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녹색평론>과 '대운하' 막기
[헌책방 나들이 143] 서울 홍익대 앞 <온고당>
▲ 책방 앞서울 홍대 앞 <온고당>은 1층과 지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는 거의 지하에서 책을 둘러봅니다. ⓒ 최종규
(1) 서울, 홍대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전철을 탈 때부터 ‘공기가 참 나쁘다’고 느낍니다. 시끄럽기도 합니다. 마음을 모두어 책을 읽기는 해도 힘듭니다.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면 귀가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버스를 탈 때에도 그렇습니다. 자전거로 움직일 때에도 자동차들 빵빵 소리며 달리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요.
한 자리에 오롯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삶터입니다. 집 한 채가 쉰 해를 고이 이어나가기 어렵습니다. 문화재가 된 집도 그러한 터이니, 문화재가 아닌 달동네 골목집들은 하루빨리 쓸어내고 ‘돈값 톡톡한 높은 아파트’로 바뀌어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영화 〈못 말리는 결혼〉에 나오는 땅장수 아주머니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빨리빨리 새것으로 갈아치워’ 껍데기만 번들번들하면 ‘좋은’ 것으로 느낍니다.
세상에 나오는 새책들을 찬찬히 살피면, 예전에 나왔던 책을 다시 펴내는 일이 대단히 많을 뿐 아니라, 책 하나가 나오자면, 2000년 1월 1일에 나온 책이라 해도 1999년 12월까지 원고를 마무르고 묶게 되니 묵은 지식을 담을밖에 없습니다. 2010년 1월 1일에 펴낼 책이라 해도 ‘얼마나 요즈음 이야기를 담아내느냐’가 아닌 ‘앞으로 얼마나 오래오래 사람들한테 읽힐 수 있느냐’를 따집니다. 뭐, 금방금방 많이 팔고 새책방 책시렁에서 빼내는 장삿속 채우는 책이 많기도 합니다만, 책 속성은 ‘앞으로 언제까지 읽힐 속살을 담느냐’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책이고 책 문화입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책하고 멀리 떨어진 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책 문화는 지루하거나 고여 있다거나 어렵다고 하면서 옆으로 밀쳐놓는 우리들입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책 읽을 틈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은 잘도 보지요. 영화도 잘도 보지요. 술 마실 시간에 엄청 시간을 쓰지요. 노래방도 잘만 가지요. 우리 놀이 문화는 어느 하나만이 아닌데, 또 우리 몸과 마음을 알뜰히 보듬고 어우르는 삶이란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좋을 대목이 없는데, 눈이 돌고 머리가 돌고 몸뚱이가 돕니다.
▲ 새로 꾸민 책시렁<온고당>은 책시렁을 새것으로 모두 갈면서, 바닥에 쌓인 책을 모두 치워서 둘러보기 좋도록 많이 손질을 했습니다. ⓒ 최종규
(저도 한몫 끼어서) 사람들이 허벌나게 북적이는 신도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립니다. 만화책 전문서점 〈한양문고〉에 들른 뒤 헌책방 〈온고당〉으로 갑니다. 미술학원 앞치마가 북적대는 사람숲을 뚫고 헌책방으로 숨어듭니다.
(2) 묵은 책
책방에 들어오니 조용합니다. 서울 아닌 데에 있는 느낌입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시렁을 둘러봅니다. 오래도록 저 같은 책손을 기다리고 있던 책이 있고, 이제 막 꽂힌 책이 있습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칩니다. 인천만 해도 쉬 만날 수 없는 책들이 가득가득 눈에 들어옵니다. 아무렴, 뭘 하든 서울로 가라는 옛말대로, 헌책방 헌책도 서울이 가장 많고 여러 갈래로 잘 나뉘어 있습니다.
▲ 잡지 녹색평론녹색평론 예전 판. 5호 겉그림입니다. 세월이 묵어도 두고두고 간직하며 돌아볼 만한 잡지입니다. ⓒ 녹색평론사
.. 불행하게도 GNP는 오직 활동의 측정일 뿐이다. 그것은 양적인 것이지 질적인 것은 아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그것을 복구하는데 비용이 드니까 즉각적으로 GNP의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 붕괴로 인하여 범죄가 만연하면, 감옥을 건설하고 법률집행기관을 확장하는 데 비용이 들고, 따라서 GNP가 올라간다. 한 농부가 자기 가족을 위하여 다양한 먹을거리를 기르면, 그가 그것을 팔지 않는 한 그가 생산한 것은 GNP에 포함되지 않는다 .. (제임스 골드스미스 / 11호 130쪽)
지난날 읽은 글도 있고, 미처 못 읽은 글도 있습니다. 열대여섯 해쯤 묵은 잡지에 실린 이 글은 잡지가 처음 나올 때에도 묵은 글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묵은 글은 오늘날 돌아볼 때 얼마나 ‘삭았’을는지. 이제는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값어치없는 글일는지.
.. 애미쉬들은 흔히 ‘영국인들(전형적인 미국 백인들)의 낭비벽’에 놀라움과 근심을 표현한다. 그들에게는 특히 ‘완전히 훌륭한 건물들’을 부수어버리는 관행이 충격적이며, 그래서 종종 그들은 해체하기로 예정된 건물들을 건져서 자기들이 재활용가능한 건축재료들을 다시 쓰거나 판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 (토마스 포스터 / 9호 89쪽)
묵은 값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막말로 ‘나이든 사람은 일찍 죽어’야 합니다. 더 젊은 사람만, 더 어린 사람만 살아남아야 합니다.
잘못된 전통이라면 바로세워야 합니다. 잘못되지 않은 전통, 아름답거나 훌륭한 전통이라면 고이고이 추스르면서 세월때를 묻으며 더욱 빛나는 값과 뜻을 돌아볼 수 있어야 좋습니다.
▲ 안쪽 모습넉넉하면서 깔끔한, <온고당> 아래층 안쪽 모습. 오래도록 <온고당>을 찾아온 책손한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헌책방이 새로워지는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 최종규
.. 그렇지만 자가용을 타는 사람은 말할 것이다. 나는 내 차를 사랑합니다. 나는 차를 이용하여 몸이 성치 않은 장모님을 태워드리고, 딸아이들을 발레교습소에 데려다주고, 슈퍼마케트에서 집까지 커다란 쇼핑빽 다섯 개를 운반해 올 수 있습니다. 혼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도로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지요 … 히틀러도 포드도,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어떤 자동차 예찬론자들도, 정말 모든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 (볼프강 주커만 / 6권 80, 83쪽)
그러나저러나, 잡지 《녹색평론》에 실린 글은 예나 이제나 쉽지 않습니다. 많이 딱딱합니다. 좀더 살뜰히, 한결 살갑게, 가만가만 알맞춤하게, 지식이 적거나 학교 덜 다닌 사람도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도록 눈높이를 맞춰 준다면 더 좋을 텐데.
누구도 쉽게 살고픈 마음이 아닌 세상이기 때문일까요. 손에 집히는 어느 책에도 쉬운 말이, 부드러운 말씨가,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 않습니다. 느껴지지 않습니다. 책 하나 집어들어 읽다가 확 집어던질 뻔합니다. 좋은 줄거리를 담았으니 집어던지지는 못합니다.
《샘터 특별편집 : 사진으로 보는 제3의 물결》(샘터,1982)이라는 손바닥책이 보입니다. 사진책 《요한 바오로2세》(성요셉출판사,1984)가 보입니다. ‘すばらしい世界’ 가운데 7번으로 나온 《騎士道の故鄕イキリス》(國際情報社,1978)를 봅니다.
일본 어느 출판사에서 펴낸 ‘すばらしい世界’는, 일본사람들한테 나라밖 문화와 삶터와 사람 삶을 찬찬히 보여줍니다. 이 책 하나를 보고 있는 동안, 몸뚱이는 그곳에 가 있는 듯 이끌어 줍니다.
문득, 어느 한 나라를 ‘홍보’하는 사진이나 ‘소개’하는 사진이나 ‘여행’ 정보를 다룬 사진이나 ‘문화’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시끌시끌 와글와글 도심지 사진은 거의 없거나 한두 장 살짝 곁들이기 마련이 아닌가 싶습니다. 거의 모두 ‘그 나라에서 오랜 세월 고이 이어온 보통사람들 삶과 삶터’를 담아서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홍보든 소개든 여행이든 문화이든 하면서 담아내어 보여주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한국사람 거의 모두 도시에 살고 있는데, 한국을 이야기하는 책에는 ‘도시사람 삶’이나 ‘도심지 모습’이 제대로 담기지 않습니다. 한국을 보여주는 화보에 ‘아파트 숲’ 사진이 담기는 일이란 없습니다. 일산이나 분당이나 용인이나 수지 같은 아파트마을을 보여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짜증나도록 막히는 찻길을 보여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침저녁 출퇴근 전철길이 얼마나 지옥철인가를 알려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 책들이 많은 책 가운데 우리한테 반가운 책 하나 찾아낼 수 있다면, 또는 못 찾아낸다면... ⓒ 최종규
(3) 호미로도 안 막고 가래로도 안 막고
가쁜 숨을 돌리며 두 시간 가까이 헌책방에서 쉬었습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홍대 둘레에서 배를 채우기로 합니다. 닭집 한 곳으로 갑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습니다. 잠깐 기다린 뒤 자리를 얻습니다. 우리 나라 곳곳에 닭집이 참 많은데, 한국사람한테 하루 동안 잡아먹히는 닭은 몇 마리쯤 될까요. 우리들한테 잡아먹히는 닭은 어느 시골 닭공장에서 어떻게 키워지고 있을까요. 우리들은 달걀도 참으로 많이 먹어치우고 있는데, 하루 동안 들어가는 달걀은 얼마쯤 될까요.
애써 바깥 나들이를 나와 바깥밥을 사먹을 때마저도 골치아프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맛있게 먹으면 몸에도 좋고 마음에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냇물과 강물과 바닷물이 깨끗해지도록 우리 스스로 힘쓰지 않고, 집이나 가게나 일터마다 정수기 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형편입니다. 흙과 풀과 나무와 바람이 맑아지도록 우리들 손수 애쓰지 않고, 돈 몇 푼 더 얹고 유기농 곡식을 사먹으면 그만이라고 받아들이는 형편입니다.
세상흐름을 거스를 수 없겠지요.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우리 집에도 정수기를 달아야 하고, 우리들도 전철보다는 자가용을 굴려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은 물질문명을 누리면 될 노릇이겠지요.
잡지 《녹색평론》 정기구독 독자가 칠천을 넘기지만 일만이 안 된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생태가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한 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우리 나라이지만, 정작 우리 스스로 생태가 무엇이고 환경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움직임이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돈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나, 돈 많이 들어가는 정부정책만 손꼽아 기다리는 우리들입니다. ‘대운하’도 우리 삶터를 무너뜨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 삶을 바꾸지 않으면’ 대운하 하나 막는다고 달라질 구석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녹색평론 정기구독자’가 안 되는 가운데 ‘대운하 하나 딸랑(?) 막는들’ 나날이 더 커져만 가는 우리 삶터 무너짐을 어떻게 돌이킬는지. 아유, 닭집 새 손님이 끊이지 않아, 더 빌붙지 못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 책 대접책을 대접하듯 사람을 대접하고, 사람을 대접하듯 책을 대접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대로 책을 찾아서 읽고, 우리가 책을 읽는 모습대로 삶을 꾸려 나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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