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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가시가 너무 많아 그대 쉴 자리가 없다

[나무와 문학] '가시나무'에 대하여

등록|2008.02.10 15:11 수정|2008.02.10 15:11
동네 한가운데 가시나무와 어울려진 숲이 있다. 종종 가시나무에 새가 와서 운다. 기웃기웃대지만, 숲이 울창해서, 가시나무에만 찾아와서 운다는 가시나무새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가시가 많은 나무를 여느 나무 만큼은 좋아하지 않을 터인데, <가시나무새> <가시나무> <가시고기><호랑가시나무의 기억> 등 '가시'에 은유한 인간의 사랑과 아픔을 형상화한 문학 작품들은 대중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가시 없는 영혼이 없다. 해서 인생을 가시밭길에 비유할 것이다.

가시나무 울타리내안에 너무 가시나무가 많아서 그대와서 쉴 곳이 없다. ⓒ 송유미


'가시'의 고통은 벗어날 길 없는, 존재에의 감옥

박지원 선생은 <열하일기>에서 가시나무에 대해 "내가 일찌기 풍윤현을 지날 때에 그 동북편에는 진왕산이 있는데, 다만 가시덤불이 떨기로 나서 있었을 뿐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당태종이 진왕으로 있을 때, 이 산에 올라 가시나무를 보고 놀라서 말하기를, "이 가시나무는 우리 동리 훈장이 내게 글 귀절 떼는 법을 가르칠 때 쓰던 회초리다"하고 는 말에서 내려 절을 하였는데, 그때 가시나무들은 모두 머리를 드리우고 엎드리는 듯 하였다 하는데, 지금도 그 시늉을 내는 듯 싶다."이렇게 교훈적인 회초리에 빗대어 적고 있다.

가시가 많은 나무들은 대개 한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유독 가시가 많은 엄나무(일명 음나무)를 '며느리 채찍'이라 이른다. 이 엄나무는 스님의 '바리때'를 만든다고 한다. 악귀를 쫓기 위해 소의 턱뼈와 함께 엄나무 가시를 문 위에 묶어 걸어두는 풍습도 있다. 만신들이 이 가시많은 엄나무 가지를 쥐고 신내림을 받기도 하는, 가시나무의 꽃말은 '거절'이라고 한다.

감옥의 유리(羑里)활짝 꽃 피었나요
음나무 아래 푸른 칼 베고 누워 나
무서운 금빛 물고기 기다립니다.
(중략)
거짓말 같은 내 어머니 이제
음나무 아래 내려와 이 푸른 칼로 내 등 내려 찍어요.
유리(羑里)가 유리처럼 빛나고 있어요.
'노태맹'의 <음나무 아래 푸른 칼을>

가시 많은 음나무의 심상은 유리(羑里). 이 유리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빌리면,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 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 설명되고 있다. 그 유리는 곧 '음나무 아래 푸른 칼을' 베고 누운 전생.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간의 업은 가시 숲 같은  유리의 감옥에서 금빛 물고기를 기다린다. 그 금빛 물고기의 환생의 꿈은, 시인의 시적 희망이자, 벗어날 길 없는 현실에의 은유이기도 하다.

가시울타리가 사라진 삶은종종 고향집 가시울타리가 그립다 ⓒ 송유미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조성모'


너무나 많은 대중에게 인기를 차지했던 <가시나무>를 부른 조성모 가수도 시집 한권 낸 시인이고, <가시나무>의 가사를 쓴 사람도 하덕규 시인이다. 시인이 지은 가사라서 그런지 찬송가 이상의 인간의 내면의 승화를 노래하고 있다. 많은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가시나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정말 내 안에 가시가 너무 무성해서 아무도 들어와 쉴 자리가 없는 꽉 찬 내면을 들여다 보게 된다.

미국의 베스트 셀러 소설로, TV 드라마로도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콜린 맥콜로우의 <가시나무 새> 작품은 신(神)의 가시나무 면류관을 쓴, 사제와의 이룰 수 없는 애틋한 소녀의 사랑을 그렸기에 더욱 많은 감동을 준 작품이다.

그 옛날 가시나무 울타리를 쳐진 집은 죄인이 사는 집을 의미했다고 한다. 가시나무 울타리는 요즘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들다.우리 동네의 가시나무 울타리 숲은 낡은 가옥과 층수 낮은 건물이 많은 이편과 20층이 넘는 울울한 아파트 숲의 경계선 구실을 해 준다. 마치 엄명한 삶의 울타리 안과 밖처럼.

가시나무에는 가시가 난다."원인이 있으면 으례 결과가 있다,라는 우리의 속담" ⓒ 송유미


지름길을 두고 가시밭길로 가는 것이 삶의 완성에 이르는 길

가시나무새는 죽기 직전에 일생에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
그 새는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단 한번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
가슴을 찔러 붉은 피를 흘리며 이 세상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다
어떤 새 소리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죽어간다.
이것이 먼 옛날부터 켈트 속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진실로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수한 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콜린 맥콜로우' <가시나무새> 중

세게 망치로 얻어 맞은 듯, 하얀 못 같은 <찔레꽃>의 노래를 잘 부르던, 부산 지방의 고(故) 정영태 시인의 시에는 가시 같은 못 박힌 인간의 영혼이 느껴진다.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다가 가야 할 시인의 생애는 너무 짧았고, 단 한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가시나무새처럼 아름다운 작품들을 남겨 두고 갔으나, 아직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 무명에 가깝다.

지평선 위에 서 있는 못들이 지워진다.
다 숨지 못할 못의 머리칼도 지워진다.
숨지 마라.
또 망치로 치는 소리,
(중략)
모두 지워질 것이다.
점점 강해지는 망치 소리,
못의 상처를 입은 목덜미가
조금씩 더 빛나고 있다.
'정영태'-<설경 2> 중

뽀쪽뽀족 펜촉처럼 나무 수피를 뚫고 나온, 가시 무성한 가시나무 울타리 숲을 지날 때마다, 가시를 노래한 '혼다 히사시' 시인의 시 한편도 생각나고, 시인이란 존재는  "가시나무새처럼 생애 단 한번 울더라도, 세상 한 가운데 나와서 울어야 한다."는 송수권 시인의 말씀도 생각난다.

예술은 영원하고 삶은 짧지만, 사는 동안, 가까운 지름길을 두고 먼 먼 가시밭길로 가는 길이, 삶의 완성에 이르는 길일지도...

탱자나무 밑에서 문득 생각한다.
가시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교묘히 숨기는 것을
모르는 척하며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를 기르고 있는 것을
스쳐 지나가면서
사람이 사람과 나누는 계절의 인사
(중략)
만약 어제 내가 번개로부터 지명되는 일이 없었더라면
죽음의 가시가 박히는 일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토록이나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보잘 것 없는 나의 존재조차
누군가에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였으리라.
'혼다 히사시'-<입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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