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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역사적 절터를 찾아서

신라 일념 스님이 머물면서 이차돈의 순교기록을 썼던 남간사터

등록|2008.02.16 12:33 수정|2008.02.16 12:33
경주 남산의 서북쪽 끝자락에 아늑한 느낌의 마을이 있다. 바로 신라시대 남간사의 터가 남아 있어 남간마을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남간사는 7세기 초 일념 스님이 머물면서 ‘촉향분예불결사문’을 지어 이차돈의 순교를 자세하게 전했던 곳입니다. 

늦 가을의 남간사지 당간지주계절에 따라 달라 보인다. ⓒ 김환대



당간지주겨울철에는 접근이 바로 앞 까지 가능하다. ⓒ 김환대

특징남간사지 당간지주만의 특징이다. ⓒ 김환대


보물 제909호의 남간사터의 당간지주는 3미터 높이로 윗부분으로 갈수로 좁아져 안정감이 있고, 경주 남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당간지주로, 원형과 십자형의 홈을 판 매우 독특한 구조이다. 또 인근 남간마을 민가 곳곳에는 우물과 탑의 지붕돌(옥개석)과 기단석, 초석 등 절을 짓는데 사용했던 석재들이 대량으로 남아 있다.

초석민가내에 초석들. 개방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 김환대

주춧돌민가내 석재 주춧돌인데 민가들이라 개방이 그다지 쉽지는 않다. ⓒ 김환대

민가내 석재민가내 석재들 ⓒ 김환대

탑 부재탑의 부재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 김환대


신라시대 법회 때마다 당간지주 위로 깃발이 휘날리고 신라 대승 혜통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는 남간사. 그러나 현재 남간사터는 민가와 논밭이 들어서 있어 정확한 사찰 규모와 배치는 알 수 없다. 민가에 남아있는 석재의 양과 크기로 보아서는 당시 남간사는 신라시대 전성기의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주변은 고요히 답사객들만 찾는다.
덧붙이는 글 남간마을의 석재들은 민가내에 집집마다 있으나 거의 일반인들이 출입하여 보기는 어렵다. 개인 민가들이다 보니 개방이 그다지 쉽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하여야 한다. 마을내 경상북도 문화재 지정된 우물은 현재 윗 부분을 막아 볼 수 없다. 남간교회에서 골목길로 접어 찾으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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