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일가 탈세 증거 찾아낼 수 있을까
'국세청 압수수색' 카드 빼든 삼성특검... 비자금 의혹수사 빨라질 듯
▲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 ⓒ 남소연
삼성특검팀이 결국 '국세청 압수수색'의 칼을 뽑아들었다.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수사팀은 지난 13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일가를 포함한 전·현직 임원들의 과세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이미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확보한 특검팀이 국세청 자료까지 넘겨받게 된다면 삼성 비자금 의혹 수사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정석 특검보는 14일 오전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13일 오후 수사상 필요한 과세자료를 받기 위해 국세청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일가의 과세자료가 압수영장 범위에 포함된 사실 외에는 해당 임원 수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윤 특검보는 "특검법에 명백하게 '특검팀이 관계기관에게 자료 제출 등 수사 협조를 요청할 수 있고 요청받은 관계기관의 장은 응해야 한다'고 돼 있는데 압수영장을 청구하게 된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냈다.
국세청-금감원 자료 확보 중요했던 까닭
▲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앞서 작년 12월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는, 지난 99년 삼성증권 유상증자 당시 발생한 실권주(회사가 유상증자를 할 때 주주가 배정한 신주 인수권을 포기, 주금을 납입하지 않은 주식)를 김용철 변호사 등 49명의 전·현직 임원들이 매입했고 이들 명의의 계좌 중 상당수가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일괄적으로 개설한 차명계좌라는 정황을 포착했다.
당시 특본에 출석한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장 이모씨는 "도곡지점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차명계좌 등 차명계좌가 33개 개설돼 있었다, 모두 구조본이 개설·관리했다"고 진술했다.
또 특본은 삼성증권 유상증자가 실시한 직후인 2000년 3월 김 변호사의 차명계좌에 삼성증권 실권주 2200주가 입고된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임원들의 명의로 개설된 계좌에 입고된 실권주는 무려 12만주나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상증자시 할인발행이 일반화되어 있어 실권주를 인수할 경우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한 것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경제개혁연대의 전신인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의 '삼성·현대·LG·SK 등 4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유상증자시 실권주 배정 실태 분석보고서'(98~2000.8)에 따르면 실권주를 인수한 삼성그룹 등기임원들이 실권주 인수를 통해 얻은 재산상의 이익은 총 429억원이었다.
그러나 삼성 계열사의 '사업보고서'와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기업집단소유구조현황' 자료를 분석하면 삼성그룹 임원들의 실권주 매입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대개 회사의 임원이 자기회사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회사의 이익과 경영진의 이익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인데 해당 임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상당액수의 지분은 타 계열사의 지분이었다.
게다가 삼성은 1998년부터 2000년 동안 유상증자를 40차례 실시했는데, 그 주에 일곱 차례가 삼성 내부로 안 나가고, 전부 삼성의 임직원들이 인수했다. 또 실권주 배정 당시 의사회 의사록에 명시된 "전부 회사가 '가지급금'을 지급해서 우선 대신 인수자금을 내고 대신 2~3개월 내로 갚는다"는 대목을 보았을 때 임원들이 실제로 실권주 인수대금을 인수자에게 지급했는지 여부가 분명치 않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존재했다.
특본은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삼성이 계열사 실권주가 입고된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증식·관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납세 내역, 지분 이동 등 국세청과 금감원의 자료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인력과 시간이 부족한 특검의 특성상 차명 여부 확인과 비자금 사용 관리 의혹 수사가 막막한 상황이었다.
국세청-금감원 자료 확보한 특검, 수사 속도 빨라질 듯
▲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달 8일 오전 탈세제보서와 조사요청서 제출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대수사기간이 105일이고, 수사인력이 30명인 특검의 수사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며 "국세청과 금감원의 조사와 제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시민단체들도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국세청과 금감원의 수사 협조를 요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월 8일 국세청에 삼성그룹 관련 탈세 제보서를 제출하며 국세청의 자발적인 조사를 촉구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삼성 이건희 일가 불법행위 규명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도 지난 1월 9일 기자회견 당시 "국세청의 협조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압수수색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었다.
결국 시민단체들의 비판과 특검의 경고에도 버텨오던 국세청은 '압수수색'이라는 좋지 않은 모습으로 자료를 제출하게 됐다.
앞으로 특검팀이 국세청으로부터 삼성 전·현직 임원에 대한 세금 납부 내역과 지분이동 조사 내역 등의 자료를 확보하면 삼성 비자금 조성 및 관리 의혹의 상당부분을 풀 수 있는 핵심고리를 얻게 된다.
이와 관련해 이미 특검팀은 지난 12일 금융감독원 조사2국·공시감독국·보험감독국 3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해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대주주 지분변동 및 삼성생명·화재 등 삼성그룹 보험계열사들에 대한 자료 등을 확보한 바 있다. 또 삼성증권 전산센터 압수수색을 통해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 2453명 명의 계좌의 거래 내역을 확보 중이다.
한편, 특검팀은 청구한 압수영장 중 이건희 회장 일가의 과세자료에 대한 압수영장을 발부받고 자료 확보에 나섰다.
또 이날 오전 제진훈 제일모직 사장을 'e삼성 주식매입 사건' 피고발자로 소환해 조사 중이다. 제 사장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그룹의 인터넷사업 계열의 삼성캐피탈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김용철 변호사가 제 사장을 이종백 국가청렴위원회 위원장 로비 담당자로 지목한 바 있어 정관계 로비 수사도 함께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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