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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숭례문 앞에 사죄의 탑을 세우자

등록|2008.02.12 15:11 수정|2008.02.12 15:50
숭례문을 잃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

숭례문이 타버린 일을 두고 돌을 가장 많이 맞는 쪽은 아무래도 문화재청이다. 직접 관리를 맡고 있던 서울시와 중구청도 국민으로부터 날아오는 돌을 피할 수는 없다. 그 돌은 구, 신 대통령들에게까지 날아갈 태세다. 방화 용의자가 잡혔다고 하지만 그에게 날아가는 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600년 문화재의 허무한 소실에 국민은 이토록 관리자들에게 격앙되어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숭례문을 잃은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예전의 낙산사 화재, 창경궁의 문정전 화재, 서장대 화재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위험에 빠져갔지만 이참에라도 외양간을 튼튼하게 고쳐야 한다는 데 관심을 가진 국민이 몇이나 있었던가.

문화재 보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얼마 전 휴대폰을 찾기 위해 수원 화성 일대에 불을 지른 여학생 수준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숭례문 현판양녕대군이 썼다는 이 글씨를 우리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 우광환


가난한 조상님들이 애지중지 물려준 숭례문, 부자인 우리가 버렸다

지금 우리의 문화재 관리 실태는 사실상 방치에 가까운 실정이다. 문화재 보존 실태에 대한 외국의 사례는 아예 꺼내고 싶지도 않다. 숭례문보다 더 오래 전에 건축된 온갖 문화재급 건물들을 아직 실제 사용하면서도 시민과 정부, 심지어는 관광객들까지도 힘을 합쳐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이태리 같은 나라는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젠 세계 열두 번째 경제대국에 올랐다는 대한민국에서 예산을 핑계로 숭례문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말은 너무도 참담하다. 가난에 허덕이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600년 동안 조상님들이 애지중지 보살펴왔던 숭례문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수리를 해놓으면 여전히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우뚝 서 있을 테니 별 신경 쓸 일이 없었던가.

약간의 불씨가 거대한 그 지붕을 다 태워 없앨 때까지 우리의 소방관들도 하릴 없이 멀찍이서 물만 뿌려대는 형국이었다. 그런 일은 전문 소방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책이 없다. 이런 현실 앞에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1900년 경의 숭례문가난한 조상님들이 애지중지 물려준 숭례문을 부유해진 후손들은 관리예산 때문에 지켜내질 못했다. ⓒ 우광환


숭례문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우리는 평소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누군가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내 어려운 모든 문제는 정치가들의 책임이며 꼴 보기 싫은 지도자들이 활개치고 있는 현실도 그들을 뽑아준 이웃책임으로 돌린다. 홍수가 한 차례 쓸고 지나가야 제방 관리를 허술하게 한 책임자들을 향해 돌이 날아가고, 건물과 다리가 무너져 내리면 그제야 시공자들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나마 그것도 곧 잊히기 일쑤다. 우리의 관심은 다시 그윽하고 안락한 삶을 향한 개인으로 돌아온다. 그런 속에서 우리 사회의 유사한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진정으로 책임지려는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모두가 똑같은 사고(思考) 속에서 사는데 누가 책임질 것인가. 비난 속에서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해당 관리부처 공무원들 역시 그저 재수 없이 걸려든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이제 우린 바뀌어야 한다.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숭례문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 우리도 이젠 모두 합심해서 함께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에게 책임전가 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숭례문 앞에 큰 탑을 세워서라도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다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무책임했던 일들을 후손들에게 사죄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길이 기억해야 한다. 숭례문의 교훈만큼은 정말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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