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열정적 화풍
'중남미의 정열적 미술세계'전 미술관가는 길에서 오늘 29일까지
▲ 미술관가는 길 입구와 중남미전 홍보포스터 ⓒ 김형순
올 들어 어느 때보다 중남미미술전이 눈에 띈다. 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다양한 미술 감상욕구들 충족시켜준다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오늘 7월말부터 10월말까지 '20세기 중남미미술전'이 열리고, 오는 28일부터 오페라갤러리에서는 콜롬비아의 국민화가 '보테로전'도 소개된다.
이번에 '미술관가는 길'에서는 중남미전문화랑 '베아르떼'와 공동기획으로 '중남미의 정열적 미술세계전'을 29일까지 연다. 쿠바의 인기작가 훌로라 훵과 원로작가 에버르 휀세카 그리고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파라과이의 에르난 미란다 등이 소개된다.
이를테면 유쾌한 감성과 열정적 화풍, 풍부한 색채와 사실주의적이면서 마술적이고 초현실주의적 상상력 등이 그런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연출하는 독특한 미의 세계를 보여준다.
세계적 인기작가, 훌로라 훵(FLORA FONG)
▲ 훌로라 훵 '빛을 찾아서' 캔버스에 복합매체 80×100cm 2005. 아래 작가 훌로라 훵 ⓒ 김형순
먼저 훌로라 훵(59)를 소개한다. 그는 쿠바로 이민 간 중국계 이민3세로 스페인, 아프리카, 중국문화가 뒤섞여있다.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맑고 투명한 심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그런지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그의 애호가에는 국경이 없다.
그가 중국계라 그런지 서구적 이원론보다는 동양적 음양론의 정서가 느껴진다.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그의 붓질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빛을 찾아서'와 같은 그림을 보면 우리 마음도 절로 안정되고 편안해진다. 요즘 심리치료에서 미술이 적용된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효과를 주는 것 같다.
그림이 사람들에게 물질적 혜택은 아니지만 정신적 혜택을 준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이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또 한 사람의 메신저라 할 수 있다.
▲ 훌로라 훵 '어부들의 마을' 캔버스에 복합매체 81×65cm 2004 ⓒ 김형순
'어부들의 마을'을 보면 야자수가 바람에 흔들리고 쪽빛 카리브 해와 뒤집어놓은 대형물고기 속에 집들이 들쑥날쑥 놓여있어 멋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적도에서 내뿜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의 오감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의 굵은 선과 유연한 붓질과 투명한 색채와 입체적 질감은 단연 돋보인다. 거기에 원시적 생명력과 천진난만한 동심이 뒤섞여져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런 작품은 연배도 비슷한 재독화가 노은님(62)의 물고기그림을 연상시켜 더 친근감을 준다.
해바라기, 중남미의 꽃
▲ 훌로라 훵 '새날을 위한 해바라기' 캔버스에 복합매체 160×118cm 2005. 아래 '해바라기 연작' 2007 ⓒ 김형순
해바라기 그림하면 고흐가 유명하지만 휭이 우리를 따뜻한 품으로 안은 어머니처럼 그린 해바라기도 그에 못지않다. 해바라기야말로 중남미를 상징하는 꽃이 아닌가. 이 그림은 이곳 태양숭배의 신화 속에 나오는 황금빛 해바라기 관을 쓴 눈부신 여제사장들의 모습을 어른거리게 한다.
해바라기 그림은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 태양처럼 환한 빛을 골고루 비춰 삶의 고단함과 일상의 힘듦을 내려놓고 인생의 즐거움을 누려보라고 하는 주문을 하는 것 같다.
쿠바 원로작가, 에버르 휀세카(Ever Fonseca)
▲ 에버르 휀세카 '보름달의 요정' 캔버스에 아크릴릭 80×60cm 2002. '달의 서커스' 136×110cm 1970. 오른쪽 작가 에버르 휀세카 사진 ⓒ 김형순
이번엔 에버르 휀세카(70)를 보자. 그는 1938년 쿠바의 만사니요에서 태어났다. 원로작가로 화가이자 조각가이고 도예가이기도 하다. 하바나 국립조형미술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20년간 조형미술대학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400여 차례 국내외 그룹전에도 참가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알 수 없는 미로가 끝없이 연결되어있고, 수수께끼 같은 기호와 상징과 인체형상 등이 뒤엉켜 있다 사람의 가면인지 눈인지 동식물의 형상인지 모를 그런 것들이 교묘하게 융합되었다. 그래서 관객의 마음속에 내재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남미 전문화랑 '베아르떼'의 홈페이지에는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그의 작품은 탈출구가 없는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환상을 현실로 바꾸고 그 현실을 또 다른 신화를 엮어나가는 중남미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 또한 감상자로 하여금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를 더해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끔 하는 작가이다"
▲ 에버르 휀세카 '요정의 방' 캔버스에 아크릴릭 100×80cm 2002 ⓒ 김형순
'요정의 방'을 보면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유희적 인간이 꿈꾸는 축제적 삶에 대한 동경이 서려있다. 현실의 고단함을 오히려 삶의 활력소로 바꾸려는 작가의 심경을 가면무도회와 같은 분위기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원시적인 것과 초현실적인 것이 요소가 잘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고대신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개구리 눈빛을 닮은 괴상한 형상은 놀랍기도 하고 익살맞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형적으로는 빼어난 미를 발휘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이런 몽상적이고 주술적 분위기의 마력에 빠져든다.
이런 작품은 언뜻 고양시 중남미박물관에서 본 마야, 잉카, 아스텍의 가면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은 어떤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인격이 달라지는 법, 작가는 그런 가면 뒤에 숨겨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캐려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파라과이 유명화가, 에르난 미란다(Hernan Miranda)
▲ '나의 작업실에서'라는 작품 앞에 포즈를 취한 작가 에르난 미란다. ⓒ Hernan Miranda
끝으로 에르난 미란다(48), 그는 파라과이의 극사실주의 풍의 중견작가다. 그런데 삭막하기까지 한 그의 극사실정물화 뒤엔 어떤 비밀이 있음을 풍긴다. 그걸 눈치 채기는 그리 쉽지 않지만 그런 분위기를 유발시킨다. 이 작가의 독창성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파라과이의 권위 있는 미술평론가 아구스토 로야 바스토스는 이 점을 이렇게 평했다.
"에르난 미란다는 극단의 결과를 가져오는 회화적 사실주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점이 새로운 시각으로 대체하면서, […] 기하학적 오브제 속에 작품마다 환상의 무대가 되어 극사실주의보다 더한 초현실주의로 돌아가게 한다"
이렇게 그의 그림은 리얼한 존재 뒤에 숨은 비현실적 환영을 불러일으켜 심도 깊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에게 있어 극사실주의는 바로 초현실주의로 가는 통로로 그 현실적 한계를 극복해보려는 미적 열정이라 할 수 있다.
▲ 에르난 미란다 '배' 캔버스에 유화 46×30cm 2006. 아래 '코리아' 캔버스에 유화 91×61cm. 붉은 악마의 티셔츠에 '투혼'이라는 글씨가 새겨져있다. ⓒ 김형순
또한 그는 '배'라는 작품에서 보듯 '뻔하고 사소한 것'의 가치를 환기시킨다. 아주 하찮고 평범한 것에서 어떤 판타지를 이끌어낸다. 다시 말해서 그의 그림은 사물의 사실적 재현이 아니라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하는 다른 세계를 유추하는 것이다.
'코리아'라는 작품은 독일월드컵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한국축구의 정신이라고 할 '투혼'을 그렸다. 이 개념은 사실 외국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그런 함축적 의미를 단순한 공간과 절제된 구성을 통해 전달하려한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여간 이 작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을 내심 관객의 몫으로 돌리려 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오래 머물게 되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이런 점의 그의 그림이 주는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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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www.gomuseum.co.kr 02)738-9199
훌로라 훵의 홈페이지 http://www.florafong.com 그림감상(70년대부터 현재)
에버르 휀세카의 홈페이지 http://www.everfonseca.net 그림 및 타피서리(60년대부터 현재)
에르난 미란다 관련 홈페이지 http://www.artelibre.net/HERNAN/miranda.htm(그림자료 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