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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요로 스트레스 풀어요!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 28] 훔쳐온 말 '스트레스'에 관하여

등록|2008.02.20 18:58 수정|2008.02.20 18:58

어드로이트 칼리지 겨울학기 초급반 학생들 스트레스 없이 재미있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스트레스'에 관해서 질문을 던진 태진아 씨 ⓒ 구은희


한국어로 '스트레스'는 뭐라고 할까?

"선생님! '스트레스'는 한국어로 뭐라고 해요?"
"그냥 '스트레스'라고 해요. '스.트.레.스'."

'도전 1000곡'도 시청할 정도로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 가사에 나온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곤 하는 태진아씨가 뜬금없이 '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라고 묻는다. 기자도 순간 당황했다. '스트레스'가 한국어로 뭐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어서 궁금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억압'이나 '압박' 등의 말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아, 스트레스 받는다' 혹은 '스트레스 쌓인다'라고 할 때 대체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카메라,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와 같은 눈에 보이는 외래어 이름의 제품 외에도, '미팅, 스터디, 그룹' 등 추상적인 외래어들이 나올 때에도 한국어 반의 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이상하게 생긴 글자를 열심히 읽다보면 바로 영어에서 온 단어들임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강태풍씨는 이러한 단어들이 나오면 '훔쳐온 말(stolen word)'이라고 혼자 웃곤 한다.

한국 가요 '행진' 부르면서 스트레스 푸는 태진아씨

이스트베이 분교 초급반 학생들 모습 왼쪽 뒤에 있는 학생이 한국 가요를 아주 좋아하는 태진아 씨이고 앞줄에 있는 학생이 한국 여자 친구가 있는 강태풍 씨이다. ⓒ 구은희


"스트레스가 쌓이면 여러분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세요?"
"저는 한국 노래를 들어요. 그리고 한국 노래를 불러요".

"한국 노래요? 어떤 노래를 주로 불러요?"
"수염 많은 가수 '전인권' 알아요?"

"네? 전인권도 알아요?"
"전인권의 '행진' 노래 아주 좋아요".

"'행진'이요? 그거 아주 오래된 노래인데요".
"도전 1000곡에서 들었어요. '행~진, 행~진'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태진아씨는 가수 '비'나 '보아' 외에 외국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오래된 가수나 노래에까지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하긴, <도전 1000곡>이라는 프로를 볼 정도라면 태진아씨의 한국 음악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방문 잠그고 CD 크게 틀고 '행진' 노래를 크게 불러요. 그렇게 부르고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태진아씨는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 가요를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요".

태진아씨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바로 한국 가요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가끔 가요에 나오는 단어들의 뜻을 물어보곤 하는데, 놀랍게도 그러한 노래들이 한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노래들이라서 나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한국 드라마로 스트레스 해소하는 권지연씨

레바논 학생 권지연 씨한국 배우 권상우와 같은 성을 가졌다고 좋아하는 2008년도 겨울학기 초급반의 권지연 씨 ⓒ 구은희


"저는 한국 드라마 보면 스트레스 풀려요. '권상우'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정말 지연씨는 '권상우'의 팬이에요".
"요즘은 <못된 사랑>을 보고 있어요. 그거 보면서 실컷 웃고 울고나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지연씨는 이번 학기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 레바논 학생이다.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나 한국 배우들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동양계 미국 학생들이었는데, 지연씨의 경우에는 한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레바논계 미국 사람인데도 한국 드라마를 섭렵한 보기 드문 경우다.

한류 드라마로 유명한 <대장금>이나 <풀하우스> 등은 물론이고 얼마 전 종영한 <대조영>까지 다 봤고, 지연씨가 좋아하는 권상우 씨가 나오는 '못된 사랑'도 보고 있고, '대왕세종'도 한 편도 빼지 않고 시청하는 한국 드라마 매니아이다.

지연씨는 한국 드라마를 볼 때 한 장면도 놓치기 싫어서 정지 화면으로 놓았다가 다시 보기도 하면서 한 장면 장면을 음미한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가요를 듣고 부른다는 태진아씨나 권지연씨야말로 미국 속의 한류의 싹이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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