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역사적 절터를 찾아서
신라 일념 스님이 머물면서 이차돈의 순교기록을 썼던 남간사터
경주 남산의 서북쪽 끝자락에 아늑한 느낌의 마을이 있다. 바로 신라시대 남간사의 터가 남아 있어 남간마을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남간사는 7세기 초 일념 스님이 머물면서 ‘촉향분예불결사문’을 지어 이차돈의 순교를 자세하게 전했던 곳입니다.
보물 제909호의 남간사터의 당간지주는 3미터 높이로 윗부분으로 갈수로 좁아져 안정감이 있고, 경주 남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당간지주로, 원형과 십자형의 홈을 판 매우 독특한 구조이다. 또 인근 남간마을 민가 곳곳에는 우물과 탑의 지붕돌(옥개석)과 기단석, 초석 등 절을 짓는데 사용했던 석재들이 대량으로 남아 있다.
신라시대 법회 때마다 당간지주 위로 깃발이 휘날리고 신라 대승 혜통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는 남간사. 그러나 현재 남간사터는 민가와 논밭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사찰 규모와 배치는 알 수 없다. 민가에 남아있는 석재의 양과 크기로 보아서는 당시 남간사는 신라시대 전성기의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은 고요히 답사객들만 찾는다.
▲ 늦 가을의 남간사지 당간지주계절에 따라 달라 보인다. ⓒ 김환대
▲ 당간지주겨울철에는 접근이 바로 앞 까지 가능하다. ⓒ 김환대
▲ 특징남간사지 당간지주만의 특징이다. ⓒ 김환대
보물 제909호의 남간사터의 당간지주는 3미터 높이로 윗부분으로 갈수로 좁아져 안정감이 있고, 경주 남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당간지주로, 원형과 십자형의 홈을 판 매우 독특한 구조이다. 또 인근 남간마을 민가 곳곳에는 우물과 탑의 지붕돌(옥개석)과 기단석, 초석 등 절을 짓는데 사용했던 석재들이 대량으로 남아 있다.
▲ 초석민가내에 초석들. 개방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 김환대
▲ 주춧돌민가내 석재 주춧돌인데 민가들이라 개방이 그다지 쉽지는 않다. ⓒ 김환대
▲ 민가내 석재민가내 석재들 ⓒ 김환대
▲ 탑 부재탑의 부재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 김환대
신라시대 법회 때마다 당간지주 위로 깃발이 휘날리고 신라 대승 혜통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는 남간사. 그러나 현재 남간사터는 민가와 논밭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사찰 규모와 배치는 알 수 없다. 민가에 남아있는 석재의 양과 크기로 보아서는 당시 남간사는 신라시대 전성기의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은 고요히 답사객들만 찾는다.
덧붙이는 글
남간마을의 석재들은 민가내에 집집마다 있으나 거의 일반인들이 출입하여 보기는 어렵다. 개인 민가들이다 보니 개방이 그다지 쉽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하여야 한다. 마을내 경상북도 문화재 지정된 우물은 현재 윗 부분을 막아 볼 수 없다. 남간교회에서 골목길로 접어 찾으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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