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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죽일놈의 '돈'

모든 중요한 가치 사라지고, '돈'만 남는 세상 오지는 않을까

등록|2008.02.05 19:27 수정|2008.02.05 19:27
친구와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문득 고등학교 동창인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너 민수(가명)알지? 한 1년 전이었나,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왔었어. 졸업한 이후로 가끔 이메일이나 주고받는 사이였는데 불쑥 전화가 왔더라고."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렇게 말을 시작한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급한 일이 있는 사람처럼 자꾸만 서둘러서 만나자고 하길래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봤지. 그냥 얼굴이나 보자면서도, 와서 꼭 하룻밤 자고 가라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어."

서울 시내의 한 대형 쇼핑몰 앞에서 만난 그들은 저녁을 먹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술 한잔하려고 나설 무렵, 민수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 사무실에 들르자며 말을 꺼냈다.

"사실 내가 요새 다니는 회사가 있거든. 말하자면 다단계 사업 비슷한 건데, 이상한 건 아니고…. 가보면 알 거야. 바로 저기가 사무실인데, 오늘 너 데려오겠다고 말도 다 해놨어. 가서 술 마시고 이야기도 하면서 놀자."

민수의 말은 순박한 대학생인 내 친구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그냥 오늘은 둘이 술 마시고 다음에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그 상황을 넘기려 했지만, 민수는 친구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잠깐 가서 이야기만 듣고 가라면서.

밀려오는 당황스러움과 실망감에,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맺었다. 결국 민수는 친구의 팔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래. 정말 미안하다. 사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어찌하다 보니 몇 백만원 정도 빚을 졌거든. 그래서 요새 빚 갚으려고 이 일 하고 있어. 다음에 시간 날 때 만나서 술이나 한잔하자."

어떤 친구는 민수에게 욕을 퍼붓고 돌아가기도 했고, 정말 한 대 때릴 것처럼 화를 낸 이도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달라며,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또,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를 끝마친 나와 친구에게 남은 것은 한숨뿐이었다. 대체 왜 우리가 돈 때문에 친구를 잃어야 하는가. 돈 때문에 폐륜을 저지르고, 불법을 행함에도 거리낌이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 사회는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돈'을 좇는 정책들

기업인천하지대본서울 시내의 한 은행옆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문구를 '기업인천하지대본(企業人天下之大本)'으로 바꾸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기업인 정신 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묵살되는 현 세태를 보여주는듯 하다. ⓒ 노영선

이처럼 '황금만능주의'가 만들어 낸 부작용을 생각하고 보니, 차기 정부의 '시장에 맡기겠다'식의 정책이 더욱 걱정된다.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장의 논리는 이러한 부작용을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들려오는 정책들은 국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교육부터 언론과 방송을 비롯한 사회의 모든 공적 영역들에도 시장의 논리를 거론한다.
경쟁을 통해 이윤창출을 극대화함으로써 파이의 크기를 키우겠다는 주장은 진부하기 그지없다. 커진 만큼의 파이가 없는 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커진 빵조각을 놓고 더욱 치열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부추길 뿐이다.

국가는, 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원회가 만들어 내는 정책들의 중심에는 오직 '돈' 밖에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러다 사회의 모든 중요한 가치는 사라지고, '돈'만 남는 세상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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