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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정책 밑그림'이 부족하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전체 밑그림'을 중시하는 미국 언론들

등록|2008.02.23 09:26 수정|2008.02.23 09:26
How the next president plans to handle the disastrous Iraq war is the most important foreign policy question of this year’s campaign. But it is not the only foreign policy question that voters need answered.
‘차기 대통령이 재앙스러운 이라크 전쟁을 앞으로 어떻게 다룰 생각이냐?’는 올해 선거에서 대외정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듣길 원하는 대외정책에 대한 답변은 단지 이라크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2월 17일, 뉴욕타임즈 사설)

이명박 차기 정부가 곧 임기를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공약으로 당선된 만큼 그와 그에게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차기 정부가 맥을 잃은 듯한 경기 또는 경제를 어떻게 펄펄 끓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 심지어 그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도 차기정부가 성과를 내주길 바라는 것이 ‘경제’만은 아니란 점이다.


1] 전체적인 그림
  
Three priorities: end the war in Iraq and restore America's standing in the world; fundamentally reform the health-care system so that it's cost-efficient and covers everybody, and transition to a "green economy" that cuts carbon emissions and creates jobs at the same time.
3가지 우선순위- 첫째, 이라크전을 끝내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는 것./ 둘째, 건강보험 제도를 효율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 / 셋째, 탄소 배출을 줄이고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녹색 경제”로 전환하는 것.
(2월9일자 뉴스위크)

뉴스위크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민주당의 오바마와 힐러리 두 후보를 언급하면서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지 현재 미국에 가장 큰 변화가 요구되는 3가지를 위와 같이 제시했다.

위 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현재 미국이 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경제불황의 심각한 국면에서, 미국의 유력 시사주간지가 ‘3가지 우선순위’를 비장하게 정리한답시고 ‘경제’를 누락시킨 것이 “너무 추상적이고 비현실적 아니냐?”는 반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법하지 않은가? 적어도 현재 한국 정서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의 기자들은 적어도 양심적으로 현재의 ‘경제위기’를 보다 근본적인 시선으로 냉정하게 처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차기대통령이 어떤 정책이나 리더십으로 당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경제가 아니라는 상식쯤은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스템과 (경제)환경의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통해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것이 정부와 대통령이란 사람이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서브프라임과 같은 현재의 위기는 극복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되, 보다 미래 지향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을 리더에게 주문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국민처럼 실천 가능한 리더십을 중요시 여기는 풍토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자유주의 색채의 민주당이나 보수적 정강의 공화당이나 그들은 항상 ‘실용적’ 물음에 답하는 것을 통해 국민들을 설득한다. 현재 공화당 유력 후보인 “매케인”이 정작 공화당 내에서는 환영을 못 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과거 “낙태” 등을 허용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이념의 대결이 아니라 이념이 구체화된 현실의 문제가 이슈가 되는 미국 선거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실용적’이란 의미다.

이런 미국에서조차 정말 실용적인 정책은 ‘전체적인 그림’이 밑받침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이 ‘전체적인 그림’을 갖고서 앞으로 4년 혹은 8년 간의 미국을 이끌 수많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언론도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서도 ‘전체적인 그림’에 맞는지 항상 복기를 해본다. 모순을 발견하면 가차없이 “현실적이지 않다” 혹은 “위선적이다”라는 비난을 가하면서 말이다.

이명박 차기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하고 있는가? 제시하고 있지만 국민이 모르고 있는가? 언론이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삿거리가 될만한 소재들만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현재 상황이 어떠하든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국민들에게 어떤 ‘전체적인 그림’을 갖고 있는지 답하라!

불과 20여일 활동한 인수위를 통해 국민들이 혼란을 겪은 이유는 언론과 인수위의 일부 관계자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그러나 정작 진짜 핵심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들이 “전체적인 그림을 갖고 있느냐?” 혹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명박 당선인 아니 이젠 대통령님! 그리고 핵심 참모들!

‘전체적인 그림’이 있으신가요?


2] 도덕적 입지

뉴스위크가 ‘큰 그림’을 통해 차기 정부에 대한 우선순위를 제안하고 있다면, 뉴욕타임즈의 사설은 한술 더 뜨는 듯하다. 아예 ‘외교정책’이 미국의 운명을 가를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President Bush’s mismanagement reaches far beyond Iraq. He has torn up international treaties, bullied and alienated old friends, and enabled old and new enemies. Before Americans choose a president they will need to know how he or she plans to rebuild America’s military strength and its moral standing and address a host of difficult challenges around the world.
부시 대통령의 실책은 이라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국제조약을 갈기 갈기 찢어버렸고, 옛 동맹들을 겁주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 적, 새로운 적 할 것 없이 준동하게 했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선택하기 전에, 그(오바마나 맥케인) 또는 그녀(힐러리)가 미국의 군사적 힘과 도덕적 입지를 어떻게 재건할지 그리고 전세계로부터 몰려오는 수없이 어려운 도전들을 어떻게 다룰지 알아야만 한다.
(2월 17일, 뉴욕타임즈 사설)

‘경제위기론’이 미국 사회에서 공포스럽게 퍼지는 가운데 뉴욕타임즈가 정신을 못 차리고 배부른 좌파적 논쟁에 휩싸였다며 힐난하는 소리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사설쯤에 실릴 만한 대목 아닌가?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보라! 현재 석유가격의 급등은 사실 이라크전 이후에 조성된 ‘현실’이다. 2007년 초만 하더라도 60달러선 이하에서 거의 모든 석유가 선물가로 거래되고 있었다. 현재 100달러를 넘나들고 있음은 상식이 되어 버렸다.

미국 경제가 현재 겪고 있는 위기는 ‘실체적 위기’라기보다는 ‘신용위기’의 성격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모두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이 역시 기저에 깔린 주요 원인을 이라크 전에 투입된 막대한 재정과 이를 전후해서 부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펼친 감세정책 덕택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결과적으로 현재 미국 경제위기에 직접적 원인이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적어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 원인은 대외정책 실패에서 왔다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사설 또한 대외정책에서의 ‘전체적인 그림’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다음과 같이 좀더 구체적이다.

        - INTERNATIONAL LEADERSHIP: 국제적 리더십 회복
        - CHINA: 대 중국관계의 딜레마 극복
        - NONPROLIFERATION: 핵무기 비확산 정책의 일관성
        - RUSSIA: 러시아와의 신냉전 구조 예방
        - DEFENSE SPENDING: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대비
        - USE OF FORCE: 인도주의적 군사활동(수단 등지에서)의 필요성
        - TERRORISM: 알카에다와 파키스탄에 대한 정책
        - MIDDLE EAST: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상
        - IRAN: 이란 핵개발 저지
        - NORTH KOREA: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위한 접근 방법
        - Iraq: 이라크 철군일정을 비롯한 구체적 정책의 필요성

미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큰 대외변수의 ‘큰 그림’을 모두 열거한 셈이다. 주의 깊게 볼 대목은 가장 우선순위에 “INTERNATIONAL LEADERSHIP 국제적 리더십”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명목상 배열이 아니다.
  
What steps would the candidates take to revive America’s reputation and its ability to lead? Would they immediately shut the Guantánamo Bay prison, commit to a global treaty to address climate change and press the Senate to ratify the Comprehensive Test Ban Treaty?
후보들이 미국의 명성과 지도력의 회복을 위해 취할 조치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당장 관타나모 만에 있는 감옥을 패쇄해야 하고, 기후변화를 다루는 국제조약에 가입해야 하며, 상원을 압박해서 포괄적 핵실험 금지법을 통과시켜야만 한다.
(2월 17일, 뉴욕타임즈 사설)

미국은 되고, 다른 나라는 안 된다는 식의 일방주의와 일관성 부족을 미국이 스스로 제거해야 할 대표적 비도덕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이런 ‘도덕성’의 구체적이고 과감한 회복과 변화가 없다면 뒤에 열거하는 수많은 대외정책의 도전과 위협에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상식을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친-기업’도 좋고 ‘친-경제’도 좋지만, 이를 위해서는 ‘친-도덕성’과 ‘친-공정성’이 우선해야 할 듯하다.

1994년 부산 표심에 기댄 ‘친-기업’ ‘친-삼성’ 정책으로 탄생한 삼성자동차는 몇 년이 못돼 1조원에 육박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후 외국기업에 넘겨주는 어이없는 결과만을 낳았다.

안전수칙을 무시한 비도덕적 관행은 태안 일대의 경제와 환경을 수치로 파악할 수 없는 규모로 파괴했다. 우리국민이 그렇게 좋아하는 ‘경제적 가치’ 하나만을 따져 보아도, ‘삼성그룹’ 전체를 팔아도 바꿀 수 없는 값어치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아직 대부분 언론의 엄호 속에 숨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싶은가? 차기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사회를 역동적으로 혁신하고 싶은가? 그러면 ‘도덕적 기반’부터 재확립하라! 부패에 대해 대통령 자신부터 엄격해지기 바란다. 자신의 핵심 참모라 할지라도 부패와 연루되었다면 극약을 처방하는 심정으로 엄중하게 대하길.

부시 통치 8년. 미국 사회는 ‘강성한 미국의 건설’이라는 솔깃한 ‘레이건 식 대외정책’의 향수에서 이제 막 깨어나고 있다. 이라크에서의 참혹한 실패를 통해 ‘도덕적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실’ 속에서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다.

도덕적 기반!

경제를 비롯한 사회전반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진짜 힘이다.


3]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On Iraq, there are still many unanswered questions. Most of the discussion during the campaign has been stuck on the past (who supported the war or not). Voters need to know more about what the candidates would do from their first day in office. Whether they plan to stay or leave, how would they accelerate political reconciliation there? What would they do to ensure that Iraq’s chaos does not spill beyond its borders? Americans deserve to hear the candidates’ answers, long before they go to the polls.
이라크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부분이 의문 그대로 남아있다. 선거기간 동안 이뤄진 토론 대부분은 과거 실패에만 집착해 왔다(누가 전쟁을 지지했느냐 아니냐 같이). 유권자들은 후보들이 그들의 첫 직무부터 (이라크 정책에 대해) 어떻게 행동을 취할지 좀더 알아야만 한다. 이라크에 더 주둔할지 철수할지? 이라크에서의 (분파간의) 정치적 타협을 어떻게 강화할지? 이라크의 혼란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지 않도록 할 확실한 조치로 뭐가 있는지? 미국인들은 후보들의 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 투표장으로 가기 훨씬 전에 말이다(빨리 토론이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
(2월 17일, 뉴욕타임즈 사설)

‘경제’라는 한 주제만 놓고서라도,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첫 직무에서부터 어떤 정책을 구체적으로 취한다는 이야기인지 알아야만 한다.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말인지, 관심이 없다는 말인지? 시중 유동자금을 생산적인 부분으로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 현재 석유가격을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이 국내 경제에 최소한 반영되도록 어떤 조치를 취한다는 말인지?

국민들은 들을 자격이 있다. 알아야만 한다.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오보나 듣고 있을 한가한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부운하를 하겠다는 말인지 아닌지? “남주홍 (경기대 교수)”이라는 강경파를 통일부에 앉혀 놓고 실용적 대북정책을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있는지?

‘도덕적 기반’을 세울 강력한 의지가 있는지?

아직 한마디 답변도 듣지 못했다. 정권을 바꾼 국민은 한가지 강력하고 매력적인 동기를 갖고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경제 하나만으로(사실 경제도 불확실 하지만) 계속 지지 받을 것이란 착각은 하지 않고 있으리라 믿는다.
  
It is a core tenet of political psychology that voters know nothing. Or next to nothing. Or next to nothing about what civics classes (forgive the anachronism) told us really matters.
‘유권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정치심리학에서의 핵심교리다. 아니면 적어도 거의 모른다. 아니면 (시대를 읽고 있는) 식자층이 진짜로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
(2월 2일자, 뉴스위크)

미국에서 부시가 당선된 것을 놓고 정치심리학자들은 유권자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보고 선택하지 않고 심리적 선택에 의존한다는 이론을 확인시켜준 사례라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들은 역시 정치인들일 것이다.

설사 학자들의 말이 옳다하더라도 그 효용가치는 길어야 8년이다. 앞으로 부시 같은 인물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란 사실까지 생각한다면 공화당이 받은 타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과 이명박 차기 정부는 정치심리학자들의 이런 이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이론에만 의존했던 리더들의 최후가 어떻게 현실에 반영되었는지 그 무섭고 엄중한 심판도 함께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금쯤 듣지 못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지금 인수위 활동 등을 통해 국민들 가운데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분위기의 이유를 잘 파악하기 바란다.

‘전체적인 그림’이 있고 ‘도덕적 입지’를 확보한 대답을 국민들은 듣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대해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의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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