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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고는 냄새에 설은 문턱을 넘고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 예진이네 설맞이 풍경

등록|2008.02.05 11:34 수정|2008.02.05 11:34
조청이 완성되기 까지

ⓒ 장선애, 박은주

“이게 뭐 신문에 날 일 이라고. 어휴 참, 엿 곤다는 얘기는 왜 해가지고”

하루종일 수소문 해서 겨우 찾아낸 엿고는 집, 최춘자( 67·충남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 할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바뀌어 이제 설을 쇠려고 엿을 고는 따위의 수고를 하는 집 찾기가 어려워진 걸.

이것 저것 물어대는 기자의 질문에 조용히 앉아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함께 사는 아들 김영남씨가 나선다.

“우리 어렸을 때는 간식거리를 죄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셨어요. 엿을 고아 강정을 만들고, 찐빵도 호떡도…. 그야말로 웰빙 음식들이죠. 동네에서 우리 어머니가 만드신게 제일 맛있었다니까요”

쑥스러워 하시던 할머니는 아들의 추임새에 옛 추억이 떠오르는 듯 하나 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한 10년 됐나. 신식집 지으면서 아궁이가 없어져 엿을 고지 않게 된게. 전엔 설 쇠려면 온 동네가 장작불 때서 엿  고는게 일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아무도 안하게 됐어. 옛날에 이집 저집 몰려다니며 할 때는 참 재밌었는디”

할머니가 10년만에 다시 엿을 고게 된 것은 순전히 손녀 예진(수덕초5)이의 성화 때문이
다.

▲ “어뗘, 맛이? 괜찮여?” 달콤한 조청을 손가락으로 찍어먹는 성우와 할머니의 표정은 설을 맞는 분위기 딱 그것이다. ⓒ 장선애


“우리 손녀딸이 자꾸 묻는 거야. ‘옛날에는 엿을 집에서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하는 거냐, 강정은 또 어떻게 만드는 거냐, 한 번 만들어보자’ 그러니 어째. 해야지. 근데 손녀딸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다들 너무 좋아하는거야. 그래서 올해도 또 하고 있는거지 뭐”

세상에, 손녀 교육 때문에 다시 시작한 일이란다. 요즘 할머니답잖게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긴 모습이 예사롭지 않더니 신사임당이 따로 없다.

편하디 편한 세상, 성가신 일에 힘들지는 않을까.

“뭐 힘들어. 재밌지. 우리 손주들 신기해하며 할미 돕는다고 따라 다니는 것도 이쁘고, 명절 때 자식들 오면 실컷 멕이고, 한그릇씩 싸주는 것도 좋고”

“어머니가 젊어지신 것 같은 기분도 드시나봐요. 애들 보여주신다고 맷돌 돌려 두부도 함께 만드시고, 강정도 만드시면서 옛날 얘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구요”

며느리 박은주씨가 거든다.

우리 전통 음식이란게 다 그렇지만 엿을 고는 작업 역시 정성이 반이다.  

6월에 수확한 보리를 팔아다가 10월 쯤이면 물 줘가며 며칠 엿기름을 기른다. 적당히 싹이 나면 또 햇볕에 며칠 바짝 말린 뒤, 가루 내서 잘 보관해 뒀다가 엿을 골 때 쓰게 된다. 그 뿐인가. 나무도 미리 해 둬야 하고, 이틀은 꼼짝없이 불 앞에 지켜앉아 넘치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해야 한다.

사먹는 엿과 달리 담백하고 고소한  단맛은 그런 정성에서 나온 것이다.

▲ 아궁이가 없어 드럼통으로 만든 간이 아궁이와 거기에 올라 앉은 무쇠솥 대용 양은솥. 할머니는 “요게 요새 양은솥 같지 않고 아주 두꺼워서 은근히 달이는데는 최고”라며 “20년 전에 구입한 거라 요즘은 살 수도 없다”고 자랑하신다. ⓒ 장선애


“꽈리같은 채알이 일어나게 뭉근히 끓여야 해. 불이 너무 괄하면 넘치는 것도 문제지만 엿이 쓴맛이 나거든. 엿발도 잘 안서고”

불은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알듯 모를듯한 얘기를 한다.

엿이 돼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다 담아야 하는데 언제쯤 다시 와야 하느냐고 물으니 “글쎄, 고아봐야 알지. 예산서 예까지 또 어떻게 와. 우리 며느리한테 사진찍어 보내라고 하면 되지” 하고는 걱정이 되는지 한마디 덧붙인다.

“오는게 반갑지 않아 그러는 건 절대 아녀. 너무 멀어서 고생스러울까봐 그러지”

그렇게 해서 며느리 박은주씨가 신문제작에 참여했다. 분위기 좋고 잘 찍은 사진들은 모두 박씨의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무한정보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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