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우라니아' 극장, 붉은 커튼의 비밀은?
[여기는 베를린] 제 58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원정대 - 제5편
▲ 베를린 '우라니아'(urania) 광장 앞에 있는 '우라니아' 극장의 모습.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에 비해 규모가 작다. ⓒ 이승배
대신 그 맞은편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을 마련해놨다. 겉옷과 가방 등을 맡아두는 보관소였다. 국내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난 철제 상자가 아니다. 나무로 된 대형 옷걸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국내에서 비싼 레스토랑에 가면,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외투를 가져다가 맡아주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직원 2~3명이 카운터에 서 있다가, 손님이 다가가면 친절하게 옷 등을 받아다가 그곳에 걸었다. 국내 영화관에선 보지 못한 것이라, 사뭇 신기했다.
▲ 베를린 우라니아(urania) 극장 안 보관소에 겉옷과 가방 등을 맡겨둘 수 있는 옷걸이가 길게 늘어서 있다. ⓒ 이승배
허름하다해도 명색이 극장,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 이곳도 북적일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오전 11시 40분쯤, 전에 상영된 영화(Lady Jane)가 끝나 2층에서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사실 우리 같으면 맡긴 옷 빨리 찾아가려고 서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는, 하나 같이 여유로웠다. 함께 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줄이 밀려 있으면, 조용히 뒤에 섰다. "빨리 달라"며 소리 지르는 사람 하나 없었다. 행동은 느리지만, 평화로워보였다.
▲ 베를린 '우라니아'(urania) 극장 안 계단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이승배
▲ 베를린 '우라니아'(urania) 극장 안에 설치된 '붉은 커튼'의 모습. ⓒ 이승배
이뿐만 아니다. 앞 뒤 의자 사이 경사도 거의 없었다. 의자에 곧게 앉으면 앞머리가 스크린을 가려 영화를 못 볼 정도였다. 제대로 보려면 엉덩이를 반쯤 아래로 내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설마, 이런 자세로 봐야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옆을 둘러봤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비슷했다. 옆에 앉은 한 남자는 앞 사람이 신경 쓰였는지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아, 한 가지 빠뜨린 게 있다. 우라니아는 국내와 달리 정해진 자리가 없다. 쉽게 말해, 선착순(fist come, first served)이다. 좋은 자리에서 영화 보고 싶으면, 일찍 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좋은 자리라는 개념이 필요 없는 듯했다. 경사가 거의 없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머리가 걸린다. 그렇다고 제일 앞자리는 너무 가까워 어지럽다. 그냥 적당히, 자세 조절해가며 보면 비슷비슷하다.
▲ 베를린 '우라니아'(urania) 극장 안의 모습. 붉은 색 의자가 간격이 국내 영화관에 비해 좁다. ⓒ 이승배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날 밤, '붉은 커튼'의 비밀은 밝혀졌다. 일행과 합류했을 때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본래 우라니아는 "연극, 이벤트 등을 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5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도 원래 뮤지컬하우스였다"고 했다. 다른 원정대원들에게 그동안 "촌스럽다"고 떠벌이고 다녔는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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