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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는 뭘 믿었단 말이냐'

숭례문 전소의 원인은 무엇이었나

등록|2008.02.11 20:05 수정|2008.02.11 20:05
숭례문이 간밤에 불에 탔다. 5시간에 걸친 화재로 건물 목재부가 완전히 소실되고 지붕은 내려앉았다. 소방당국에서는 비상시스템을 총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밝혔다.

유홍준은 예전에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믿기는 뭘 믿었단 말이냐"는 소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석가탑 복원수리 작업에서 썩은 나무 전봇대를 지렛대로 사용했다가 부러졌던 일을 적었다. 그는 석가탑 일부가 깨진 것에 대해 통탄했다. 그리고 그가 청장으로 있던 오늘(11일) 국보1호 숭례문이 완전 전소됐다.

뉴스에서는 최첨단무인경비시스템에 의해 발화 3분 전 방화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적외선카메라에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움직임만 확인되었을 뿐 그것이 사람인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요컨대 발화 3분 전 '뭔가가 있었다'가 이 최첨단 시스템이 알아낸 모든 것이고, 경비를 담당한 민간업체는 CCTV조차 설치하지 않았다.

불은 스스로 꺼지지 않았다. 원래 불은 스스로 꺼지지 않는다. 최첨단경비시스템도 불을 스스로 끄지는 못했다.

뉴스는 밤 8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숭례문은 무인경비시스템에만 의존했다고 밝혔다. 또 경비원 한 사람만 있었어도 초기에 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있었으면 소화기로 끌 불을 최첨단무인경비시스템이 내버려 둔 것이다.

말 그대로 조선 600년을 상징하는 이 건축물은 '무인경비시스템'에 의해 '무인지경'에 방치되었다.

자, 이제 사실을 말하자. 국보1호 숭례문은 저녁 8시부터 아침까지 경비원 한 명을 두지 않았다가 통째로 불에 타 사라졌다. 정확히는 문화재청이 경비원 한 명의 임금을 아끼려다가 숭례문을 태웠다.

이전에 경비직의 최저임금 적용을 주장하는 한 글은, 무인경비시스템은 눈이 오는 날 출입구의 눈을 새벽녘에 쓸어내 주지 않고, 비 오는 날 이중주차된 차들을 함께 밀어주지 않으며, 주차장 사이로 뛰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보살펴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더 추가할 말이 생겼다. 무인경비시스템은 말 그대로 무인지경이라, 스스로 꺼지지 않는 불을 스스로 끄지 못한다. 사람이면 멀쩡히 끌 불을 말이다.

뉴스에서는 '진화과정의 잘못이냐 아니냐, 3분 전 적외선 감지장치의 움직임은 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인수위는 국가적 망신이며 노무현 정부의 책임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요점은 분명하다. 숭례문은 '쓸데없이 비싼 사람'이 아닌 '효율적이고 21세기적인 최첨단무인경비시스템'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와 국민의 잘못으로 탔다. 기계적 시스템이 최고이며 꼭 필요한 인력조차도 채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바로 방화범이다.

문화재청에서, 서울시에서, 서울중구청에서 두어 명의 정규직 경비원만 두었더라면 숭례문은 그렇게 허탈하게 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수도 서울 최고의 목조 건축 문화재의 경비를 외주로 주었다. 이런 것을 요즘의 세련된 말로 '아웃소싱'한다고 한다. 그 아웃소싱이 방화범이다.

신자유주의가 숭례문을 태웠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겠으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과 그 사고방식의 나라가 자기 조상들의 숭례문을 홀라당 태워 먹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 이외의 다른 요인은 화재나 방화의 원인일 수는 있으나 숭례문 전소의 원인은 아니다.

소방방재청의 잘못을 따지지 말라.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굳건히 버텼던 남대문, 숭례문이었다. 수백 년동안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악한 화재 진화방식에서도 살아남았던 남대문이다. 그 남대문을 홀라당 태워 먹은 것은 돈 몇 푼 아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그 잘난 후손들이다.

'믿기는 뭘 믿었단 말이냐.' 우리 선조들이 지하에서 할 말이다.

<덧붙여...>

이제 흔적만 남은 남대문을 복원하는데 2~3년의 시간과 200억원의 돈이 들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이 위대한 건축물에 단돈 9508만원의 보험금을 들어 두었다. 서울시박물관이 외국화가의 그림 한 점을 전시하기 위해 들어놓는 보험금의 1/100쯤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200억원을 준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서울시가 문화적 가치를 제외한 순수 건축비용 200억원짜리 보험에만 들어놓았더라도, 경비소홀로 인한 보험금을 변상하기 어려운 경비업체 KT텔레캅은 맡은 책임을 철저히 했을 것이다. KT 텔레캅을 욕하지 말자. 그들은 9508만원짜리 경비물에 대한 만큼의 경비를 했다.

덧붙이자면, 이제 이 흔적만 남고 사실 별 문화적 가치도 없어진 남대문을 치워버리자는 주장이 나와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서울의 혼잡한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문화적 가치도 없어져버린 남대문을 복원할 것이 아니라, '경제'를 위해서 이 보기 싫은 화재의 흔적을 얼른 치워버려야 한다.

아니면 청계천을 그렇게 했듯이 고증은 집어치우고 잡목과 페인트로 대충 발라서 두어 달 안에 보기 좋게 다시 세워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이런 것이 오세훈이 말하는 서울의 '창의시정'과도 맞아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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