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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 관련 슬로건과 로또복권은 닮았다

후보자들이여, 제대로 된 슬로건을 만들어라

등록|2008.02.14 14:20 수정|2008.02.18 15:16
4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의원들의 사무실이나 이번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자신을 알리는 사진과 함께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내건 말(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내건 말', 그것은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두루뭉술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세부적인 내용들이야 홍보 책자와 유세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겠지만 결국 내건 말 속에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 둘 등장하고 있는 현수막의 내건 말들을 보면서 왜 이리도 씁쓸해지는 것일까?

“일류로 만들어 갑시다.”
“○○○(출마자 이름)이 가는 곳엔, 성공이 있습니다.”
“○○(출마하는 곳), 번영의 일등 항해사”
“○○○(출마자 이름)과 함께 갑시다. 국민 성공시대”
“○○(출마하는 곳) 성공시대, CEO대통령과 CEO국회의원”

‘일류, 성공, 일등, 번영, CEO’ 등의 단어들은 낯선 단어들이 아니다. 모두 그를 향해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까. 어떤 일류인지, 어떤 성공인지, 어떤 일등인지, 어떤 CEO인지는 묻지 않는다.

그들이 내건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물질적이며 권력적인 냄새만 풀풀 풍긴다. “하면 된다”는 폭력적인 말이 아직도 이 사회에 횡횡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그런 내건 말들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고, 그런 말에 유권자들이 혹할지도 모를 일이다.

‘경제가 망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인터넷 상에서 유유자적 하는 요즘 같은 때에 어쩌면 그런 내건 말들은 아주 유효한 것일지도 모르고 아주 솔직한 자기고백일 수도 있다. ‘희망’ 같은 추상적인 단어 속에 자기의 속내를 숨기는 것보다도.

그런데 왜 이리도 헛헛한 것일까? 경쟁에 내몰리는 삶의 정황 속에서 과연 저 단어들 속에는 '더불어'라는 의식이 있기나 한 것일까? 나 혼자만 일류가 되고, 성공하자는 로또 대박의 꿈과 전혀 다르지 않은 그런 허상을 통해 유권자들을 속이는 구호가 아닐까?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이들이 몇십억씩 받는 것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몇십억이 6개의 번호를 사는 대가로 지불한 1천원의 십시일반 한 것을, 운 좋은 사람(?)이 싹쓸이하는 것인데 '나도 일등이 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일등이 된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건만) 로또복권에 중독되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일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제 곧 각 당에서 후보자들의 공천을 확정되면 눈길 가는 곳마다 후보자들의 현수막이 내걸릴 것이며, 현수막마다 적혀있는 내건 말들을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현수막 공해에 시달릴 터이고, 간판만 해도 어지러운 건물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펄럭이는 현수막마다 로또복권을 닮은 구호를 본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내건 말, 시를 닮아서 한 번만 봐도 외워지고 되뇌어지는 내건 말은 정치판에서는 너무 고매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정치판에서 너무 멋진 내건 말은 기대하지 않겠다. 그러나 최소한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로또복권 같은 구호로 유권자들을 현혹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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