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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해서 좋아요"

신랑 박길원씨와 신부 김희씨가 만드는 따스한 결혼이야기

등록|2008.02.19 10:04 수정|2008.02.19 10:36
겨울의 끝자락 2월에도 결혼하는 쌍이 있을까. 있다면 꽃피는 춘삼월 제쳐두고 왜 하필 이 추운 겨울에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2월 16일 토요일에 안성 궁전 웨딩홀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연은 있었다.

신랑신부이 두 사람에게는 평생 이 순간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송상호


신부는 조선족 여성. 5년 전 우리나라로 와서 갖은 고생 끝에 지금의 신랑과 같은 직장에서 만났다. 사정상 결혼식을 하지 못한 채 1년 같이 살다가 이제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가 되어 서둘러 결혼에 골인한 것.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혼식에 골인하게 된 것이니, 신랑신부에겐 무엇보다도 오늘이 특별한 날인 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결혼식을 지켜보지 못한 채 머나먼 중국 하늘 아래서 몸은 오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같이 하고 있을 신부의 친정 부모님을 생각하면 신부는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 밤새 한 잠도 못 자게 만든 것은 설렘과 아쉬움이 끝없이 교차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하객들은 모두가 웃음꽃이 만발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척들과 수다 떠느라 정신이 없다. 모두가 활짝 웃고 있지만, 오히려 당사자들인 신랑신부는 살짝 긴장해 웃음을 아끼는 듯. 예식장 입구는 삼삼오오 모여드는 하객들로 인해 시골 장날이 따로 없다.

드디어 식장에 화촉이 밝혀지고 결혼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니 하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그 순간만큼은 신랑신부가 동화 속 왕자와 공주가 되어 하객들을 사로잡는다. 

2월의 신부역시 이날의 주인공 중의 주인공인 신부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송상호


신랑신부는 주례자의 주례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기나 할까. 축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제대로 음미하기는 할까. 연신 터지는 카메라 셔터 불빛이 신경이나 쓰일까. 그렇게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신랑신부의 결혼 행진 시작. 축포가 터진다. 박수소리가 한층 더 요란하다. 하객들의 우스갯소리와 환호성이 잔치 분위기를 북돋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오신 하객들과 기념촬영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평소 많아 보이지 않던 친척들과 친구들이 이날따라 많아 보이는 것은 순전히 계속 이어지는 기념촬영 때문. 신랑도 신부도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다. 평소 같으면 한자리에서 함께 만나보지도 못할 친구와 친척들 틈바구니에서 오늘의 주인공으로 서 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터.

예식장 카메라맨도 계속해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요구하니 어색하기도 하겠지만, 일생에 언제 또 한 번 이런 기회가 있으랴. 그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두 사람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여든 자리가 아니었던가.

기념촬영이 끝나고 폐백이다. 안성이란 도시는 아직도 전통적인 도시이기에 모든 결혼 형태가 종전에 해오던 방식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아무려면 어떠랴. 이 신랑신부들로선 어쨌든 평생에 한 번 경험하는 일인 것을.

 “저 사람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착해서 좋아요.”

신랑 등에 업히기.폐백 끝무렵 신랑이 신부를 등에 업고 있다. 결혼식 전 과정을 보고 느낀 거 지만, 사진사들이 연출을 요구하는 동작들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 송상호


신랑이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결혼하느냐고 신부에게 묻자 조금도 망설임 없이 신랑을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신부.

그녀는 머나먼 타국 땅에서 모든 게 낯설고 수월하지 않은 환경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어색하고 힘든 결혼식을 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그대가 곁에 있어 그저 든든하기만 하다.

아니 결혼식보다도 앞으로 같이 걸어야할 인생 여정에 그대가 있어 행복한 것이다. 아직 추운 겨울이라 식장 바깥의 추위는 매서워도 결혼식장의 사랑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두 분 내내 행복하소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랑신부 본인들과 집안 어른들에게 사전에 유선으로 양해를 구했으며, 안성에 있는 k 웨딩홀에서 거행된 결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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