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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팩션18]보수 처녀와 진보 청년의 슬픈 이별

김갑수 대하소설 <제국과 인간> 제1부 상해의 영혼들

등록|2008.02.12 08:16 수정|2008.02.12 08:17
필호는 맥을 놓아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상해에는 형님도 계십니다.”

도애는 한사코 말이 없었다. 필호의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도애는 필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음이 틀림없었다.

조금 있다가 입을 연 도애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자기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가 어떤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는 집요한 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기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필호는 도애의 우유부단함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는 도애에게서 처음으로 이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투가 조금 건조해졌다.

“언니도 있는데 난데없이 도애씨에게 혼인을 하라고 한다고요?”

도애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대관절 그 남자가 누구랍니까?”
“다른 것은 잘 몰라요. 숭교방 갑부 아들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남자와 혼인을 하라고 하다… 그러니 오히려 더 잘 된 일 아닙니까?”
“저는 필호씨가 장차 독립운동을 하신다기에 이곳에서 야학이나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도애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필호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한 달이라고 풀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필호는 남촌에 있는 집까지 도애를 바래다주었다. 도애는 2층 맨 끝에 있는 창문을 가리키며 자기 방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돌아보며 필호에게 말했다.

“필호씨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없는 일인가요?

그녀는 아까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것은 국내에서 열심히 야학이나 계몽운동을 하자는 말이었다.

필호는 확신하고 있었다. 제국주의는 그런 방법으로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적당한 야학이나 계몽운동은 되레 제국주의가 원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필호는 내친 김에 자기의 생각이 결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최도애씨, 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떠날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후 밤 9시에 이곳에 오겠습니다. 함께 가시려면 저 도애씨 방의 창문에 도애씨의 옷을 걸고 불을 켜 놓으세요.”

필호는 급속도로 하얘지는 도애의 얼굴에 등을 보이며 말없이 걸어가 버렸다.

물론 필호는 한 달 후 약속한 그 시간 그 장소에 가 보았다. 도애의 창문에는 옷은커녕 방에 불도 켜 있지 않았다.

“어떤 여자든 한 번은 남자에게 시련을 준다. 남녀가 좋아서 만나면 사랑은 이루어진 셈이다. 배신할 때까지는….”

필호는 형 제호의 말을 떠올리며 굵은 눈물방울을 주먹으로 닦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태풍이었다. 사나운 빗줄기가 필호의 얼굴에서 도랑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좀처럼 비와 바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아아하, 아아하!” 하며 한숨 같기도 하고 괴성처럼도 들리는 육성을 두세 번 질렀다. 하지만 폭풍우의 음향에 묻혀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며칠 후 아침 일찍 뜻밖에도 도애는 필호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그 날 밤 자기는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필호는 가슴이 뛰어야 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겠다고 야무지게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그녀의 얼굴이 의외로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전에 없이 화장까지 하고 나타났다. 처음 보았을 때 바로 눈에 띈 화장이었다.

두 남녀는 말없이 걸었다. 도애는 전에 없이 필호의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거나 머리를 기대는 일을 거침없이 해대고 있었다. 필호는 가슴이 저려왔다. 도애는 필호를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에 가지 말아 달라고 벌써 수도 없이 애원했다.

주막에서 마신 술기운은 젊은 필호를 평소와 달리 거칠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어느 조그만 정자에 이르렀다.

“절 사랑한다면 제발 가지 말아 주세요.”

필호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에 자칫하면 그러겠다고 대답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애는 필호의 완강한 의지를 확인했는지 더 이상 가지 말라는 애원 같은 것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시간을 두고 한 말은 듣기에 따라 필호의 마음을 비수처럼 아리게 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는 아주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안 가신다고 해도 저는 어려워져요.”
이제 필호는 그녀의 마지막 진정까지를 헤아리기 어렵게 되었다. 술기운 탓인지 도애는 혀가 잘 돌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와락 눈물을 쏟기도 했다.

“가셔요. 떠나세요. 하지만 저도 그냥 보낼 수는 없어요. 정말 미안하거든요.”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눈물을 찍어 닦으며 말했다.
“그러니… 절, 지금 가지세요.”

그녀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려놓고 필호를 찾은 거였다. 그녀는 불안한 미래에 자신의 삶을 걸 수는 없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래서 그녀는 헤어지려고 마음먹은 연인에게 그녀 나름으로는 가장 소중히 여기는 처녀를 줌으로써 일을 끝내려 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최도애 식의 특이한 사랑법이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미 김태수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싫지 않았던 점이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필호는 도애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그러고는 그녀를 데리고 정자 밖으로 나왔다.

최도애는 제 나름으로는 그래도 사랑을 위한 모험을 감행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는 필호에게 자기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 짓이기도 했다. 약속했던 밤, 험하게 폭우가 치는 가운데 집 앞 골목에서 절망적으로 발길을 돌리는 연인을 내려다 본 최도애는 격정의 슬픔으로 몸을 가누지 못했었다.

그녀의 슬픔은 나름대로는 진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불도 켜지 않은 방구석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로 울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의 슬픔이 무엇인지를 그녀 자신도 분명히 모르는 데에 있었다. 그녀는 폭우 속에서 발길을 돌리는 연인의 모습도 불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기구한 이별을 해야만 하는 자기 자신이 마구 불쌍해서 더욱더 울어댄 것이었다.

그녀는 야학이나 계몽운동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독립운동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의병이나 독립군은 감당할 수 없는 상상 밖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미상불 과격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탄압만 가중시켜 모두에게 이롭지 않은 일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어 오던 터였다.

그녀에게는 안중근 같은 사람이 독립운동가인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인지를 분별할 안목이 도대체 없었다. 또한 그녀가 야학이나 계몽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것이 다소 로맨틱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점을 그녀는 까맣게 간과하고 있었다.

어느 시대나 그런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었다.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노인이건 어린이건, 돈 있건 돈 없건, 배웠건 못 배웠건, 순진하건 불순하건 간에 따로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보수라는 명분으로 자신들의 빈곤한 영혼을 장식하고는 했다. 물론 그들이 정상적인 보수일 리는 없었다. 그들은 원인보다는 현상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심해지다 보면, 동학군 때문에 청일전쟁이 일어나서 일본이 조선 파병을 하게 된 나머지 결국 일본을 이롭게 한 것이라는 역논리가 도출되기도 했다.

그래서, “일인들은 동학놈들 영전에 소대가리라도 얹어야 한다”는 말을 유식한 듯이 늘어놓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게 조금 더 심해지다 보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서 한일합병이 더욱 가속되었노라고도 말하게도 되는 것이었다.

민필호와 최도애의 시절은 영혼과 제국이 대립하는 소용돌이에 있었다. 일단 최도애는 민필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를 두고 떠나는 그가 심하게 야속하기까지 했다. 반면 민필호는 최도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남자와 인정받지 못하는 여자가 맺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런 척박한 시대의 교량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결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지?

향수(鄕愁)

중국 대륙의 서쪽 분지에서 일약 머리를 쳐들고 발원하는 강이 있었다. 그 강은 아주 길어서 끝까지 가려면 무려 만오천 리의 물길을 흘러야만 했다. 양자(揚子)라고 하기도 하고 창장(長江)이라 부르기도 하는 그 강의 서쪽 처음 도시가 중경이었고, 그리고 동쪽 끝에 자리한 도시가 상해였다. 그러니 신규식은 양자강의 동쪽 끝자락에 있는 도시 상해에 이른 것이었다. 그의 노정은 양자강의 길이보다는 짧았지만 육로로 3천 리, 해로로 1천리 길이나 되는 것이었다.

상해는 한국이 선택한 중국의 무역 통로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상해는 근대 이후 동양의 어느 도시보다 일찍 개화된 항구 도시이기도 했다. 물론 당, 송 때만 하더라도 상해는 소담한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중세의 비범한 과학기술자였던 원나라 여인 왕타오프가 발명한 직조 기술이 상해를 면직물 중심 상업도시로 변모시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덧붙이는 글 매혹적인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고자 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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