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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건 '음악인' 전인권

후배 뮤지션들이 함께 한 헌정공연 <인권이형 사랑해요>

등록|2008.02.12 11:22 수정|2008.02.12 11:22

▲ 2월 8일, 9일 양일간 홍대앞 롤링홀에서 '인권이형 사랑해요' 공연이 열렸다. ⓒ Blue Devil

우리는 전인권씨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로서 전인권씨에게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전하기 위해 이 공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설 연휴 막바지인 지난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홍익대 근처 한 클럽에서는 '인권이형 사랑해요'라는 공연이 열렸다.

황보령밴드, 이승열과 서울전자음악단, 한상원, 주찬권, 정경화, 로다운30, 코코어, 허클베리핀, 노브레인 등 관록파 뮤지션부터 실험적인 밴드까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쟁쟁한 라인업이다. 하루 빨리 무대에서 노래하는 전인권을 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후배들이 모인 것.

하지만 대외적인 언론 홍보는 없었다. 홍대 근처에 포스터 몇 장 뿌린 게 전부다. 공연장 입구에는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길 원치 않는다'는 정중한 메시지가 붙어 있다. 조용한 지지와 은밀한 열기 속에 '헌정' 공연은 시작됐다.

인디밴드들의 조용한 헌정 "인권이형 사랑해요"  

9일 공연 첫무대는 주찬권이었다. 그는 전인권의 오랜 음악적 동지이자 벗이다. '들국화' 드러머 출신으로 최근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이날도 다른 세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들국화 원년 멤버 주찬권은 전성기 때와 다름없는 강렬한 드럼사운드를 펼쳤다.

"전인권씨가 사랑한다고, 기다리라고 전해 달래요. 뭐, 난 그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웃음) 무대에서 해나가는 거 보면 대단하죠. 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수줍게 몇 마디 남긴 그는 들국화의 <제발>을 불렀다. 애절한 곡조와 노랫말이 마치 전인권의 독백처럼 들려왔다. 

"난 니가 바라듯 완전하지 못해. 한낱 외로운 사람일 뿐이야."

베이시스트의 외계인 분장과 몽환적인 연주로 눈길을 끌었던 '스타리아이드'에 이어 무대에 오른 모던록밴드 '보드카레인'. 그들은 로맨틱 사운드를 쏟아내며 현란한 무대를 선보였다. '보드카레인' 보컬 안승준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전인권 선배님은 우리의 음악적 영웅"이라고 운을 뗐다.

"저희가 이 공연에 출연한다고 했더니 몇몇 팬이 좀 문제제기를 하더라고요. 솔직히 나이어린 분들에겐 전인권 선배님이 안 좋은 이미지로만 남아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한번 영웅은 영원한 영웅입니다. 선배님께서 계속해서 아름다운 영웅으로 남아주시길 바랍니다."

음악이 아닌 사회면 기사와 소문으로만 전인권을 접한 사람에게 그의 존재는 '비호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후배들은 달랐다. 한껏 예우를 다했다. 후배 뮤지션들은 공연이 끝나도록 "존경했다" "존경한다" "존경할 것이다" 등 시제를 바꿔가면서 애정을 고백했다.

누가 전인권의 목소리를 대신할 것인가?

'어둠 속의 빛처럼' 등장해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로 단숨에 무대를 평정한 정경화. 그녀 역시 "전인권 선배님은 음악에 있어 교과서적인 분"이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공전의 히트곡 <너에게로의 초대>를 관객과 나눠 불렀다. 그녀가 휘몰아치며 "어둠 속의 빛처럼~"하고 플로어에 마이크를 건네면 "my love!"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 한상원과 로다운30의 신들린 연주는 관객을 숨죽이게 했다. ⓒ 김지영


이날 공연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로다운30'과 기타의 연금술사 '한상원'의 신들린 공동 연주였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절간 같은 정적에 휩싸였고 유려한 비애의 곡선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한상원은 1998년 전인권과 공동 음반을 발매하기도 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로다운30의 윤병주가 방금 연주한 음악이 '블루스'라고 소개하자 환호가 쏟아졌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와.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필을 살리는 게 가능하구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들국화 앨범을 샀던 생각이 나요. 굉장했죠. 잠실경기장에서 들국화 공연도 봤었는데 정말 최고였어요."

사춘기의 우상을 추억하는 윤병주. 그의 말대로 1980년대 들국화의 등장은 가요계 일대 혁명이었다. 전인권은 '고통이여 내게 오라'는 듯 두 팔 벌려 <행진>했고,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절규했다. 들국화는 암울한 시대가 낳은 밴드였다. 그리고 목마르게 흔들리는 전인권의 보컬은 들국화의 노래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들국화의 1집은 지난해 국내 대중음악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만장일치로 1위에 선정됐다. 2000년에는 윤도현밴드,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동물원, 강산에 등이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 'A Tribute To 들국화'가 나오기도 했다.

무대 세팅 때마다 들려오는 <쉽게> <사랑한 후에> <세계로 가는 기차> 등의 노래에서 전인권은 으스러져라 노래한다. 누가 저 목소리를 대신할 것인가.

우린 그저 음악인 전인권이 보고 싶을 뿐...

▲ 감옥 속의 전인권이 아닌 무대 위의 전인권과 다시 만나고 싶다. ⓒ 노순택


팔색조의 매력을 뽐낸 여덟 팀 중 마지막 세 팀은 '코코어', '허클베리핀', '노브레인'. 국내 인디 밴드 중 독보적 음악 세계와 마니아층을 갖춘 단단한 밴드들이다.

멘트도 쉼표도 없이 이어진 코코어의 무대는 긴 장편 영화 같았다. 기타의 선율이 쭈뼛 등줄기를 훑어 내린다. 비통한 울음 조각을 삼키듯 꾹꾹 누르는 고통스러운 몰입의 무대.   

"안녕하세요. 허클베리핀입니다." <밤이 걸어간다> <I know> 등 중독성 강한 노래가 이어진다. 관록과 열정이 버무려진 마법의 무대다.

드디어 노브레인 등장. <검은날개> <한밤의 뮤직> 등의 곡들이 내달렸다. 노브레인다움의 극치. 앙코르 송으로 <넌 내게 반했어>를 부른다. 땀범벅 끼범벅 보컬 이성우는 노래 사이 사이 "인권이형 사랑해요"라고 추임새를 넣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들이 사랑한 건 '마약사범' 전인권이 아니다. 전인권을 사랑했는데 그가 마약을 한 것이다. 전인권이라는 책에서 한 페이지만 찢어낼 수 없지 않은가. 안고 간다. 신나게 고고씽!

"넌 내게 반했어~ 넌 내게 반했어~ 인권이형 사랑해요오오!"

장장 4시간여에 걸친 스탠딩 공연이 끝났다. 가마에서 불이 꺼지고 토기가 쏟아져 나오듯, 락앤롤의 불덩이에 달궈진 관객 백여명은 생기발랄 모드로 공연장을 빠져 나갔다. 이날 공연에는 들국화 팬클럽 정기모임도 치러졌다. 전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공연장 밖. '인권이형 사랑해요'라고 쓰인 포스터가 풍찬노숙에 떨고 있다. 크레용으로 그려진 쇠창살을 비집고 긴 머리의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 한다. 이달 중순에 전인권의 2심 공판이 있다. 헌정 공연이 제아무리 성공적이어도 당사자의 공연만 할까. '사랑한다'는 용기 있는 외침에 화답하는 전인권의 무대가 보고 싶다. 그 어떠한 수식도 달지 않은, '음악인' 전인권의 무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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