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수는 왜 영국 교수보다 서울대 강사 택했을까
한승수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앞두고 '허위경력' 논란 휘말려
▲ 이명부 정부의 첫 총리로 지명된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가 1월 28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영주 통합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 후보자의 영국 대학교수 경력이 허위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3~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자의 선거 공보물과 포스터, 의원들의 주요경력을 기재한 국회 수첩 등에는 그가 1965~68년 영국 요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68~70년 케임브리지대학교 응용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5일 국회에 제출한 총리 인사청문 요청안에 첨부된 한 후보자의 이력서에는 1965년 영국 요크대 경제학과 '연구원' '보조강사', 68년 케임브리지대 엠마누엘 칼리지에서 응용경제학과 '연구관'을 각각 지낸 것으로 적혀있다.
한승수 후보자 "연구교수였다" - 김영주 의원 "연구원이었다"
요크대 경제학과의 시먼스 학과장은 "한 후보자가 사회경제연구소의 연구원(Research Fellow)과 경제학과 보조강사(Assistant Lecturer)를 역임했다"고 확인했다고 김 의원측은 밝혔다.
영국 대학내 교원의 지위를 따져볼 때, 한 교수가 맡았던 '강사(Lecturer)'는 '정교수(Professor)'와 '부교수(Principal Lecturer or Reader)', '조교수(Senior Lecturer)'에 이어 '서열 4위'에 불과하다는 게 주영한국대사관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한 후보자는 1963년 2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친 뒤 같은 해 영국으로 건너가 65년 7월부터 68년 9월까지 요크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한 후보자는 68년 7월 동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는데, 당시까지 경제학 비전공자였던 그가 박사학위를 받기도 전에 같은 과 교수를 지낸 것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게 김 의원의 지적이다.
김 의원은 더 나아가 한 후보자가 영국에서 '보조강사'를 맡았다는 시기에 실제로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업무를 보고 있었을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김 의원이 이날 오후에 공개한 한 후보자의 서울대 재직증명서와 공무원 인사기록카드를 보면, 그는 1963년 7월 5일부터 67년 4월 10일까지 서울대 행정대학원 임시조교로 재직하고 있었다.
한 후보자의 63~67년 서울대 대학원 조교 시절이 그가 영국 요크대에 머물렀던 65~68년과 시기적으로 상당 부분 중첩되는 셈이다. 한 후보자가 67년 4월까지 서울대 조교 일을 하다가 영국 유학을 갔다면 그는 불과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외국 박사학위를 받은 셈이다.
▲ 김영주 통합민주당 의원이 1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승수 총리 내정자의 영국대학 교수경력 허위의혹을 주장했다. ⓒ 이종호
"케임브리지대 교수 지냈다" - 경력증명서엔 '연구관'
한 후보자가 요크대를 나와 2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케임브리지대의 행적도 논란에 휩싸이기는 마찬가지다.
바둑 애호가였던 한 후보자(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취미를 소개한 <동아일보> 기사(1995년 12월17일)에서 그는 "68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있을 때 바둑동호회를 만들어 옥스퍼드대와의 정기교류전 종목에 바둑을 포함시킨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대가 최근 발급한 한 후보자의 경력증명서에는 그가 '연구관(Research Officer)'를 지낸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주영한국대사관은 "(한 후보자가 맡았던) '연구관'은 연구소와 대학 등에서 연구직에 종사하고, 때로는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회신을 김 의원에게 보냈다. 이는 한 후보자가 얘기한 것처럼 그가 케임브리지대에서 교수 대우를 받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한 후보자의 서울대 재직증명서에 따르면, 그는 1970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주4시간, 같은 해 3월부터 4월까지 주10시간씩 행정대학원에서 시간강사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에 대해 김영주 의원은 "외국 박사학위자가 드물었던 1970년 상황에서 영국 유수의 대학 교수를 지낸 분이 국내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다는 게 납득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김 의원은 "과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후보자가 경력증명서를 (선관위에) 제출하지 않아도 돼 경력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한 후보자가 상공부 장관과 경제부총리·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될 때도 인사청문회가 없어서 그의 경력이 검증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같은 의혹들에 대해 한 후보자는 "나는 60년대 영국 요크대에서 국제경제학을 강의했고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며 "미국식 교육제도와 다른, 영국의 교수직 제도에서 오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국회에는 영어로 된 정확한 자료를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한승수 "케임브리지대에선 교수 타이틀 앞에 '리서치'가 붙는다"
특히 그는 "케임브리지대 응용경제학과의 경우 모든 교수의 타이틀 앞에 '리서치(Research)'가 붙는다"고 반박했다. 케임브리지대학 경력을 놓고 한 후보자의 '연구교수' 주장과 김 의원의 '연구원'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한 후보자는 자신이 한국인 최초로 60년대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경제학 강의를 담당했고, 유럽의 경제통합을 다룬 박사 논문은 이 분야 학위논문 73편 중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71년 유럽공동체 학술상까지 받았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한 후보자는 "각 나라의 교육·교직 제도의 차이에서 오는 불필요한 오해가 차제에 불식되고, 학자의 평가는 무엇보다 학문에의 기여를 기본으로 하는 풍토가 정착되기를 기원한다"며 상황을 수습하고자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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