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방망이 소리 그립다
[삶 속의 문화] 외할머니의 취미와 '빨래터' 추억에 부쳐
▲ 그리운 '빨래터' 민중의 삶 속의 문화 정말 소중한데.. ⓒ 송유미
'손빨래'가 취미라고 말하면 웃을까. 그러나 '일'은 고달픈 구석이 없지 않지만, '취미'삼아 빨래를 하면, 빨래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희열이 있다. 갖은 시집살이 속에서도 빨래만은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일부러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취미가 됐다. 취미로 빨래를 하고 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러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내 이런 모습을 보시면 "수돗물 많이 든다"고 나무라실 것이다. 물 한 방울도 쌀 한톨과 같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세대에는 시냇가와 강가, 동네 개천에 빨래터가 많았다. 그 흔했던 '빨래터'를, 이젠 어디 가야 볼 수 있나 싶은데 내가 유독 좋아하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가슴이 쿵쿵 빨래방망이 소리를 내며 뛰었다. 아, 문화재란 것은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인데 그 문화재를 현실의 주위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예술 작품 속에 '빨래터'를 문화재로 삼은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닐테지만, 그 그림 값 정말 귀한 만큼 비싸다. 박수근 화백의 비싼 '빨래터'처럼 이제는 정말 귀해서 더욱 소중한 사라진 빨래터. 시골을 찾아가도 그 정겨운 빨래터를 만나기 쉽지 않을 터다. 내 유년의 기억을 풍부하게 해주던 동네 공동 빨래터, 그 빨래터의 즐거웠던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들은 감물이 든 것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졸졸 물소리들이 재잘거리며 흐르는 맑은 계곡에서, 왁자하게 빨래하던 냇가에서, 물장구치고 가재를 잡던, 그 빨래터 정말 그립다. 외할머니는 이남 땅에 이주해 와서 사는 막내딸을 보러 오셨다가, 6·25 전쟁 때문에 영영 외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실 수 없는, 한(恨)의 세월을 살다가셨다. 외할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지만, 지혜로운 분이셨는데, 너무 부지런해서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분이셨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질 못했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엄마 대신, 집안을 돌보며, 동네 소대사에도 빠지지 않던 할머니. 할머니의 손이 닿는 가재도구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서, 주위 분들이 할머니의 손을 '황금의 손'이라고 불렀다. 외할머니의 빨래는 38선의 경계를 지우는 물소리
▲ 왼쪽이 외할머니이시다.함경북도 이산가족 동향 모임 한때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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