌써 다 찼어?'로 바뀌었다. 처음엔 넓다고 생각했던 집도 어느새 잡다한 살림으로 채워져 좁다고 느끼는 것처럼 배낭 꾸리는 데도 욕심의 관성은 예외없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욕심은 마찬가지로되 처리하는 방식은 달랐다. 집은 이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피의 제한은 있을지언정 무게에 대한 제약은 없다. 그러나 배낭은 나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피와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이동하는 자의 숙명이다. 그리고 정주민과 유목민의 차이다. 정주민은 필요 이상을 쌓아놓고 지낼 수 있지만 유목민은 필요한 것만 지닐 수밖에 없다. 정주민은 부자이지만 유목민은 가난하다. 정주민은 지켜야 할 재산 때문에 이동할 수 없지만 유목민은 지켜야 할 것이 없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여행은 일시적이나마 유목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많은 것을 지니고는 멀리 갈 수 없다. 부자로서 편히 지내고만 싶으면 여행을 할 일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스스로 가난한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다. 가난의 자유와 가난의 행복을 맛보러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이다. 지킬 것이 없기에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가 있다. 채워져 있으면 경계부터 하지만 비워져 있으면 도움부터 생각한다.
배낭을 풀고 몇 개의 짐을 꺼냈다. 낯선 여행에서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모든 짐을 메고 갈 수는 없다. 불안을 소유로서 해결할 순 없는 것이다. 여행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또 불편해야 한다. 기중 무게가 나가는 세 권의 책 중 여행안내서 한 권만 가져가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 활자 속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샌들도 빼고 옷도 한 벌씩 꺼냈다. 그리고 다시 메어 보았다.
무게는 아까보다 훨씬 줄었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열대지방인데 갑자기 스콜이라도 쏟아지면 샌들은 필수일 것 아닌가. 여행지에서 보고 듣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거기서도 차를 기다린다든가, 휴식을 취한다든가 하면서 분명 남는 시간은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아깝게 무료하게 보낼 순 없지 않은가. 샌들과 책 한 권을 다시 넣었다. 그래도 비상시에 대비한 긴 옷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배낭을 다시 꾸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풀었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결국 배낭의 80% 정도를 채우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마음의 밑바닥에서 어떤 알 수 없는 것이 스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엔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자극.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기억도 아니다. 나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일 뿐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나는 이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시원 속에 감추어진 본능,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떠올라 평온한 일상을 마구 휘저어 놓은 갈망, 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찾아와 날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로 만든 그 유혹, 그것은 바로 떠남에의 충동였고 방랑에의 동경였다. 그리고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유목인의 모습이었다. 결국 짐을 덜어내는 것은 마음을 덜어내는 것이고, 마음을 덜어내는 것은 내 안의 유목인을 깨우는 곡괭이질이었던 것이다.
십오 년 전 쯤, 체력이 인생의 가장 큰 경쟁력인줄 알던 나이에 몸 만들고 등산 다니고 하면서 멨던 배낭이다. 암벽, 빙벽 등반에 몇날 며칠씩 야영하던 때의 배낭이니 용량이 꽤 컸다. 지금에 와서 보니 커도 너무 크다. 60 리터라니. 안을 다 채우고 어깨에 메면 높이가 내 키보다 주먹 하나는 높다. 어휴, 이 나이에 이걸 어떻게 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곁에서 마누라가 자기가 들어가도 되겠다고 한다. "여보, 내가 들어갈테니 날 메고 여행하면 안 되우?" 한다. 이 여편네가! 눈을 부라렸더니 흥, 하고 돌아선다. 말이나 딴에 '그러지 뭐'를 기대했을텐데……. 무시하고 배낭으로 눈길을 돌려 뭘로 채우지 하고 고민한다. 분명 채울 것도 있고, 채워야 할 텐데. 메모한 준비물을 차례로 훑었다. 여벌 옷 2개, 반바지, 속옷, 양말, 샌들, 긴 옷, 세면도구, 비상약품, 선크림, 선글라스, 노트, 필기구, 책, 아, 카메라…….
▲ 배낭 이번 여행에 메고 다녔던 배낭 ⓒ 황인규
어느새 부풀어 오른 배낭을 메고 일어서 보았다. 나도 모르게 끙 하는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25킬로그램은 족히 넘는 것 같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짐을 덜어내기로 했다. 배낭 무게와 여행 경험은 반비례 한다더니 맞는 말인 모양이다. '뭘로 채우지?' 하던 것이 '벌써 다 찼어?'로 바뀌었다. 처음엔 넓다고 생각했던 집도 어느새 잡다한 살림으로 채워져 좁다고 느끼는 것처럼 배낭 꾸리는 데도 욕심의 관성은 예외없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욕심은 마찬가지로되 처리하는 방식은 달랐다. 집은 이동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피의 제한은 있을지언정 무게에 대한 제약은 없다. 그러나 배낭은 나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피와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것은 이동하는 자의 숙명이다. 그리고 정주민과 유목민의 차이다. 정주민은 필요 이상을 쌓아놓고 지낼 수 있지만 유목민은 필요한 것만 지닐 수밖에 없다. 정주민은 부자이지만 유목민은 가난하다. 정주민은 지켜야 할 재산 때문에 이동할 수 없지만 유목민은 지켜야 할 것이 없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여행은 일시적이나마 유목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많은 것을 지니고는 멀리 갈 수 없다. 부자로서 편히 지내고만 싶으면 여행을 할 일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스스로 가난한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다. 가난의 자유와 가난의 행복을 맛보러 떠나는 것이 배낭여행이다. 지킬 것이 없기에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가 있다. 채워져 있으면 경계부터 하지만 비워져 있으면 도움부터 생각한다.
배낭을 풀고 몇 개의 짐을 꺼냈다. 낯선 여행에서 혹시나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모든 짐을 메고 갈 수는 없다. 불안을 소유로서 해결할 순 없는 것이다. 여행은 불편할 수밖에 없고 또 불편해야 한다. 기중 무게가 나가는 세 권의 책 중 여행안내서 한 권만 가져가기로 했다. 여행지에서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 활자 속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샌들도 빼고 옷도 한 벌씩 꺼냈다. 그리고 다시 메어 보았다.
무게는 아까보다 훨씬 줄었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열대지방인데 갑자기 스콜이라도 쏟아지면 샌들은 필수일 것 아닌가. 여행지에서 보고 듣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거기서도 차를 기다린다든가, 휴식을 취한다든가 하면서 분명 남는 시간은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아깝게 무료하게 보낼 순 없지 않은가. 샌들과 책 한 권을 다시 넣었다. 그래도 비상시에 대비한 긴 옷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배낭을 다시 꾸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풀었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결국 배낭의 80% 정도를 채우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마음의 밑바닥에서 어떤 알 수 없는 것이 스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엔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자극. 그것은 감정도 아니고 기억도 아니다. 나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느낌일 뿐이다. 좀 더 시간이 흐르자 나는 이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시원 속에 감추어진 본능,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떠올라 평온한 일상을 마구 휘저어 놓은 갈망, 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찾아와 날 대책없는 낭만주의자로 만든 그 유혹, 그것은 바로 떠남에의 충동였고 방랑에의 동경였다. 그리고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유목인의 모습이었다. 결국 짐을 덜어내는 것은 마음을 덜어내는 것이고, 마음을 덜어내는 것은 내 안의 유목인을 깨우는 곡괭이질이었던 것이다.
▲ 배낭을 멘 여행객 ⓒ 출처 미상
덧붙이는 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연재가 늦었습니다. 성실히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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