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서울에서 맞이하는 730번째 노을 빛은 쓸쓸했다

[포토에세이] 내가 선 자리를 묻다

등록|2008.02.10 17:53 수정|2008.02.10 17:53

도시의 해넘이개나리가 피어나면 조금은 덜 쓸쓸할까? ⓒ 김민수

체감온도가 있다. 실재 온도보다 바람이나 기타의 영향으로 인해 몸이 느끼는 실제온도가 체감온도다.  '체감'이란 '몸이 느끼는 것'을 말한다. 몸이 느끼는 것은 실재와 다를 수 있기에 느낀다는 것 자체가 객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체감할 수 없는 객관성이란 또 무엇일까? 결국은 같은 일 혹은 사건도 어떻게 체감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슬픈 일이 누군가에는 기쁜 일로 다가올 수 있는 것도 그런 의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국도로 나오면 같은 속도로 운전해도 빠른 느낌이 든다. 주변의 사물들이 지나가는 느낌 때문에 우리 몸이 그렇게 자각하는 것이리라.오늘은 서울에 둥지를 다시 튼 지 2년째, 그러니까 날수로 따지면 730일 되는 날이다. 날수로 따지면 많은 것 같다가도 햇수로 치면 이제 겨우 2년인데 체감으로 느껴지는 세월은 거의 10년은 된 듯하다.  

도시의 해넘이해가 지면 인공의 빛을 밝힐 가로등 ⓒ 김민수

 거의 매일 바라보던 하늘을 잊고 살았다. 간혹 바라보긴 했지만 빌딩숲 사이로 지는 해가 제아무리 붉어도 그저 심드렁하게 다가왔다. 오늘 밀린 설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스모그 때문에 눈부심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눈부시다. 도시의 생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지만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늘 지금 갖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것이 사람이니까. 그래도 하늘은 좀 더 자주 보면서 살 것을 그랬다. 하늘보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동안 내 마음도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울에서 맞이하는 730번째 날의 노을빛은 쓸쓸했다. 어느 곳에서 바라보는 저 해는 밝아오는 여명일 것이다. 서 있는 자리,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느낌에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금 돌아본다. 나는 제대로 서 있을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그렇기를 소망한다. 

도시의 해넘이저 멀리 아파트 난방을 위한 굴뚝이 높이 솟아있다. ⓒ 김민수

 내가 선 자리에서 길을 묻는 것. 때론 숲에서도 길을 묻고, 길에서도 길을 묻는다. 그래, 빌딩숲이지만 아스팔트 4차선 도로지만 그곳도 숲이고 길이니 그곳에서 길을 묻는다. 아직은 도심에서 길을 묻는 방법에 대해 익숙하지 못하지만 어느 날인가는 그 방법을 체득할 날이 있겠지.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쩐지 끊임없이 기생하는 삶처럼 느껴진다. 흙 한번 만지지 않았는데도 봄나물을 먹고, 갖은 채소를 먹는다. 바다의 짠물 한 번 만지지 않았는데도 싱싱한 해산물을 상 위에 올린다. 상에 올라온 음식 중에서 절반 이상은 내 손이 전혀 닿지 않은 것들이다. 그만큼 나는 사실 기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생동식물에 대해 알 수 없는 배척감을 가지고 살아왔던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기생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돌아본다. 도심에 서서 나를 바라본 탓에 내가 철저한 기생의 삶을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제 곧 봄, 그리고 새해. 올해는 조금이라도 기생하던 삶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