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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쏟아지는 별을 머리에 이고 기도하는 사람들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국경을 넘어 이란으로

등록|2008.02.15 08:52 수정|2008.02.15 09:18

▲ 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잠깐 사이에 들러붙은 거리의 아이들

15일간의 경유 비자를 받아 휙 지나친 파키스탄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파키스탄 측의 국경도시인 퀘타(Queta)에서 좀 떨어진 한 시외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안 그래도 퀘타는 파키스탄 내에서도 변방의 오지로 분류되는 곳인데, 버스 정류장이 위치한 이곳은, 퀘타 시내와는 마치 30년의 시차라도 나듯, 낙후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전거를 무료로 실어준다는 것이다."

영아를 먼저 버스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짐 때문에 밖에 남아 있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껌이나 사탕을 파는 거리의 아이들이 들러붙었다. 지난 5개월간 머물렀던 인도의 아이들과는 극명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무슬림의 아이들, 한마디로 겁이 없는 아이들이다.

나름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건만, 이 아이들을 상대론 외국인인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이들의 장난과 치근거림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할 즈음, 어디선가 나타난 버스 차장이 아이들을 쫓아 보냈다.

다른 모든 짐을 먼저 실은 후, 자전거는 마지막이다. 자전거를 올려 실으려 높은 버스 지붕 위로 올라서자, 퀘타를 둘러싼 병풍 같은 흙산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잡한 버스 정류장 주위의 낯선 모습과 거리를 오가는 분주한 삶의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퀘타 파키스탄의 국경 도시, 퀘타 전경 ⓒ 김성국


버스기사 바로 뒷자리가 편할 거라는 기대는 산산조각 나고

"기어 조심해요. 그렇게 놓으면 자전거가 망가져요. 그렇죠. 그렇게, 됐어요. OK."

마지막 짐인 자전거까지 싣는 걸 확인한 후에야 버스에 올랐다. 인도에서도 기차에 자전거를 싫어 보낸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지 않은 관계로 자전거 기어가 손상돼 곤혹을 치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아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핑계로, 기사에게 양해를 구해 버스 맨 앞 자리를 차지했다. 야간 버스나 장거리 버스에서는 버스기사의 바로 뒷자리가 최고로 편한 곳 이라는 우리의 경험에 따른 선택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우리의 선택이 그다지 탁월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뿔사! 버스 기사와 짐꾼들, 차장을 합쳐서 7명이 넘는 이 버스의 탑승 인원들이 모두 버스 맨 앞쪽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걱정했던 대로 연신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앞자리가 편하긴 하지만, 이 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에서 밤새 달려가야 할 생각을 하니 잠시 정신이 아찔하다.

이곳에서 이란 국경까지의 사막 경치가 환상이라는 얘기는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이 멋진 풍광을 지나는데, 야간 버스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해가 지려면 아직 한 시간 남짓 남아 있긴 하지만, 떨어지는 해가 못내 아쉽기만 했다.

잠시 후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해지기 전까지 한 시간 가량, 창 밖의 황량함과 광활한 사막의 경치는 이 길을 지나는 나그네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렸다. 정말 미치도록 아름답다는 표현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 안에는 각양각색의 화려한 불빛이 켜졌고, 우리가 탄 버스 앞쪽으로 파키스탄 특유의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놓은 차량들의 행렬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차가 멈추어 서더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 파키스탄의 화려한 트럭 ⓒ 김성국


▲ 파키스탄의 국경 도시, 퀘타 전경 ⓒ 김성국

아, 바로 이것이 모슬렘들의 신앙이구나
"무슨 일이지? 검문인가?"  영문을 모르는 우리도 덩달아 따라 내렸다. 이유는, 다름 아닌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이었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사막의 오아시스 한복판이었다.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작은 수로들이 나 있었고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곳에서 손발을 씻더니 자리를 깔고 메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초승달과 쏟아지는 별들을 머리에 이고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이 황량한 사막과 밤이 내린 후의 어둠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들의 기도와 이들 마음 안의 신.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일을 이루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수로들을 따라 작은 개울들이 소리 내어 흐르고 있었고, 반짝이는 별들 아래 사람들은 경건했다. 그것으로 그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어둠 속에 조용히 일어났다 엎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눈에 들어왔다.

아, 바로 이것이 사막의 오아시스구나.
아, 바로 이것이 모슬렘들의 신앙이구나.

얼마 후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우리는 다시 탑승객들이 죽도록 피워대는 담배 연기 속에서 괴로워하며 잠이 들었다. 문득 문득 잠이 깰 때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검은 모래 둔덕들과 버스가 달리는 양쪽으로 솟아 있는 모래 산들, 바람을 타고 살아 움직이는 모래들이 마치 거대한 생명력이 숨 쉬는 듯했다.

사막의 황량함과 황량하기에 더 아름다운 사막, 아쉬움이 있다면 밤을 달려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에, 사막의 기막힌 경치들을 다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밤이라는 시간을 통과했다.

자리가 불편해서 거의 30분에 한 번씩 자다 깨다 했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다시 날이 서서히 밝아오자 광대한 사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명에 정신을 빼앗겨 멍해졌을 무렵, 갑자기 버스 안의 대장인 듯한 사람이, 국경에 도착했으니 내려서 도장을 받으라고 했다.

버스 안에 영아를 남겨둔 채 여권을 준비해서 내리니, 제법 한기가 돈다. 한낮의 뜨거움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쌀쌀한 아침이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만 보았던 이 사막의 풍경을 직접 몸으로 느끼니, 그 광대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렇듯 유리창 밖의 세상과 직접 느끼게 되는 세상은 차이가 큰 것이다.

'밤새 달려온 길을 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았을 텐데!' 적게 잡아도 일주일은 넘게 걸렸을 것이고, 죽지 않을 만큼 고생했을 것이 자명한데도 비자 기간에 등 떠밀려 지나쳐 버린 사막에 대한 막연한 아쉬움이 깃든다.

우리는 그렇게 파키스탄과 이란의 국경 마을에 이르렀고, 얼마 후 다시 자전거를 끌고 이란 측 국경으로 넘어갔다.

언제나 국경에서 국경을 넘을 때는, 한 나라의 가장 변방에서 변방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경관이 아주 초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절하고 쾌활한 파키스탄 측에서 출국 도장을 받고, 돛대기 시장 같은 이란 측 국경 검문소로 넘어갔다.

많은 파키스탄 인들이 이란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여 있기 때문에 너무나도 복잡했다. 군인 복장의 이란 사람들이 출입국 관련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배려로 자전거를 밖에 세워놓고 몸만 안으로 들어갔다.

외국인이라고 특별대우를 해줬기 때문일까? 예상과는 달리 서류절차가 너무도 빨리 끝났다. 원래 짐 검사를 건물 안에서 하는데, 자전거를 밖에 세워놓았고 몸만 들어가 도장을 받다 보니 자전거에 달린 짐은 검문 없이 그냥 무사통과다. '이 복잡한 행렬 속으로 어떻게 자전거를 끌고 들어갈까!' 사실 엄두가 나질 않았는데, 짐 검사 없이 그냥 통과한 것이다.

"뭐야. 이란 측 국경 넘기가 까다롭다더니 소문이랑은 완전히 다르잖아?"

여행 중 느끼게 된 사실 하나는 무엇이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소문은 와전되는 법이고, 상황에 따라 현실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직접 시도해 보고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다시 힘껏 페달을 밟았다. 첫 번째 이란의 도시인 자헤단까지는 80km 가량의 거리가 남아 있었다.

▲ 파키스을 가로지르는 열차 안, 필자. ⓒ 김성국


덧붙이는 글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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