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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시] 박남준 시인

등록|2008.02.22 10:38 수정|2008.02.22 10:38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단장 이필완 목사)은 지난 12일 경기도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발해 100일동안 기도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순례단과 함께 길을 떠난 박남준 시인이 보내 온 시이다. <편집자주>

▲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도보순례단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 유성호


이 야만은 어디에서 왔나
이제 손짓하는 강 언덕에 서서 바람의 춤을 추던
억새며 갈대밭들 흔적도 없어질 것이다
하늘거리며 푸른 숨을 쉬던 강물 속 물풀들은 숨이 막혀 사라지고
금모래, 은모래는 옛날의 기억으로만 쓸쓸하게 남을 것이다
재두루미와 큰기러기와 하늘을 비상하는 가창오리 떼, 새들 새들은
어디로 그 어디로 떠나갈 것인가
모래무지와 쉬리와 흰수마자와
저기 맑은 조약돌과 모래톱에 산란의 몸 부풀던
물고기들에게 어떤 희망이라는 내일이 찾아올까
주검이 되어 떠다닐 것이다
어쩌자는 것이냐
누가 대체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냐
산허리를 잘라 철조망을 치고
이쪽과 저쪽, 앞산과 옆산을 뒷산과 그 앞강을
생명의 이동통로를 막아버린 거미줄 같은 도로망과
죽음의 갯벌 새만금으로도 정녕 모자란단 말이냐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냐
운하를 파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냐
모든 경제가 파탄될 것이란 말이냐
산을 뚫고 들판을 자르며 강바닥을 파헤쳐
이 나라를 온통 재앙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창조적인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냐

갈대숲과 모래사장이 있는 강길을 따라 걸었다
그 풍경으로 인해 즐거웠으나 미안해, 미안해요 마음 편치 않았다
걸음 걸음마다 새들이 인기척에 놀라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거나 햇살에 몸을 말리며 단잠 꾸벅이는
새들의 안방을 방해했다 여겼기 때문이다
갈대숲과 모래사장을 엎애고
콘크리트 성벽으로 높이 쌓아올려 분단한 강 길을 따라 걷는다
풍경은 삭막했으나 미안한 마음 일지 않았다
날아오를 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강가로는 새들이 찾아오지도 깃들어 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 된다 이렇게는 안 된다
너희가 무슨 오만한 권리가 있어 강물을 사리사욕으로 바꾼다는 말이냐
운하는 악몽이어야 한다
잠 깨고나면 다시 새들이 날고
알록달록 조약돌을 간질이는 맑은 물결이 찰랑 거리며
은빛 모래밭과 갈대들이 너울거리는
평화와 고요한 아침이 오는 한바탕 악몽이어야 한다
수많은 수중보와 갑문으로 막혀 가두어진 채 썩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작은 물고기들이 반짝이는 자맥질을 하며 흐르는 숨 쉬는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탐욕과 무지몽매와 기만으로 뒤덮여 죽어가는 운하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함께 춤추는 푸른 강이어야 한다
생명의 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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